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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선 Apr 10. 2023

열네 살 반려견과 동네 한 바퀴

반은 안고 다녀야 하지만

 미세먼지도 사라지고 꽃샘추위도 회복되어 날씨가 아주 좋았다. 가끔 부는 바람 정도야 봄의 꽃바람이다.

 열네 살 우리 반려견은 요즘 멀리까지 산책하지 못한다. 우리 아파트 한 동을 둘러싸는 짧은 길이의 숲길을 순찰하면 곧장 집으로 나를 이끈다. 산책 시간이 보통 10분 이내에서 길어도 20분을 채우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래도 아직은 매일 나가고 싶어 해서 다행이다.


 오늘은 반려견을 데리고 좀 오래 산책하고 싶어 작정하고 나갔다. 작년 봄까지만 해도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돌고도 집에 오기 싫어했었는데 노견의 체력은 한 해가 아니라 한 달이 다른 것 같다.  

 집 앞에서부터 기운과 시간을 소모하면 아파트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그만 겠다고 버틸 것이 분명해서 일단 품에 안고 출발했다.

   

 사람이 없고 조그만 공원이 있는 곳에서 개를 내려놓았다. 소형견이라도 리드줄 길이는 2미터 이하로 해야 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으면 좀 길게 해 주고 누군가 보이면 바로 바투 잡는다.

 

    



 개를 산책시키는 시간은 사실 나의 산책 시간이다. 개와 함께가 아니라면 그렇게 꽃나무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이름을 찾아보거나, 가만히 바람을 맞고 서 있을 리가 없다.  

 개와 나는 각자의 관심사가 있다.

 나는 벚꽃이 가서 섭섭할까봐 피어준 라일락이 반가워서 노래를 저절로 흥얼거린다.

 개는 코에 라일락꽃을 들이밀어도 마다하고 잡초 주변에 뿌려진 다른 개들의 흔적에만 관심이 있다.

 소개팅 약속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개들은 잡초에다 돌아가며 부지런히 마킹을 한다.


 다른 아파트 단지로 놀러 갔다. 거기에는 조그만 호수도 있고 오르내리는 오솔길과 나무다리도 있다. 여름에는 분수도 틀어놓는다.

 아직 분수는 틀지 않았고 호수에도 물이 빠져 있었지만 색다른 냄새들에 개는 신이 났다.

 둘러보니 우리 아파트와는 다른 아기자기한 조경에 잘 정돈된 분위기이다.   

 개는 그 아파트가 얼마인지, 우리 집보다 비싼지 어쩐지 관심이 없다. 주인은 그 단지의 매물과 시세를 슬쩍 검색한다. 딱히 어쩌겠다는 건 아니다.   



아저씨, 꽃냄새를 좀 맡아보라고요



 


 개가 지쳐 보여서 네 발을 손으로 대충 털고 안았다. 저 앞 벤치에 앉아 아까부터 우리를 보던 아주머니가, 개가 몇 살이여요? 하고 묻는다.

  아주머니와 잠깐 대화를 나눴다. 열다섯 살 된 요크셔테리어를 키우고 있는데 사료를 아예 안 먹어서 집에서 만든 간식으로 조금씩 밥을 먹는단다. 우리 개가 털을 말끔히 자른 것을 보고 그 애는 이제 미용실도 못 간다고 그것도 부럽다 하였다.  

 열네 살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놀라울만치 빠르게 노화가 진행되고 있다 한다.


 집으로 와서 얼굴과 네 발과 엉덩이를 씻기고 간식을 줬다.

 가끔 우리 개가 자기 집안에서 우두커니 가족들을 바라볼 때가 있다. 무엇을 달라는 표정도 아니고 그냥 아련한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럴 땐 마치 '내가 언제까지 당신들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것만 같다. 한번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정말 그렇게 보인다.


 나의 반려견아, 언제 헤어지나를 염려하지 말고 매일매일을 재미있게 살자. 개나 사람이나 노년운이 좋아야 한다는데 우리의 노년이 평탄하고 고요하기를 기대하자.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싶어 찍어 본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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