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남편의 근속 기념품
우리는 언제까지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by
이명선
Mar 21. 2023
친구가 남편 회사에서 준 25주년 근속 기념 선물이라며 사진을 보냈다. 무척 멋진 장식을 한 원목 태블릿 거치대와 기념 반지였다.
남편이 받은 것을 자기 손가락에 끼고 사진을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게 귀여웠다.
1997년부터 25주년 근속이라면 이겨 낸 월요일이 몇 날인가. 남편 친구도 수고 많았고 내 친구도 정말 수고가 많았다.
우리나라 50대 초중반의 남자들이 한 회사에 근속하면 보통 20주년을 넘어간다. 요즘처럼 이직이 흔하지 않았을 때 직장을 가졌고 평생직장의 가치관을 고수하며 다니는 것이다.
남편도 올해 근속 24년이다. 토요일도 일했다가 격주로 노는토요일 제도가 있었다가 주 5일 근무로 바뀐 근로의 역사를 지나왔다.
코로나를 겪으며 주 4일 근무제란 말까지 나오던 마당에 갑자기 요즘 업계가 어수선하다.
이제 회사 근속 1년을 열심히 채우고 있는 큰따님이 대노에 차 계시다.
남편 회사의 근속 기념 선물이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0주년은 3돈짜리 금메달이었다. 15주년, 20주년은 잊어버렸다.
사실 회사 선물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이렇게나 오래 한 회사를 다녔다는 사실에 놀랍고 고맙고 그날 저녁은 가족끼리 조촐한 건배를 했을 것이다.
가장이라는 역할의 무게가 어떤지 잘 모른다.
그러나 나의 인생을 살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겠다는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이해하듯이 가족 부양의 책임이 버거워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청년들을 이해한다. 너나 나나 혼자 먹고 살기에도 점점 힘들다는 현실을 공감한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남편이 임금피크에 임박해서 고민이라거나 희망을 가장한 퇴직을 권고받았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듣는다. 우리와 동갑인 내 친구 남편도 20년 넘게 일해 온 전문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로 발령을 받았다 한다.
지금 우리 나이의 남편들이 회사에 남는 비율은 매해 점점 낮아질 것이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나의 일이다. 근속이라는 명예 끝에는 사실 퇴직이 있다.
이제는 남편 퇴직 후에 같이 무엇을 하며 살까를 걱정한다. 다만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건강하게 잘 살기 위한 문제라서 다행이다.
50대 중후반에 회사를 나와 아무것도 안 하기엔 너무나 젊다. 그렇지만 근속의 금메달을 위해 쉬지 않고 출근한 지난날과는 다르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 겠다.
지금까지는 종종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 자주 퇴직 이후의 생활에 대해 고민하고 찾아봐야겠다.
일단 6개월 정도는 쉬면서 여행도 좀 하고 드디어 구속이 끝난 것을 기념해야겠지? 그때야말로 평생 고용주인 마누라님이 마지막 근속 기념품을 선물해야겠다.
하필 남편의 월급날 오후에, 친구가 보낸 근속 기념품 사진이 불러낸 나의 상념은 여기까지.
남편의 근속 10주년 기념품-지난 20주년엔 금값이 너무 올라 안 줬나
keyword
퇴직
회사생활
기념품
18
댓글
2
댓글
2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이명선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주부
우리의 매일매일은 나름대로 '좋은 하루'입니다. 오늘도 새로운 경험을 업데이트하며 살고 있습니다.
팔로워
382
제안하기
팔로우
작가의 이전글
딸의 방에서 디올을 줍다
열네 살 반려견과 동네 한 바퀴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