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온 지 155일 차가 된 군밤이는 매일 아침 산책을 한다.
밤새 에어컨을 켜고 자느라 우리 부부는 7월 내내 개집과 반대쪽 거실 구석에 매트리스를 펴고 자는데 갑자기 군밤이가 후다닥 뛰어온다.
마디를 길게 끌며 끄으응끙 소리를 내면서 우리 주변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밖에 나가고 싶다'는 뜻이다.
오늘 아침에는 아직 어둑어둑한데도 끙끙거리길래 대체 몇 신데 이러나 시계를 보니 5시 20분이었다.
나는 주섬주섬 일어나려는 남편을 끌어당기며 '버텨!'라고 말했다. 군밤이는 아직 우리와 접촉하는 단계가 아니라서 모른 척하고 있으면 이부자리의 결계 바깥에서 뱅뱅 돌기만 한다.
사람이 자는 곳에는 올라오지 못하고 눈앞의 발가락만 슬쩍 핥고 간다.
모른 척하고 누워있기는 지금만 가능한 시간 끌기 전략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분명 잠자리로 달려들어 앞발로 이불을 긁어대고 '정신 좀 들게 해 줘?' 하며 머리를 핥고 내 귀에 대고 왈왈 짖을 날이 올 것이다.
간신히 세수만 한 꼴로 나가서 한적한 데를 찾아 걷는데 나처럼 잠이 덜 깬 얼굴을 하고 개줄에 끌려 나온 이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역대급 폭염이 계속되는 이 여름 아침 6시, 우리 동네는 곳곳에서 개는 풀파워로 달려 나가고 사람은 졸음력만 채운 낮은 텐션의 캐릭터인 어떤 게임 속 같다.
개를 키우면 몸에서 개냄새가 날까 봐 걱정이라는 글을 봤다. 개를 키우는 사람만 모르지 개를 키우는 사람에게서는 개냄새가 난다는 주장도 있었고 누군가를 만나면 그가 개를 키우는지 냄새로 딱 안다는 어느 개코의 댓글도 있었다.
개와 함께 사는 사람은 다른 개가 와서 킁킁 냄새를 맡으면 '나한테 친구 냄새나니?' 하며 호의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보다 최소 만 배에서 1억 배에 가까운 후각을 보유한 개에게 한정된 대사이지 보통 사람이 맡을 수는 없다.
만약 남이 맡을 수 있는 개냄새가 나는 견주가 있다면 그 집과 본인 자체가 엄청 불결한 위생 상태인 것이다.
청소년기 아들이나 노인이 있는 집에서 특유의 냄새가 날 수 있는 것처럼 개를 키우는 집에서 냄새가 날 수 있다. 개의 체취가 방석이나 장난감에 묻고 개가 누비고 다니며 집안에 퍼진다. 사용한 배변 패드가 깔려 있거나 배변 장소가 청소돼 있지 않으면 거기서도 냄새가 발생한다.
사람이나 개나 냄새 유발 당사자들 몸과 서식환경을 케어하면 냄새를 관리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집에 한창 사춘기 아들이 있나 보네?'라고 생각할 만한 냄새가 난다면 그건 아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개를 씻기면 콤콤한 냄새는 사라지고 샴푸향이 난다. 향긋한 냄새는 사람만 좋아하고 당사자는 시큰둥하다.
개의 체취는 지용성 물질이 타면서 나는 담배냄새처럼 옷과 머리카락, 사람의 피부와 폐부에까지 스미는 것이 아니라서 개와 부비는 사람이라도 매일 샤워하고 옷을 갈아입고 청소한 집에 살면 그 냄새가 타인에게 끼칠 수 없다.
그런데도 그를 만났을 때 남의 집에서 잘 자고 있는 개냄새를 척척 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약탐지인으로 추천하고 싶다.
개 키우는 사람은 개냄새를 못 맡는다는 말도 틀리다. 개 키우는 사람도 어딘가에 개냄새가 배어있으면 단박에 안다. 가끔은 내 집의 개냄새로 고민할 때가 있다.
비가 오고 흐린 날이나 습도가 높은 여름에는 냄새가 두드러진다. 특히 산책하고 들어온 개털에서는 보호자들이 '산책 냄새'라고 부르는 특유의 비린내가 난다.
산책 냄새는 꼭 짠 물수건으로 얼굴과 몸을 슥슥 닦아주면 마르면서 사라진다. 전용 물티슈 제품도 출시돼 있지만 성분 분석도 필요하고 그냥 수건 하나를 마련하는 게 낫다.
어쨌든 통상적인 위생 기준을 지키고 산다면 내 몸에서 개냄새가 날까 봐 개를 못 키운다는 것은 기우이다.
처음 군밤이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몸에서 몹시 나쁜 냄새가 났다. 당시 내가 표현하기로 '양말 고린내에다가 청국장 한 스푼을 비빈' 냄새였다.
우리에게 곁을 안 주는 군밤이보다 그 냄새가 고민이었다. 목욕을 하면 속이 시원할 텐데 만질 수 없는 사이였다.
나는 이 냄새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걱정했다.
자칭 '개박사'라는, 지인의 딸이 내 고민을 전해 듣더니 '스트레스를 받아서 나는 냄새라서 좀 있으면 없어진다'고 단정했다. 그 무렵 나도 개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책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
개가 긴장하고 두려울 때 항문샘과 피지에서 나쁜 냄새가 날 수 있으며 안정을 찾으면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진짜로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냄새가 차차 옅어지더니 며칠이 지났을 때는 완전히 없어졌다. 냄새가 났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다가 지금 개냄새에 대해 쓰다 보니 기억이 났다.
군밤이가 깔고 자는 쿨링패드를 세탁하려고 걷으면 슬쩍 개냄새가 나지만 그건 내 베개에서 나는 내 냄새와 똑같이 군밤이에게서 나는 군밤이 냄새다.
군밤이를 보러 처음 수백 마리 개들이 사는 유기견센터에 갔을 때 코를 통과해서 뇌 속까지 압도하는 냄새에 깜짝 놀랐다. 옷은 온통 칼라풀한 개털 범벅에 명랑한 활동가님들을 보며 하루 종일 이 냄새를 어떻게 버티는 건지 놀라웠다.
얼마 전에 센터 활동가님이 우리 집에 교육차 오셨다. 센터에서와 달리 옷에 개털이 없이 깔끔하고 그분이 일 년 내내 일하시는 곳의 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활동가님의 바짓자락에 군밤이 털이 몰래 묻어갔을 것이다.
군밤이가 살던 센터의 소형견사에는 이제 군밤이 냄새가 없다. 그러나 군밤이가 두 해 동안 머물며 벗어낸 묵은 털들 중에서 청소기의 진압에도 용케 살아남은 분량이 지금도 거기 어디에 뭉쳐 있을 것 같아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