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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Sep 04. 2024

결혼 만 일 기념일

오늘까지의 만 일, 내일부터의 만 일

 몇 달 전에 블로그 이웃이 태어난 지 만 일을 기념한다는 글을 보고, 나도 캘린더 어플에 이런저런 '만 일'을 계산해서 올려놨었다.

 우리 아이들이 태어난 지 만 일이 되려면 각각 2년, 4년이 남았다. 들의 탄생 만 일을 기념해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리 부부의 결혼 만 일 기념 체크다. '천 일 동안'이라는 노래를 열 번 부르는 기간이라니 그 길이가 놀랍고도 무거웠다.


 8월이 되고 내 폰에  캘린더가 펼쳐졌을때 케이크 스티커를 붙여 놓은 날이 보였다. 아직 많이 남은 줄 알았던 결혼 만 일 기념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에게 우리 결혼 만 일이 다음 주라고, 그날은 둘이서 조촐한 기념을 하자고 말했다.

 다음번 만 일, 즉 결혼 이만 일에도 여전히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면 좋겠지만 인간사를 장담할 수는 없 않을까.


 그날을 위해 나는 이런 축사를 준비했다.


 -지금까지의 만 일이 아이들을 키우며 산 날들이었다면 앞으로의 만 일은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 살자.


 내가 생각해도 듣기 좋았다. 그 말을 카드에 써서 전해줘야겠다.

 


 

 당일은 수요일이었다. 나는 약속이 있었고 남편은 출근을 했다.

 휴대폰 알람이 왔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출근한 남편이 축하금을 보낸 것이다. 침대에 누워서 광고에 나오는 배우처럼 일십백 세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사람이 언제부터 '돈으로 축하하는 멋진 남자'가 된 거야!


말썽쟁이 아닌데...


 친구를 만나서 오늘이 내 결혼 만 일 기념일이라고 말했다. 친구는 '만 일 기념일'은 처음 듣는다며 그런 것도 해야 하냐고, 지겹게도 살았다고 시큰둥했다.


 -근데 만 일이라 했더니 남편이 용돈을 크게 보내주더라.

 

 내 말에 표정이 달라진 그녀는 다급히 날짜를 따져봤다. 그리고는 이미 지났다고 아쉬워했다.

 나는 11111일 기념이라도 들이대 보라고 위로했다.


  친구 만나고 운동도 가고 늘 그렇듯 어, 하다 보니 축사를 적을 카드를 못 샀다.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축하 카드 대신 건배사를 했다.


 -지금까지의 만 일이 들을 키우며 산 날들이었다면 앞으로의 만 일은 우리 위해서 살자!

 




 나는 요즘 이혼 변호사들이 나오는 드라마에 빠져서 본방 엄수를 하고 있다.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평생 만나고 싶지 않은 직업 중 하나가 '변호사'이고 특히 이혼 변호사는 더 그럴 테지만 그쪽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브런치스토리이혼 소재의 글 항상 인기인 걸 보면 우리에게 이혼은 결혼보다 더 흥미진진한 이슈다. 그러니 결혼지옥이니 이혼캠프니 하는 프로그램들이 화제겠지.

 사람들은 그들을 보면서 비슷한 처지에 위로도 받고 때로는 굴레를 벗어날 용기도 고 또는 부부는 언제라도 원수가 될 수 있으니 경계심 늦추지 자는 교훈도 느낄 것이다.

 

 만 일 동안  없이 걸어온 부부라 해도 앞으로 더 가야 할 길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고 제 어디에 프나 지옥으로 빠지는 샛길이 지 알 수 없다. 

 '지지고 볶으며 산다'는 관용적 표현어하지만 지나간 날들이 다 좋았던 것이 아니니 부정할 수는 없다.

 앞으로도 지지면 지지는 대로 볶이면 볶이는 대로 스크래치 난 부분은 코팅해 가며 살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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