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sns 친구 중에는 제주도에 사는 여성 소설가 Y가 있다. 작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만큼이나 제주의 밭에 묶여 살아가는 개들을 찾아 돌보는 일에 성의를 다 한다.
비참하게 살면서도 찾아온 사람에게 꼬리를 치는 개들을 돌보는 따스한 사람으로만 알았는데 그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그의 소설은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한 깊이의 이야기를 딱 내가 좋아하는 문체로 풀어나갔다.
그가 더더 좋아졌다.
씽씽이는 그가 자주 소식을 올려주는 밭지킴견이다. 제주도에는 귤밭, 꽃밭 수만큼 밭지킴견이 많다고 한다.
씽씽이는 평생을 돌담 아래 밭 구석에 묶여 혼자 지낸다. 사진으로 본 개집 주변에는 위험해 보이는 큰 돌이 많고 비가 오면 웅덩이가 되는 땅에 나무뿌리가 거칠게 자란다. 한쪽 옆에는 농사용품 쓰레기도 쌓여있다.
착한 소설가는 개집 주변도 정리하고 주인이 가끔 와서 붓고 가는 짜고 맵고 쉰 음식을 버리고 좋은 사료와 깨끗한 물을 챙겨준다.
그는 척박한 곳에 묶여 사는 개들의 주인에게 나긋하게 잘 말해서 산책을 함께 한다. 그나마 산책을 허락하는 주인은 낫다. 씽씽이의 주인은 할아버지인데 자기 개를 보러 오지도 말라했고 너무 짧고 무거운 줄을 긴 줄로 바꿔주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소설가는 용감하게 줄을 바꿔주고 몰래몰래 씽씽이를 만나러 간다. 비바람이나 막아줄까 싶은 개집에 묶인 씽씽이는 그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무슨 밭을 지키라고 거기 그렇게, 살아서 뛰고 싶은 개를 친친 묶어 두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피드에서 씽씽이와 다른 개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아프다.
씽씽이에게는 마음 착하고 든든한 랜선 이모들이 있다.
찌그러진 밥그릇 대신 쓰라고 넉넉한 스테인리스 그릇을 보내주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업소설가의 통장잔고를 염려해서 사료나 간식, 장난감을 보내주는 이모들이다.
소설가가 바쁠 때 씽씽이를 돌봐주는 제주의 사진관 사장님도 있다.
소설가는 전국의 이모들에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그 돈을 다른 유기견들에게 후원하라'고 적는다.
sns를 통해 시골의 열악한 환경에 버려진 개들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귀농해서 육포를 파는 청년도, 아이들을 키우는 평범한 주부도 자기 시간을 내서 어둠 속의 생명들을 찾아 살핀다.
가여운 개를 임시보호하거나 입양하는 것도 커다란 직접 행동이다. 그리고 나설 수 없는 사람들은 간접적인 후원으로 힘을 더한다. 댓글을 쓰고 좋아요도 누르고 간식이나 그늘막을 보내고 내가 마실 커피 값을 아껴 정기적으로 송금하며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나는 오늘도 씽씽이 소식을 본다.
남은 음식물 대신 사료를 먹고 눈물자국이 옅어진 씽씽이, 여름볕에 뜨겁게 달궈지는 쇠사슬 대신 탄력 있고 가벼운 줄을 매고 뛰어오르는 씽씽이, 소설가가 간식을 주면 그것도 안 먹고 만져달라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씽씽이를 본다.
나는 꿈에서 씽씽이를 데려왔다. 암컷인 군밤이와 수컷인 씽씽이가 서먹하게 대해서 남편과 둘이 깔깔 웃다가 깼다.
씽씽이는 주인이 있는 개고 할아버지가 귤밭을 지키라고 묶어놓은 터라 입양을 보낼 가능성은 낮다. 만약 씽씽이가 입양을 가도 그 자리에 또 다른 강아지가 묶일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주인 할아버지가 복날에 잡아먹거나 심심풀이로 때리지는 않는 게 다행이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따뜻한 소설가와 실천력 있는 랜선 이모들이 많아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씽씽이들을 위한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세워달라는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다. 최소한 국제동물복지 기준에 맞춰서 한여름과 한겨울에는 지붕이 있는 개집에서 기본적으로 사료와 물을 마시며 살 수 있게 법으로 규정해 달라는 내용이 있다.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내가 어릴 때는 얌전한 개들은 돌아다니다 들어오니 풀어놓았고 도망가기 좋아하고 정신없는 개들은 묶어서 키웠다. 사람들이 동네에 시도때도 없이 쥐약을 놓던 시절이라 개들이 먹고 죽을까 봐 묶어놓기도 했다.
묶어 둔 개에게도 산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들은 개집 안에 담요를 깔아줬고 개밥과 물을 챙겼다.
그런 시절로부터 40년이 지나갔고 우리나라는 몇 십 배로 잘 사는 나라가 됐다. 2027년부터는 식용을 목적으로 하는 개의 번식과 사육, 유통이 금지된다.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그 나라 시민들의 수준이라는 말이 있다.
개, 고양이, 돼지, 소, 말 그리고 야생의 동물들까지 우리와 함께 사는 동안은 각자의 생존과 복지를 살피는 멋진 나라의 국민이고 싶다.
군밤이와 시원한 오전 시간에 집 앞 산책을 한다. 군밤이는 내가 자기 목에 줄을 거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지만 어렵사리 줄을 매고 일단 밖으로 나서면 여름 아침의 산들바람과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를 헤치고 사뿐히 걷는다. 택배 아저씨의 끌차가 시끄럽게 지나가도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씽씽이네 주인 할아버지는 개 산책을 못 시키게 한다. 소설가는 주인이 산책을 데리고 나가도 좋다고 허락한 다른 개들을 데리고 여전히 그 자리에 묶인 씽씽이를 만나고 간다.
나는 씽씽이가 바닷가를 뛰며 미치도록 기뻐하는 사진을 보고 싶다. 그래서 매일 씽씽이 소식을 열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