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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Nov 16. 2022

06. 당신의 거실에 놀러 갈게요

당신의 거실을 보면 당신이 보여요

 선천적으로 게으른 내가 자발적으로 집 정리를 하게 되는 동기 부여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깔끔하고 예쁜 집을 방문하는 것이고 다른 방법은 어수선하고 정돈이 안 된 집을 방문하는 것이다. 인터넷과 티브이를 통해 보는 것도 나에겐 비슷하게 효과적이다. 여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면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1초 안에 스캔하고 자체 기준에 의거한 판단을 끝낼 수 있는데 주부가 되면 집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같다.


 아는 사람의 집에 갔을 때 손님인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면서 집안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 공간이 바로 '거실'이다. 사람들의 집은 지극히 사적인 장소지만 거실은 공적인 기능을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거실에는 남에게 보여줄 수 있는 만큼의 사생활이 노출돼 있고 슬쩍 보여주고 싶은 집주인의 취향과 센스가 있다.


 한국의 국평이라는 32평 아파트 구조는 건축연도에 따라 2베이, 3베이, 4베이로 정형화돼 있어 엇비슷하나 그 안에 담긴 거실의 표정은 집주인과 닮았다. 최근 몇 년간 인테리어를 새로 한 집들이 거의 똑같이 화이트 톤의 벽과 바닥을 바탕으로 하지만 거실장과 주변의 가구와 오브제들이 집안의 분위기를 만든다.  


 



 동갑내기 L의 집에 갔을 때, 새 집으로 이사하는 대신 오래 살던 집을 싹 인테리어 했다고는 했지만, 정말 아무것도 늘어져 있지 않은 거실에 놀랐다. 비결은 서랍이 많은 거실장이라 했다. 생활에 필요한 용품은 거기에 자리를 정해 두고 사용할 때만 꺼내 쓰면 말끔한 상태가 유지된다고 했다.  

 남편은 지방근무 중이라 주말부부이고 아들은 군대에 가 있으니 사실 집을 늘어놓을 가족이 고등학생 딸과 자신뿐이라는 점도 만만치 않은 비결일 것이다.

  

 아무것도 없이 모던한 거실을 유지하는 내 친구 L의 집



 평소에도 클래식하고 고급스러운 취향을 가진 동창 M의 거실은 그녀만의 분위기가 난다.   가구들이 가진 아우라가 흔한 화이트 모던 인테리어와는 완전히 다르다.

 M은 L과 달리 성인 자녀 둘을 포함한 부부까지 네 식구가 한 집에 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제 들이닥쳐 확인해도(?) 깔끔한 집을 보면 내게 이런 친구가 있다는 게 자랑스러울 뿐이다.

 

또 다른 친구 M은  L과 완전히 다른 클래식한 거실을 가졌다



 선배 K는 연령대가 60을 바라보는 분이라 거실의 분위기도 우리 또래와 달랐다. 그레이톤 배경에 배치된 예스러운 가구나 소품은 주부의 확실한 취향을 주장다.

 20대 남매는 티브이를 거의 보지 않거실 대신 부부 침실로 티브이를 옮겼다. 자기 전까지 티브이를 보는 남편들에게 매우 좋은 구조다.


거실 아닌 안방에 티브이를 둔 선배 K의 집



 외국생활을 오래 한 후배 K의 거실은 우리에게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거실 가구의 대명사인 티브이와 소파가 아닌 피아노와 수납장, 4인 가족의 식탁과 크고 작은 책꽂이있다.

 요즘 보기 드문 우드 몰딩은 오히려 은은하고 조용한 멋이 느껴진다.

 후배 K는 SNS 프로필 사진에도 주로 예쁜 접시나 독특한 가구 등을 올려놓는다.

 푹신한 소파에 옆으로 누워 티브이를 보는 게 취미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인색한 거실이다.


개성 있는 가구와 오브제, 식탁으로 꾸민 후배 K의 거실



 고등학생 아들이 있는 후배 Y네는 티브이 바로 옆에 데스크톱이 있다. 자칫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유해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을 고려한 것으로 그 또래의 아들이 있는 집에서 흔다. 아들이 친구들과 음성 채팅을 하며 게임을 즐기고 엄마는 티브이로 드라마를 볼 때 서로 볼륨을 점점 높이게 된다고 한다.

 이 집 아들이 성인이 되면 후배네 티브이와 데스크톱도 각자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자유롭게 늘어진 케이블이 친근한 후배 Y의 거실


 어쩐지 집안일을 미루고 자꾸 소파에 눕게 될 때 일부러 꺼내 보고 찬물 세수를 받는 사진이다. 내가 1기 신도시의 마스튜어트라 부르는 선배 C의 거실 전경인데 딱 나의 워너비이다. 이 선배를 보면 가끔 <위기의 주부들>의 브리가 생각난다.


 선배는 삼 남매를 둔 주부이고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하루 루틴을 시작하지만 나처럼 전업주부가 심심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번 모임에서는 아침에 구운 쿠키나 빵을 나눠 주고 특별한 날이든 평범한 날이든 우리들에게 깜짝 선물 자주 한다. 나와 동네에서 커피 번개를 할 때도 빈손으로 나오지 않는다.

 정말이지 놀라운 사람이고 나도 따라 하고 싶지만 이번 생애에는 불가능한 일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음 생에나 모방 가능할 것 같은 살림의 여왕 선배 C의 거실

 



 

 '그래서 니네 집 거실은 안 보여주니?'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이 글의 제목이 '당신의 거실에 놀러 갈게요'니까 우리 집 거실은 지금 공개하지 않아야 될 거 같다.

 집안일은 최소로만 하면서도 늘 심심해하는 52세 주부의 일상이 진행 중이라 곧 '25년 차 주부이면서 주부 0.5단인 나의 살림'에 대해 한번 정리할 기회가 올 것이다.

 

 위에 공개한 거실의 주인들을 며칠 후에 만난다. 인생 선후배들과 맛있는 것을 먹으며 서로 비슷하지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한 뼘 더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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