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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Feb 28. 2023

나를 울린 어리굴젓

서해안 자연산 굴로 담근 별미보다 그 마음

 -오늘 어리굴젓이 택배로 올 거야.  


 남편이 아침에 출근하며 무심히 말했다.


 며칠 전 저녁을 먹으며 티브이를 보는데 어리굴젓이 나왔다. 빨갛고 동글동글하게 잘 버무린 어리굴젓을 하얀 밥에 얹어 먹는 모습이었다.


 가족들은 아무도 젓갈 반찬을 좋아하지 않는다. 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굴로 만든 젓갈은 더더욱 좋아할 수 없을 것이다.

 나만 생굴을 초고추장에 듬뿍 묻혀 먹기 좋아하고 새빨간 굴젓과 굴무침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릴 때는 굴을 전혀 먹지 않았고 친정 식구들도 굴을 즐기지 않다.


 그냥 언제부턴가 나는 굴을 좋아하는 사람이 돼 있었다.


 



 주부는 나 혼자 먹으려고 뭔가를 사지는 않는다. 식구들이 좋아하는 재료로 식구들이 잘 먹는 반찬을 만든다.


 몇 해 전에 마트에서 식품코너를 구경하다가 어리굴젓이라고 쓰인 통을 보았다. 어리굴젓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어리굴이라는 것으로 만든 젓갈인지, 어리어리한 맛의 굴젓이란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젓갈을 들여다보니 판매원이 설명을 해 주었다.

 

- 이건 어리굴젓이라기보다는 굴무침이여요. 한번 맛보세요.


 한 가닥 집어 맛을 보니 특유의 굴향과 매콤한 양념이 어우러져 맛있었다. 그렇지만 가격도 제법 있었고 그걸 산다고 해도 식구들은 아무도 먹지 않을 테니 덥석 사기가 꺼려졌다.


 - 맛있네요, 근데 먹는 사람이 없어서.... 다음에 살게요.


 그렇게 어리굴젓이란 이름표를 단 굴무침 앞을 떠났다.


 




 저녁을 먹다가 티브이에서 어느 산골의 어리굴젓이 올려진 밥상을 보고 남편에게 문득 그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마트에서 어리굴젓살까 하다 아무도 안 먹는데 뭘 사나 하고 온 적이 있다고.

 근데 어리굴젓이랑 굴무침이 다른가?

 그때 이름표는 어리굴젓이라 써놓고 판매원은 굴무침이라 하더라고.


 이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 오늘 낮에 어리굴젓이 배송돼 왔다.

  남편이 주문한 것이다. 100그램씩 열 통이었다.


 - 당신이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 너무 짜면 파, 마늘, 참기름, 깨소금 넣고 무쳐 .


  남편은 어리굴젓을 안 먹는데도 맛있게 먹는 법은 알고 있다.

  아마 저녁에 퇴근해 오면 옷을 갈아입자마자 파, 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어 한번 더 무쳐서 나에게 줄 것이다.


  아니, 나 혼자 일 킬로를 언제 다 먹냐고. 조금만 사지. 늦은 점심으로 빨간 어리굴젓에 흰밥을 김에 싸 먹으며 살짝 눈물이 났다.

   

 - 나를 진짜 사랑한다면 어리굴젓 같이 먹자!

 

 이렇게 말하면 얼굴을 찌푸릴 남편을 놀려야지 생각하면서 웃는다.



어리굴젓 좋아하시면 나눠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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