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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대표 May 10. 2020

나의 20대, 그리고 꿈

꿈이 없어도 괜찮아요

어른이 되면 뭐가 되고 싶니?”


학생 시절, 수백 번, 어쩌면 수천 번은 들었던 말이다. 막연히 어릴 적 과학자가 되고 싶어 이과를 선택했지만, 내 길이 아니었음을 대학 졸업 무렵에야 깨달았다. 학과를 선택하고 대학을 선택한 게 아니라 대학은 정해두고 학과를 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일이 더 맞는지 중고등학교 시절에 깨달았다면, 이과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텐데, 여건이 그렇지 못했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특수 목적 고등학교라 이과가 아닌 과를 선택하면 내신성적에 막대한 손해를 보기 때문에 쉽사리 문과를 선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기 위해 이과를 선택해야 했고, 그중에 가장 싫지 않은 과를 선택하게 됐다.



가장 싫지 않은 과를 선택하니 공부에 흥미가 있을 턱이 없었다. 대학 1~2학년 시절에는 공부는 뒷전이고 늘 친구들과 놀러 다녔다. 대학 근처 지하철에 내려, 수업을 갈 것인가 친구들을 만나러 갈 것인가 늘 고민은 했지만, 선택은 한결같았다. 덕분에 2학년을 마치고 나니 거의 이수한 학점이 없어, 3학년부터는 졸업을 위해서라도 학교를 갈 수밖에 없었다. 계절학기까지 꽉꽉 채워 들어야 했다. 졸업하면 뭘 할 것인가 고민이 시작됐다. 대학교 진학까지는 그냥 정해진 길을 걸어도 충분했지만, 대학 이후는 달랐다. 친구들은 석박사를 한다 고시를 한다 난리였다. 내 선택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난 석박사나 고시 대신 이과가 아닌 다른 과를 선택해 공부하고 싶어 경제학과 편입을 준비했다. 준비도 허술했고, 경제학과를 왜 공부하려는 지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다. 낙방할 수밖에 없었다. 창피했다. 친구들은 이미 다 자기 길을 가고 있었는데, 나만 갈 길을 몰라 헤매는 것 같았고 능력도 부족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내 20대는 방황, 그 자체였다. 그 후 나는 꿈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취직은 해야 했기에 군 복무 후 전공을 살려 엔지니어로 취직을 했다. 역시 이건 내 옷이 아니었다. 곧 세일즈로 직무를 옮겼고, 여러 회사를 거쳐 싱가포르에서 직장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젊은 시절 하고 싶은 일이 없다고, 꿈이 없다고 20대의 나처럼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꿈이 있다고 열심히 한다고 모두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과 함께 운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꿈이 없어도 내가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다. 오히려 꿈이 있어야 하고 열심히 하면 모두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난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른다. 그저 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알뿐이다. 난 더 이상 내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몰라도 창피하지 않다. 가야 할 길을 몰라 헤매고 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어떤 길을 걷는지는 몰라도 내가 잘하는 일은 하면서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걷고 있는 길을 충실히 걸을 뿐이다. 그러면 충분히 좋은 인생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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