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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 시의 레몬차
밖에서 식구를 만나면
더는 서럽지 않기를
by
이명선
Jul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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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근처로 막 독립한 작은딸의 집에 처리할 일이 있었다.
집
주인은 출근하고, 휴가를 낸 남편과 둘이
상황 정리를 하고 점심을 먹으러 나
갔
다.
밥을 먹고
서
어디 가서 커피를 마실까 두리번거리다가
깜
짝 놀랐다. 딸이 회사 사람들 네댓 명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남편을 잡아끌
어
피
했다. 일하러 온
차
림으로 회사 분들께
첫인사를
하기는 싫었다.
딸
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몰골로 회사
분들과 만나기 싫어
서 피한다.
나중에
들으니 팀장님이 점심을 사 주신
대
서 함께 밖에 나와서 먹었단다.
회사 코앞에
살면 이런 일도 있겠구나.
그런데 밖에서 만난 우리 집 막내
가 다르게 보였다. 집에서는 막내딸이지만 집 밖의 사회에서 팀장님, 사수님 그리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의젓한 한 사람의 직장인
이었다.
내 눈에만 아직 어린애 같지, 이제 저 애는 제 몫을 하는 어른
이
됐구나.
점심을 잘 먹은 뱃속에다
추
가로 가슴속까지 든든해서 주책없이 좀 뭉클했다.
남
편의 직장 앞에서 퇴근하는 남편을 만나면 낯설다. 내가 아는 남자와 드라마틱하게 다르고 심지어 좀 멋있게 보인다.
집에서는 편하다 못해 해어진 반팔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소맥을 마시며 티브이를 보거나, 노견이 아무 데나 싼 소변을 치우는 모습
으
로
친숙한 남편도 밖에서 보면 딴사람 같다.
철 모르던 신혼 주부 시절
의 일이다. 지금의 내 나이쯤 된 동네 아주머니들이 '새댁, 집에 있다고 너무 신경 안 쓰면 큰일 난다. 남자들은 밖에서 예쁜 여자들을 많이 볼 텐데!
'라
혀를 찼다.
나는 발끈하며 분개했다. 밖에서 예쁜 여자를 보
면 뭐 어쩌라고,
집에 처박혀
살림하고 지 애 키우는 아내를 다른 여자들하고 비교하는 인간이라면 같이 살지도 않는다
!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남편의 직장에 혹시 예쁜 여자들이 있을까 슬쩍 걱정하고, 비록
예쁜 옷에 화장은 못 하더라도 남편이 올 시간이면 하루종일 아기와 부대껴 젖고린내가 밴 티셔츠를
갈아입고 머리를 다시 묶었었다.
..................
그렇게 키운 애들이 이제는 직장인이라니 그
무수한 날들은
지금 다 어느 서랍들에 들어앉았
나.
시를 자주 읽던 20대
에
알게 된 시인 중 김영승이 있다. 그의 시는 '반성'이라는 제목에 번호를 붙인 게 많았는데 읽는 순간 마음에
와닿아 여태 기억나는 작품
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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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만나면
서럽다
어머니를 보면, 형을 보면
밍키를 보면
서럽다
밖에서 보면
버스 간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병원에서, 경찰서에서......
연기 피어오르는
동네 쓰레기통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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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치챘겠지만 '밍키'는 시인의 반려견이다. 그때는 반려견이라는 단어
가 없었으니 '우리 집 개'라 불렀을 것이다. 1980년대에 티브이에서 방영하던 '요술공주 밍키'에서 이름을 따왔을 텐데 만화에도 개가 나오긴 하지만 밍키는 개 이름이 아니고 주인공 이름이다.
밍키라는 이름을 들으면 하얀 털리 복슬한 개가 떠오른다.
시인의 집은 고단하고, 버스를 타고 일하러 다니는 엄마는 아프고, 그런데 형은 막살고, 또 시인 자신은 돈도 안 되는 시를 쓰며 어렵게 사는 것으로 보인다. 그 집
개 밍키
마
저도 동네 쓰레기통 주변을 서성
이
다 발각되어 시인을 더 서럽게 만든다.
식구를 밖에서 봤을 때 반
가운 마음이 드는 게 아니라 서럽다니, 그 심경이 짐작되
어
서 20대의 나
처
럼 지금의 나도 마음이 아프다.
그 시의 전문
그때 시집 표지에서 흑백 사진으로 본
,
깡마른 얼굴의 젊은 김영승은 훗날 이 시를 다시 썼을까.
- 나는 이제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름을 알 만큼은 유명해졌고 어머니는 다행히 병이 나으셨고 형은 정신을 차려서 이젠 더 이상 밖에서 식구들을 만나도 서럽지는 않다고.
그리고 밍키도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는 노년을 보내다가 그리 아프지 않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고.
그래서 더 이상 우리 식구를 우연히 밖에서 보면 서럽지 않았다고.
가족은 힐링과 충전의 원천
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절반은 된다.
가진 것의 많고 적음과 하는 일의 카테고리를
불
문하고 우리는 서로에게 서러움을 주지 않
았
으면 좋겠다.
설령 그렇다 해도 그 이유로
나
의
하루
와
삶
이 좌우되지 않기를 바란다.
서러운 마음은 정 많은 나의 탓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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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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