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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Nov 13. 2022

처음으로 혼자 여행

진정한 어른이 되려면 혼자 떠나봐야 한다... 고?

 이번 가을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했다. 서울역에서 KTX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강릉 1박 2일이었는데 '여행'으로 낯선 곳에 가서 나 혼자 하룻밤을 자고 오는 것이 처음이었다.  

 

 나는 결혼 전에 같은 직장을 다니던 친한 언니들, 동기들과 아직 만나고 있다. 그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 빼고는 다들 혼자서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혼자 여행을 하면 확실히 가족이나 친구랑 갔을 때와는 다른 것들을 느끼고 얻게 된다고 했다. 여행을 즐기는 한 언니는 '혼자 여행을 해 봐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거야'라고 단언했다. 나는 이제껏 혼자서는 하루의 긴 나들이조차 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처럼 시간이 많을 때 혼자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혼자 여행을 해 본 사람만이 진정한 어른이라고까지 한다면 말이다.  


 혼자 여행을 하면 어떨까를 상상해 보면 대강 추측은 된다. 기본적으로 홀가분하고 무엇을 하든 안 하든 부담이 없겠고 가끔 심심하고 밥 먹을 때는 좀 허전하고 밤에 잘 때는 살짝 무섭겠지? 일단 한번 해 보자, 혼자 여행해 본 경험이 하나도 없는 인생보다는 한번 해 보는 것이 이야깃거리도 될 테니까!   

 

 첫 나 홀로 여행지는 강릉으로 정했다. 여러 번 가 본 곳이라 아주 낯설지도 않고 너무 멀거나 외진 곳도 아니고 볼거리와 먹을거리도 많고 놀러 오는 사람들도 많으니 안전해서 중년 여성의 첫 혼자 여행지로 최적이었다.


 나는 남편과 딸들의 격려를 받으며 9월의 마지막 날에 강릉으로 향했다. MBTI 끝자리가 P인 아줌마답게 오고 가는 코레일 티켓 두 장과 하루 묵을 호텔 외에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은 채였다.




 가족과는 여러 번 함께 탔던 강릉행 ktx에 혼자 타며 나의 여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열차에 타자마자 불편한 점이 생겼다. 나는 창가 자리를 예약했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자꾸만 마스크 안에서 헛기침과 킁킁하는 소리를 냈다. 2,3분 간격으로 내는 그 소리는 강릉역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차창 밖의 풍경 감상과 공상을 포기하고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몸을 기울여서 그냥 자기로 했다. 문득 잠에서 깨니 쪽에 앉은 남자의 헛기침은 여전하였고 오른쪽으로 돌리고 잤던 목덜미가 결리고 아팠다. 아, 왼쪽에 남편이 앉아 있었다면 이런 불편은 없었을 텐데.

 두 시간이니 망정이지 더 긴 시간이었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일정을 그때그때 결정했다. 강릉역 택시 승강장에 긴 줄이 섰길래 택시 대신 버스를 타기로 했다. 길 건너 정거장에 가서 버스를 타고 예약한 호텔이 있는 강문해변으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서는 길 찾기 앱을 보며 걸어가는데 배가 고팠다. 호텔로 가는 길에 있는 식당들을 검색했다. 아쉽게도 그때가 마침 식당들의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결국 첫 혼자 여행에서의 첫 끼니가 편의점 컵라면과 컵과일이 되었다.

 어디서 무엇을 먹을지 계획을 잘 짜서 다니는 남편이나 딸들이 같이 있었다면 현지 식당의 브레이크 타임에 걸려 밥을 못 먹고 컵라면을 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혼자 멀리 가 보니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호텔에서 혼자 자는 일은 예상외로 무섭지 않았다. 아무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뽀송하고 까슬한 침구 위에서 영화를 골라 보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차 소리, 파도 소리를 들으며 가만히 누워 있거나 바다를 향한 테라스 앞에 의자를 내놓고 그저 등받이에 기대어 있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편안해서 좋았다. 그대로 앉아서 잘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반면에 안 좋은 점은 역시나 '먹을 때'였다. 바쁜 도시와는 달리, 호텔 주변의 편의시설과 관광지의 식당은 혼자 먹는 사람에게는 적당한 무드가 아니었다.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카페 루프탑에서도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연인이나 가족, 친구와 함께 온 사람들의 모습이 그곳의 분위기와 더 잘 어울렸다. 아마 강릉이 아니었다면 혼자 있는 사람이 눈에 덜 띌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있는 호텔 밖의 바닷가로 나가기만 하면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이 10월1일이니 10월의 첫 해를 보겠다면서 일출 시간에 맞춰 나갔다.  

 

 그날 아침 그 바다에서 본 일출은 나의 인생에서 기억될 만한 몇 개의 씬에 들어간다.

 대학교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고 돌아오던 지하철이 당산철교를 지날 때 봤던 한강의 물빛, 낯선 도시의 결혼식장 신부대기실로 우리 엄마가 한복을 입고 들어오던 모습, 첫딸을 낳고 병실 침대에 앉아 젖을 물리던 순간 그리고 솔밭길을 걸어갈 때부터 눈이 너무 부시고 몸의 이 쪽은 춥고 저 쪽은 따뜻했던 강문해변의 아침.

   

 쉰두 살에 처음 한 나의 혼자 여행에서 이런 멋진 순간을 새로 저장하게 된 것은 행운이다.


 파도 소리에 편안했던 밤의 호텔 창가와 아침 첫 햇빛의 강렬했던 해변, 이 두 가지 기억만으로도 혼자 여행은 성공이었다.   

 

남편이 꼭 맨발로 모래를 밟으라 해서 마지못해 해 봤는데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혼자 여행을 갈 생각이 있는가 물으면 그렇지 않다. 물론 살아가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서 떠나는 여행을 또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부러 혼자만의 여행을 갈 생각은 아직 없다.

 좋은 사람과 함께 여행을 가서,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저녁에 만나 그날의 얘기를 하며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시는 게 딱 좋다. 여행을 가서도 남편은 산에 가거나 둘레길 등을 걷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예쁜 카페에 머물러 시간을 보내거나 시내 구경과 쇼핑을 좋아한다.

 

그래서 우린 맞지 않는다,라고 처음부터 각자 떠나는 대신,  같이 여행을 가되 하루 정도는 아침에 헤어져서 각자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내고 저녁에 만나 그날의 경험과 감상을 공유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여행의 타입은 이렇다.

 

  그래도 이제는 혼자만의 1박2일 여행을 해 봤으니 혼자 여행을 한 번도 안(못) 해 본 아줌마가 아닌 것이고 이제 누군가의 어떤 기준으로는 '진정한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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