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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대표 Aug 17. 2020

골프를 통해 배우는 인생

골프도 인생도 즐기는 게 더 좋다

내 클럽


30대 초반에 시작한 골프가 이렇게 내 유일한 취미가 될 줄은 시작할 당시엔 몰랐다. 뭐 하나를 해결하면 또 문제가 나오고, 저번 라운드 잘 쳐놓고 이번 라운드는 망하는 그런 사이클이 반복인 이놈의 골프, 때문에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한다. 골프로 밥을 먹고사는 프로 선수도 경기가 열리는 4일 내내 최고의 샷을 하기 어렵다. 코스 난이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 언더를 4일 내내 치면 우승권이라고 한다. 그렇게 3언더씩 4일을 치면 12 언더니, 우승권 스코어다. 아마추어인 난 3 언더는 고사하고 싱글 스코어, +9 미만만 쳐도 아주 잘 친 라운드라고 생각한다. +9는 파와 보기를 반씩 한 것뿐인데 이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골프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골프는 42mm가 조금 넘는 공을 클럽으로 쳐 108mm 홀에 넣는 게임인데, 그 작은 볼을 짧게는 100미터, 길게는 500미터 이상 클럽으로 3 ~ 5번 안에 홀에 넣어야 ‘Par’를 기록하게 된다. 내가 손으로 던지는 것도 아니고 클럽을 이용해서 그 먼 거리를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보내야 하는 운동인 셈이다. 비와 바람뿐 아니라 잔디도 영향을 미친다. 잔디가 짧은 페어웨이에서 공을 친다면 모르겠으나 잔디가 긴 러프에서 공을 치게 되면 긴 잔디 때문에 공을 정확히 치기 어렵다. 홀이 있는 그린은 또 어떤가? 아침 라운드 전 잔디를 바짝 깎았을 때와 잔디가 자라 조금 올라오는 오후가 되었을 때 공이 굴러가는 속도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잔디가 자라는 방향에 따라 공이 굴러가는 길도 틀어지기 일쑤다.



내 몸도 변수다. 사람마다 근력도 다르고 신장과 팔다리 길이도 다르다. 이 때문에 같은 클럽으로 치더라도 공을 쳐 보낼 수 있는 거리가 다르다.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 덕분에 비교적 쉽게 멀리 보낼 수 있게 클럽이 제작되지만, 그래도 아마추어에게는 똑바로 멀리 보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사람마다 조건이 다르고 실력도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추어 클럽을 제작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일례로 아이언의 경우 신장과 팔다리 길이에 따라 라이각 조정이 필요하다. 키가 평균보다 클 경우 클럽의 힐(샤프트와 연결된 쪽)이 뜰 확률이 높고 그렇게 되면 공을 정확히 쳐도 토우 쪽에 맞으면서 오른쪽으로 가는 푸시성 공이 나오기 쉽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문제는 골프공을 멀리 정확히 보내는 데 있어 수많은 변수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변수를 하나하나 제거하는 게 골프를 즐기는 재미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 되기도 한다.



샷을 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컨디션이 좋은 날 티샷을 하면 곧고 멀리 페어웨이로 공이 날아간다. 이제 100미터 남았다. 47도 웨지를 꺼내 든다. 이 정도 거리에선 버디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하게 된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간 순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힘차게 공 뒤 잔디를 때린다. 공은 겨우 50미터 날아갔다. 버디는 고사하고 파를 지킬지도 모르는 상황이 된다. 인생도 그렇다. 너무 멋진 시작을 했다. 좋은 학교를 나와 최고의 직장에 들어갔다. 곧 임원도 되고 사장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샷 하기 전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처럼, 신입사원으로서 해야 하는 각종 잡무는 시시하게 느껴지기 십상이다. 골프에서 결과를 생각하기 전에 지금 닥친 이 샷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처럼 인생도 지금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그러나 인생도 골프도 그렇게 매 순간 집중하는 것, 한 샷에 집중하는 게 다가 아니다.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자. 페어웨이로 공을 잘 보냈다. 그런데 그린 공략하기 앞서 살펴보니 그린 오른쪽에 해저드가 있다. 핀도 그린 오른쪽이다. 이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공격적으로 핀을 보고 쳐야 할까 아니면 해저드는 피해 핀 왼쪽으로 공략해야 할까. 파를 하기 위해서는 핀 왼쪽으로 공략해야 하지만 버디를 하기 위해선 핀을 공략해야 한다. 이런 선택, 인생 하고도 닮았다. 내가 다음 Job을 선택할 시점이 오면 이런 상황이 될 확률이 높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면서 별 탈 없이 60세까지 다닐 수 있는 회사에 남아있는 선택을 하는 건 핀 왼쪽을 보고 샷을 해 파를 노리는 선택이다. 하지만, 다른 회사에 더 높은 자리로 갈 기회가 생긴다면, 핀을 보고 샷을 해 버디를 노리는 것과 같다. 어떤 선택을 할지는 순전히 내가 얼마만큼 내 능력에 확신이 있느냐, 그리고 실제로 내 능력이 객관적으로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달려있기도 하지만, 운도 필요하다. 만약 바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강하게 부는 상황이라면 핀을 보고 샷을 하는 건 어떤 의미이겠는가?


골프도 인생도 진지하게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도 좋은 선택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현재를 즐기는 것이다. 파란 잔디를 보면서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즐기는 것 그리고 좋은 샷을 했을 때 그 쾌감을 즐기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인생도, 진지하게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거둔 성공,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소소한 재미를 느끼고 즐기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진지하게 골프를 치고 인생을 사는 것도 좋지만 골프도 인생도 그저 즐기는 것은 어떨까?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다. 너무 진지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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