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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Nov 16. 2022

엄마의 첫 피씨방

게임이 이렇게 재미있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소 중에서 나는 평생 안 가게 될 거라 생각하는 곳들이 있다. 내 경우에는 '피씨방'도 그런 장소 중 하나였다. 


 어느 토요일 오후, 게임너무알못인 엄마를 수발해야 하는 비장한 표정의 큰딸과 함께 피씨방에 놀러 갔다. 큰딸이 만들고 있는 피씨용 전쟁 게임의 베타테스트 기간이라서 한번 해 보고 싶기도 했고 요즘 하나씩 하는 새로운 경험으로 피씨방 체험도 좋을 것 같았다.

 

 나는 모범생 카테고리에 속했던 딸만 둘을 키웠기 때문에 아이를 찾으러 미친 여자처럼 동네 피씨방을 뒤진 경험도 없고 게임이라면 '아주 치가 떨려' 본 적도 없다.

 우리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일 때 다른 엄마들이 '저 놈의 피방을 싹 다 폭파하고 싶다'고 괴로워할 때, '내가 그 앞까지 태워다 줄게' 하며 맞장구를 친 적은 있다.

 그래서인지 피씨방은 나에게 쳐다보기도 싫은 곳이 아니고 한 번쯤 가 보고 싶은 재미있는 곳이었다.

 구독 중인 개그 유튜브에서 요즘 피씨방 음식들이 식당보다 맛있어서 미래에는 피씨방에서 상견례도 하고 생일파티도 한다는 내용의 코믹 영상을 보고 나서는 더욱 궁금해졌다.

 

 혹시 50대 아줌마가 돌아다니면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까 싶어 실내 마스크가 필수인 게 은근히 고마웠지만 어느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다들 자기 의 모니터 말고 주변에는 아무 관심이 없던 것이다.




 게임을 다운로드하는 동안 호기심이 가득한 미어캣처럼 피씨방 안을 둘러보니 청소년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이용자가 있었고 실내는 깨끗하고 쾌적했다.  간단한 식사와 스낵, 음료를 파는 카페테리아가 있고 흡연실이 따로 있었다. 환기가 잘 되는지 우려하던 담배 냄새도 나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키오스크에서 결제를 하면 그 후의 모든 용건은 내 자리에서 클릭만으로 해결된다. 안락한 의자에서 일어나는 건 화장실에 다녀올 때뿐이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모니터 가득 생생하게 펼쳐지는 영화 같은 전장의 디테일과 등장인물들의 실제 같은 액션에 극초보 게이머의 어안이 벙벙했다.

 이런 게임이 생전 처음이라 기본적인 툴 사용법을 몰랐다. 딸이 옆에서 계속 가르쳐 줬지만 어느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움직인다는 게 얼른 외워지지도 않고 이제는 소근육이 굳은 나이라 머리로는 다 알겠는데 마우스 조작 쉽지 않았다. 처음 컴퓨터를 배우는 노인들이 마우스 더블클릭을 못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아주 딱 이해가 되었다.


 확실히 피씨 게임은 내가 즐겨하는 프렌즈퐁 계열의 단순한 퍼즐 게임이나 동물의 숍 같은 귀여운 꾸미기 게임과는 생동감과 오락성의 강도가 달랐다.

 처음에는 아무리 가상 세계라 해도 살상 무기로 상대를 퍽퍽 깨뜨리는 것이 내키지 않아 주저했는데 자꾸 하다 보니 무감각해져서 열심히 적군을 쳐 내게 되었다. 그래서 게임에도 이용 가능 연령이 정해져 있다.  

 나는 미천한 실력으로 다섯 번 정도 출전했다. 16명이 한 팀인 우리 부대는 계속 패했고 매회 결과 보고 때마다 나는 아군 16명 중 압도적인 수준 차이로 16위였다. 내가 시작하자마자 죽으면 어디선가 우리 편이 달려와 나를 살려주었는데 살려주자마자 나는 적군의 공격으로 다시 전사했다.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그러다가 드라마와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피씨방 이용 시간이 카운트다운에 들어마지막 전투에서 나도 치열하게 움직였고 처음으로 '승리'라는 글자가 뜨는 순간 이용시간이 끝나 모니터가 꺼졌다.

 

 아마 이런 플롯 드라마 대본에 쓰면 시청자들이 '에이, 너무 인위적이네'라 했을 것이다.

 승리라는 단어가 보임과 동시에 모니터가 꺼질 때는 나도 모르게 중학생 남자아이 같이 '악! 이겼어!!'라고 소리쳤다. 꼴찌만 하던 내 캐릭터가 마지막 전투에선 몇 등을 했는지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타임아웃이 됐다. 그 승전에서는 내가 적군의 영웅도 처치했으니 아마 최소 15위로는 마감했을 거라고 위로하고 있다.




 오랜만에 완전체로 모인 가족들의 저녁 식사만 아니었으면 게임을 더 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조금 익숙해질 만하니 아쉽게도 끝났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도 내 최애 캐릭터 블레이드의 잘 생긴 얼굴 아래에 드리운 고독한 표정이 생각났다. 이미 베타테스트 기간이 끝났으니 게임이 정식으로 출시되어야 또 할 수 있다는데 설마 내가 우리 동네 피씨방 멤버십에 가입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

 

 만약 내 아이나 배우자가 게임에 너무 몰입을 해서 걱정인 분이 계신다면, 먼 그런 기분과 마음을 충분히 공감해 주고 그다음의 대처 방식을 당사자와 함께 고민하길 바란다.


 게임, 내가 해 보니 이거 꽤 재미있다.

 

가상세계에서 나는 눈부신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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