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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Nov 25. 2023

토요일 아침에 스쿼트를 하러

추위와 게으름을 걷어내는 걸음

 내가 여성전용 운동클럽은 매달 새로운 추가운동 챌린지를 하는데 금은 '스쿼트 챌린지' 중. 스쿼트를 총 세 세트 하는데 한 세트의 숫자는 한 주에 다섯 개씩 늘려 간다. 스쿼트를 하고 각자의 진도표에 체크한다.

 나는  욕심 없이 주 3회 운동 가기를 목표로 다다. 주중에 세 번을 못 채우면 토요일에 간다.

 

 토요일 오전의 주택가는 출근과 등교로 바쁜 평일 아침보다 한적하지만 다양한 생활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어느새 추워진 날씨에 패딩을 챙겨 입고 산책 나온 개들은 크거나 작고 하얗거나 까만 게 다들 다르게 생겼지만 그들을 따라가는 목줄의 주인은 주로 아저씨들이다. 커피전문점 창 밖에서 테이크아웃 커피를 주문하는 사람들은 옷부터 신발까지 편안한 차림이다.

 무엇보다 토요일 오전에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물론 저 아파트 단지 안의 가가호호에는 푸근한 늦잠을 자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맨몸 스쿼트는 바른 자세가 중요하다. 양발을 어깨너비로 자연스럽게 벌리고 발바닥은 바닥을 굳게 지지하며 등이 굽지 않게 신경 쓰고, 양손은 기도하듯 자연스럽게 잡거나 앞으로 쭉 편다. 동작을 진행하는 동안은 고개를 들어 앞을 보며 오리궁둥이처럼 엉덩이를 빼고 아랫배에 힘을 주며 천천히 내려가고 완전히 올라와야 한다. 이때 양 무릎 발끝이 향한 방향으로 유지하고 발끝보다 앞으로 나오면 안 된다. 내려가고 올라올 때는 다리와 무릎이 아닌 엉덩이와 허리의 힘을 사용해야 운동중과 운동 후에 릎과 허리가 아프지 않다.

 내가 엉덩이와 허리의 힘을 사용하는 팁은 '딱 지적해서 부위 이름 부르기'다. 머릿속에서 '엉덩이! 허리!'라고 생각만 해도 저절로 거기에 힘이 들어간다.


 클럽 중앙에 비치된 근력기구들과 유산소 존을 두 바퀴 도는 기본 운동을 끝내고 스트레칭까지 한 다음에 창가로 가서 스쿼트 챌린지를 시작한다. '그저 나는 스쿼트 기구다' 하는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숫자만 세야지, 150개를 언제 다 하냐라든가 운동 끝나고 점심에 뭐 먹지 같은 딴생각을 하면 하기가 싫어진다.


 창가에서 거리와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며 상술한 방법으로 스쿼트에 도전한다. 다리를 굽히면 벽에 붙은 현수막이 보이고 위로 일어서면 풍경이 보인다. 현수막에는 '오래 살려면 유산소 운동, 건강하게 살려면 근력 운동,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OOO 운동'이라는 클럽의 캐치프레이즈가 적혀 있다.  

 내려갔다 올라오는 동안 횡단보도의 빨간불이 초록불로 바뀌었는지 아까는 길가에 멈춰 있던 개가 아저씨를 끌고 종종종 지나간다.

문구 잘 지었다

  



 인간에게 운동은 필수라는 말을 숱하게 들으며 살고 그 말에 완전히 공감하면서도 실천이 힘들다. 오늘의 운동을 마치고 나면 육신이 힘들어도 정신까지 상쾌해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집을 나서기가 가장 어렵다. 기꺼이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가면 뒤돌아보는 일 없이 클럽을 향해 걸어가고 거기 가서도 한 시간 반을 잘하게 된다.

 예전에 우리 큰애가, 학원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 게 제일 싫다, 고 했다. 막상 학원에 가면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된다는 거다. 그래서 걸어서 5분 거리의 학원에 태워다 준 적도 있다.

 

 약 2년 전까지만 해도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았었다. 예전에는 1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하러 가면 사전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최근 일주일간 평소보다 숨이 차게 만드는 격렬한 운동을 시행한 날은 며칠입니까?'와 '1주에 평균 며칠이나 술을 마십니까?'라는 질문에 답할 때가 난감했다. 일주일에 술을 마시는 횟수가 운동을 하는 횟수보다 많을 때 무척 양심에 찔린다. 답 쓰기를 주저하게 된다. 그리고 나의 솔직한 문진표를 보는 의사는 어김없이 '운동을 하셔야 돼요'라 말한다. 그 말이 참 듣기 싫었다.   

 그래서 건강검진 예약일 전 일주일 정도는 좋아하는 맥주도 거의 피하고 일부러 동네 산책을 나가곤 했다. 요즘은 (돈 내고) 운동을 다니다 보니 은근히 건강검진 문진표 작성이 기다려진다.

 평소보다 격렬하게 숨이 차는 운동을 한 날이 1주일에 3일 이상이면 칭찬할 만하지 않을까. 검진센터 데스크에서 당당하게 질문에 답하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다음 달은 5주간의 다이어트 챌린지라고 대문짝만 한 공지가 붙었다.

 아줌마 회원님들이 요가매트 위에서 폼롤러를 굴리며 한 마디씩 한다.


 -다트? 아유, 우리 나이엔 다여트 같은 거 하면 안 돼. 쓰러져.

 -12월엔 모임도 많은데 무슨 다트야. 안 그래요?


 조용히 보고 있던 나도 챌린지에 뛰어들까를 고민조차 하지 않고 포기했다. 적혀 있는 도전자들의 이름을 둘러보니 '은비, 보미' 등 역시 엠쥐 세대들이 주류다.

 엇, 이옥경'씨는 이름의 무드로 보아 우리 또래 이상일 가능성이 큰데 다이어트 챌린지를 하신다고 적어 놓았다. 누굴지 궁금하다.


 남들의 다이어트 챌린지를 관전하는 재미도 있겠다.

다음달의 챌린지 공고

 

 토요일 오전에 운동을 하면 왠지 열심히 사는 사람 같아 으쓱한다.

 오늘의 운동을 마치고  1층 마트에 들렀다. '맥주 성지'라는 광고를 무시하면 섭섭할 테니 주말 저녁을 위한 캔 몇 개를 담는다.


 그래, 이러려고 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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