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릴 때 읽어 주던 그림책 <단골손님>과 <어처구니 이야기>가 기억난다.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책들이다. 두 권의 그림책을 읽으면 지금도 많이 쓰는 '단골손님'이란 말이 왜 생겼는지 알게 된다.
옛날에 '손'이라는 귀신이 옥황상제 몰래 사방팔방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우환을 퍼뜨렸는데 그 귀신을 달래 보려고 사람들은 '손님'이라고 불렀다. 가장 무서운 전염병이던 천연두도 '손'이 옮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큰 병이 돌고 근심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동네 무당을 정해 놓고 굿을 했는데 그 무당을 '당골' 혹은 '단골'이라 했다.
우리가 즐겨 찾는 가게를 '단골집'이라 부르고, 그 매장에서는 자주 오는 우리를 '단골손님'이라 부른다. 가게 주인과 손님이 서로를 '단골'로 부르는 셈이다. 나에게 돈을 주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사람을 귀신과 무당을 지칭하던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 어쩐지 알 듯도 하다.
좋은 단골은 단순히 자주 오고 물건을 많이 사 주는 것을 넘어, 나와 발전적인 인터액션이 되는 사람이다. 이기적이고 취향이 편협한 사람은 좋은 단골이 되기 힘들다. 현실의 매장 안에서 일어나는 고객과의 소통은 인기 유튜버가 라이브 방송에서 실시간 큐에이를 바로바로 해결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내가 공급자의 시선에 갇혀 미처 챙기지 못하는 부분을 개선하도록 쿡 찔러주는 고객이 좋은 고객이다.
우선 굳건한 단골 고객층을 확보하자. 사적인 관계의 지인이나 이웃들로 시작해도 좋다. 손님의 시선에서는 사람들이 한둘이라도 앉아 있는 카페가 문을 열고 들어서기에 쉽다. 그리고 점차 신규 고객을 늘려가야 한다. 전체 매장고객의 2,30퍼센트정도가 거의 매일 오는 단골이면 괜찮다.
단골 확보를 위해 타겟 고객층을 먼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아쉽지만 작은 개인 카페는 취향이 극명히 갈리는 여러 그룹을 동시에 만족시키기가 참 어려운 데다가 카페 자체가 트렌드에 민감한 업종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듣도보도 못한 흑당이란 재료로 만든 음료가 유행을 하거나, 크로플이란 디저트가 대세가 되기도 하고, 아샷추라는 신조어가 나오기도 한다. 내 카페 주류 손님들의 성향을 파악하면 그런 급격한 손바뀜 속에서 우리에게 적절한 것들을 선택해 효과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우리 카페처럼 주부들이 많이 오시는 곳이라면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메뉴나 스무디, 프라페 같은 메뉴를 새로 준비하기보다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등 항상 꾸준히 팔리는 라인의 맛과 가격을 유지하되 예쁜 찻잔을 쓰거나 곁들이는 디저트를 개발하는 부가적인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
우리도 '아샷추(복숭아 아이스티에 샷을 넣어 먹는 메뉴)'가 매우 독특하고 맛있다는 말에 매장 내에 아샷추 메뉴를 꽤 오래 홍보한 적이 있는데 딱 석 잔 팔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고객 관리는 눈대중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매월 렌탈요금을 내며 사용하는 전문기업의 포스 뿐아니라 최근에 작은 카페들이 많이 사용하는 무료 포스 어플에서도 고객 분석을 도와주는 데이터를 많이 얻을 수 있다.
신규 고객과 재방문 고객의 비율, 자주 쓰는 카드사, 고객별 방문횟수, 일별 방문 고객수의 그래프 등은 기본적으로 제공되고 사용자의 몇 번의 클릭으로 회원 메뉴를 이용하면 성별, 연령대, 취향 등을 저장하여 우리 매장의 손님들의 특징을 분석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손님들이 많이 오시네 하는 눈에 보이는 대강의 흐름을 정확히 확인하면 늘 고민인 메뉴 개발과 구체적인 운영 방침 수정 등에 도움이 된다.
전화번호를 포스에 입력해서 포인트를 쌓으면 고객에게 문자로 공지되는 서비스가 있지만 아직도 스탬프를 찍은 종이 쿠폰들을 잔뜩 전시한 카페도 많다. 포스 안에 저장돼 눈에 보이지 않는 데이터 대신 우리는 이렇게 단골이 많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우리 카페는 손님이 취향에 따라 선택하시도록 두 가지 방법을 혼용하였다. 예쁜 스탬프를 찍어 모으는 재미로 오시는 분들도 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사람들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카페를 운영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힘든 적은 없다.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 기간 많은 손님들을 만나다 보니 타인의 얼굴을 익히는 능력이 늘었다. 어떤 손님이 두번째 방문하시면 기억이 났다.
그런데 일부러 모른 척하고 건조하게 대한 적도 많다. 인터넷에서 '카페 사장님이 나를 알아보는 순간부터 거기 가기 싫었다'는 글을 본 다음부터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아는 척하거나 불필요한 말을 거는 것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으니 내가 가진 눈치를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
'단골만 보고는 장사하기 힘들다'라는 말과 '단골 장사를 잘 해야 성공한다'는 말은 결국 둘 다 맞다. 단골 손님은 주인에게 기쁨과 아픔을 동시에 주는 애증의 존재다. 기쁨만 주는 단골 손님이 많다면 금상첨화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고마운 단골손님으로 여겨진 분이 어느 순간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으로 바뀌는 일도 매우 흔하다.
내가 카페에서 만난 분들은 나의 '손님'이다. 내 친구가 내 가게의 손님이 되기는 쉽지만 내 손님이 내 친구가 되기는 어렵다. 고객과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딱 필요한 배려와 애정만을 드리고 그 다음엔 더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나의 단골이라 철썩 같이 믿은 분들이 새로 생긴 옆 카페의 컵을 들고 다니는 불편한 모습도 대범하게 넘겨야 마음이 편하다.
2020년이 시작되자마자 전세계를 장악하여 아직까지도 길게 꼬리를 늘이고 떠나지 않는 팬데믹의 암흑기에는 그야말로 단골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었다. 일상적인 접촉만으로 퍼지던 괴질의 정체를 전혀 모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드시 집밖을 나가야 하는 경우 외에 외출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회사나 학교로 간 후 집안일을 마치고 만나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려는 주부들이 주 고객이던 우리 카페는 그야말로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매일 최저 매출을 갱신하다가 하루 매출이 만 오천원인 적도 있다. 커피 메뉴의 평균단가가 3천원이니 하루 종일 다섯 잔을 판 것이다.
정부에서 운영시간 제한, 매장내 취식 제한 등 카페에 대한 방역지침을 쏟아낼 때 내 걱정을 하고 마스크를 단단히 쓰고 나와 커피를 사 가던 고객들은 모두 나의 단골들이었다. 그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카페 8년차에 맞닥뜨린 코로나의 폭우 속에서 버티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여름이면 우리 카페 테라스에 다년생 화초인 프렌치메리골드가 새로 피곤 했다. 꽃말을 찾아보니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이라고 한다. 단골 손님은 그런 존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