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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이주 6개월

살던 곳이 그립다

by 정대표

난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는 편이다. 어릴 적 이사를 많이 다녀 그런 게 아닐까 한다. 사실 결혼 전까지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 내가 얼마나 많이 이사했는지 알지 못했는데, 결혼 후 주민등록 초본을 떼 보고는 이사를 꽤 많이 다닌 편이란 걸 알게 됐다. 주민등록 초본에 따르면 나는 30살 무렵까지 10차례가 넘게 이사했더라. 그러나 와이프는 그게 서너 차례에 불과했다. 이렇게 이사를 많이 했으니 전학도 좀 다닌 편인데, 초등학교는 세 번, 드물게 중학교도 한 번 전학을 했다. 난 이직도 많이 했다. 같은 업계도 아니고 업계를 바꾸어 이직을 여러 번 했다. 이직할 때마다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고, 성향도 다른데 잘 적응을 했다.



그래서 난 해외 이주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뭐에 홀린 듯 그냥 자연스럽게, 또 한 번 좀 멀리 이사하는 셈 치고 이주를 했던 것 같다. 40년이 넘게 살았던 내 나라를 떠난다는 그런 대단한 느낌이 들지도 않았고, 10년 넘게 살았던 동네를 떠나면서도 그렇게 아쉽다는 생각을 이주할 당시엔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간혹 내가 살았던 동네가 문득문득 머릿속에 스친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한국에서 살던 집을 나와 길을 따라가면 꽤 키가 높은 나무들이 우거진 곳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작은 도로가 나오고, 그 도로를 건너면 좌측과 우측에 상가가 나온다. 우측 상가에는 토스트 집과 부동산이 쭉 늘어서 있고, 좌측 상가에는 은행과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상가들을 지나면 또 한 번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작은 도로가 또 나온다. 그 도로를 건너면 마을버스 정류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아이 둘 손을 잡고 마을버스를 기다린다. 이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 근처에 가면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우동 집이 나온다. 아이들을 위해 따뜻한 우동과 치킨 가라아게를 주문하고 나는 붓카케 우동과 맥주 한잔을 시킨다. 그렇게 우리 셋이 밥을 먹고 나와 지하철 역 근처 백화점에 들러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사준다. 이게 주말 나와 아이들의 의식이었다. 특히 오전에 골프를 치고 온 날이면 오후엔 와이프를 내보내고 내가 아이들과 함께 이렇게 저녁 시간을 보냈다.



이런 장면들 하나하나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돈다. 가끔은 그립다. 이미 싱가포르에서 산 지가 6개월이 다 돼가고, 외국인으로 살기엔 물가는 비싸지만 참 좋은 동네라는 거 잘 안다. 그런데도 아직도 드문드문이지만 이런 광경이 떠오르면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금 돌아가 똑같은 일을 해본다 해도 그 느낌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아련한 추억 같은 느낌이다. 마치 초등학교 6학년 전학을 갔다 다시 돌아왔을 때 같은 느낌이다. 말은 제주로 보내고 자식은 서울(강남)로 보내야 한다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전학을 갔지만, 왠지 모를 향수병에 1주일 만에 원래 학교로 돌아온 일이 있었다. 흠, 하지만 지금은 다시 돌아가려야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나만이 아니라 가족을 함께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일도 없지만 말이다.



벌써 익숙해진 창문 밖 풍경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다. 예전에 이곳에 출장을 왔을 때, 아마도 마지막 출장으로 기억하는데 이상하게도 싱가포르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해외에서 산다면 이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그때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가끔 내가 살던 동네가 그립다. 가족 그리고 친구들이 그리운 건 당연하다. 내가 언제까지 이곳에 살지,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냥 한 때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기분이 들었다는 걸 기록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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