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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Dec 27. 2023

큰딸의 라섹수술 수발기

4박 5일 고통의 기록

 큰딸이 라섹 수술을 했다.

 일곱 살 때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한 몸이던 무거운 안경이 지겨워져서 수술을 결심했단다.

 남편 '그 엄살 많은 놈이 어떻게 수술할 생각을 했지'라고 했데 그건 생각이었다.

 

 어릴 때부터 약이라도 먹이려면 수십 분 동안 치열한 심리전과 몸싸움을 치러야 했다. 아무리 두어 살짜리 아기라도 제 죽을힘을 다해 안 먹겠다고 버티면 어른도 진땀이 난다.

 어르고 달래고 야단도 치다가 나중에는 나도 분기탱천하여 애를 다리 사이에 끼워 옴짝달싹 못 하게 하고 입을 벌려 약을 넣고는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아, 초보엄마여, 지금 생각하면 자칫 질식을 유발하는 위험한 행동이다)

 눈물에 벌개진 얼굴로 잠잠해진 듯해서 손을 떼면 웩 하고 약을 뱉어냈다.


 그랬다가 2년 후에 태어난 둘째딸 약이든 뭐든 입에 넣어 주는 건 다 잘 먹고 급기야, '언니는 약 주고 난 왜 안 줘, 나도 약 줘!!' 하고 울 때는 고맙기까지 했다.

 일란성쌍둥이도 성격이 다르다는데 두 살 터울 자매가 다른 것은 너무 당연하다.

 

 



 5일 동안 집에 머물 예정이라서 큰애 방보다 더 안쪽에 있어 조용한, 작은애 방을(어차피 다 비어 있는 방이다) 요양 병실로 세팅했다.

 안방 창문에서 암막 커튼을 떼어다 바꿔 달고 침대에 앉아서 기댈 수 있는 큰 쿠션을 준비했다. 침대에 누운 채 손만 뻗어서 필요한 것을 해결하도록 작은 책상을 침대 가까이 붙이고 블루투스 스피커, 갑 티슈, 인공눈물도 늘어놓았다. 쾌적한 방 안 환경을 위해 가습기와 공기청정기도  전진 배치했다.

 이제 눈을 잘 고친 딸을 데려다 놓기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수술날 오전에 큰애가 사는 오피스텔로 가서 함께 안과에 가려던 계획부터 차질이 생겼다.

 마침 올겨울 최강 한파가 온 날이라 그만 우리 집 노후 차량의 배터리가 나간 것이다. 긴급출동을 요청했지만 접수 건수가 너무 많아 기사님이 오려면 한 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안과에서 만나기로 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발이 닿는 길에서는 뛰다시피 갔다. 가까스로 수술 전 설명을 듣기 직전에 딸을 만날 수 있었다.

  

 수술 전 대기 시간보다 라섹수술이 더 빨리 끝났다.

 앞을 못 볼 줄 알고 수술실 앞까지 마중을 갔는데 애가 눈을 반짝 뜨고 걸어 나와 당황했다. 간호사가 지금은 눈이 마취된 상태라 그렇다고 했다.

 잠시 후부터는 역시나 눈을 뜨지 못했고 자외선을 차단을 위해 감은 눈 위에 선글라스를 썼다.

 이제부터 나는 딸의 눈이자 수족이다. 비장하게 다짐하였다.

 

 미리 라섹 후기를 찾아보고 대강의 경과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통증과 회복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니 이 시간 이후가 잘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미리 구비한 인공눈물들

 


 

 후기를 보면 수술하고 나오자마자 눈물을 줄줄 흘리고 첫날부터 극심하게 아프다는 사람이 많았는데 큰애는 별로 아프지 않다고 했다. 고도근시일수록 절삭 범위가 넓어 통증이 심하다는데 다행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둘째 날부터 통증이 강해져서 넷째 날까지 거의 비슷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양쪽 눈 을 그렇게 긁어놨으니 상처가 아물려면 아픈 게 당연하다. 건강한 눈에 먼지만 들어가도 금방 새빨개지고 눈물이 나고 시려서 눈을 뜰 수 없지 않나.

 그러나 라섹이 처음인 당사자나 라섹수술한 환자를 처음 돌보는 나나 일단 '아프다' 하면 걱정부터 됐다. 보호렌즈가 빠지거나 돌아간 건 아닌지, 눈썹이 들어간 건 아닌지, 상처가 덧난 건 아닌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런 순간마다 인터넷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라섹의 세계를 앞서 경험한 생판 타인들의 풍부한 얘기들과 안과의사들의 공개 가이드와 조언 등을 그때그때 찾아보며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많이 아플 때는 병원에서 준 진통제를 먹어도 차도가 없었다. 또 검색을 해 보니 성분이 다른 진통제는 간격을 두고 먹어도 된대서 평소에 잘 듣는 이부프로펜을 먹였다.

