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구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싱가포르행이 결정되자 내 마음이 급해졌다.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먼저 링크드인을 활용했다. 프로파일은 일찌감치 업데이트해 뒀고, 내게 적당한 Job posting을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싱가포르에 세일즈 Job posting은 차고도 넘쳤다. ‘이야 잘하면 골라서도 가겠는데?’라며 희망에 부풀었던 것도 잠시, 내 경력의 장점이자 단점이 발목을 잡는 거 같았다. 20년 가까이 세일즈와 마케팅 분야에서 여러 산업군을 경험한 것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어떤 산업군도 전문가라고 행세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동남아 현지 경험이 전무한 것도 핸디캡이었다. 결국 링크드인을 통해 10여 군데 레주메를 제출했으나 인터뷰 초청은커녕 어느 한 곳도 회신조차 받지 못했다. 덜컥 겁이 났다. 싱가포르에서 백수로 지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 상황을 여러 사람과 공유했다. 동문 홈페이지 개인 게시판에 글도 써보았고, 주변 친구, 지인, 선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특히 비즈니스 스쿨 교수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이런 상황을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해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건 정말 특별한 기회가 될 수 있어. 네가 지금까지 쌓은 세일즈 마케팅 경험은 특히 스타트업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 지금까지 네가 쌓은 네트워크만 활용해도 스타트업에는 차고 넘치는 리소스가 될 수 있거든.’ 이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내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간 향후에는 전통적인 의미의 직장, 또는 조직의 힘이 더욱더 약화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위 요즘 뜨는 기업이야 막대한 이익을 누리고 있지만, 내가 그간 몸담았던 산업군은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차 그 이익이 줄어가는 추세기 때문이다. 그리고 향후 1~2년은 내가 일이 없더라도 가정은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다는 점도 상기하였다. 그렇다면 어느 한 조직에 소속되지 않더라도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일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당장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친구 이야기대로 스타트업에 계약직으로 일을 하면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사는 게 좋을지 shaping 하는 기간을 1~2년 갖는 것은 어떨까?
이런 생각까지 미치자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어떤 강점이 있는지, 그리고 이 강점을 토대로 내가 이뤄온 것을 떠올려보니 자신감도 생겼다. 어떤 산업군이든 내 세일즈/마케팅 경험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이런 나를 받아줄 곳을 찾는 게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