 많이 아프냐고 물으면 어른스럽게 '그래도 뭐 참아야죠. 내가 선택한 건데' 하면서도 눈을 못 뜨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나마 먹는 약이 끝나서 챙길 것은 줄었지만 연휴라서 병원들이 다 쉬니까 이게 정상적인 증상인 건지 어디에 물어볼 수도 없었다.

 울다가 괴로워하다가 지쳐서 쪽잠도 들었다가 하며 딸은 네 번의 낮과 네 번의 긴 밤들을 어찌어찌 넘겼다.


 안과에서 준 새해 달력을 보면 황금연휴 직전마다 '수술하기 좋은 날'이라고 강조했던데 그 이유 중 하나를 알겠다.

 어차피 연휴니까 사소한 질문 전화 하지 말고 그저 참라!?

수술하기 좋은 날이라...



 그 와중에, 월급이 들어왔는데 얼마인지 숫자가 안 보인다고 투덜이다.

 '엄마가 보고 말해줄게'라고 슬쩍 말했지만 택도 없었다. 화면 캡쳐 해서 확대해서 보라고 했더니 그런 방법은 생각도 못 했다고 좋아한다.

 노안이 되면 맨날 그런다, 이것아.


 또랑또랑한 어플이 읽어주는 책을 들으면서 보호안경을 끼고 어둠 속에 누워있는 딸의 모습에 익숙해졌다. 어른스럽게 말하고 쓰는 법에 대한 책도 있던데 사회인으로서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 다운 받았다니 칭찬할 만하다.





 약속된 날은 반드시 찾아오는 법이다. 수술 6일 차, 대망의 '보호렌즈 제거 날'이 왔다.

 수술날은 올겨울 최강 한파였는데 다시 안과를 가는 날은 예년보다 따뜻했다.

 그사이 우리 집 노후 차량은 짱짱한 새 배터리로 바꿔 달고 아저씨(남편)가 밥도 가득 먹여 놓으셔서 안과로 신나게 달려갔다.

 수술 경과는 별 문제없고 두 주후에 다시 방문하기로 하였다. 렌즈를 빼니 한결 눈이 편하다는 딸을 제 집에 데려다주고(일 년 만에 들어가 보는 딸의 거처는 예상보다 깨끗해서 놀랐다) 나도 홀가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이 조용하고 몸이 편안해지니 배가 고파서 냉동실을 뒤져 부리또를 하나 데워 먹었다.

 '엄마, 저 돌봐주느라 수고하셨어요' 하는 딸의 목소리가 떠올라 부리또스후레시  맛이 더욱 좋았다.  

 시력 회복까지는 몇 달도 걸린다니 앞으로도 별 탈 없이 소소히 잘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빈 방을 정리한다.  

 딸들이 오면 즐겁고 행복하고 딸들이 없으면 없는대로 혼자의 시공간이 적적하니 여유롭다.  


'자식은 오면 반갑고, 가면 편하다'더니 정말 그렇다.

챙겨서 보낸 것들 중에서





 라섹 수발 시 알아두면 도움 되는 것들을 적어둔다.


1. 눈 주변 얼음찜질, 찬수건 찜찔이 도움이 된다. 이와 비슷하게 안약과 인공눈물도 차게 했다 쓰면 좀 시원하고 좋다고 했다.

2. 병원에서 주는 취침용 플라스틱 보호안대는 머리고정끈이 한 줄이라서 자다가 벗겨질 수도 있다. 안경의 적당한 위치에 고무줄이나 끈(리본)을 하나 더 매어 뒤통수에  Y자로 쓰면 안전하다.

3. 아플 때 눕거나 각도를 다르게 앉으면 통증이 경감되기도 한다. 다양한 자세를 편하게 취할 수 있게 쿠션과 베개를 넉넉히 놓아준다.

4. 개인별 체감 통증 차이가 크다. 수술 부위를 보호하려고 끼워 놓은 렌즈가 빠졌거나 눈에 뭐가 들어간 경우만 아니라면 통증은 어차피 점점 줄어들게 돼 있다.

보호렌즈는 잘 들여다 보면 눈동자 주변에 테가 보이므로 빠졌는지 확인이 된다. (사실 며칠간 잘 때도 계속 착용하는 이 보호렌즈 때문에 불편하고 아픈 면도 있다.)

5. 라섹한 눈에는 자외선이 가장 나빠서 몇 달간 UV 차단을 위해 실내에서도 보안경 쓰기를 권한다. 딸은 원래 쓰던 안경테에다 렌즈만 새로 맞췄다. 인터넷쇼핑몰에서 살까 하다가, 비싼 돈 주고 수술하고 어렵게 견뎠는데 사후관리가 중요한 것 같아 안경원에 가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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