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세요,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회사에서 싱가포르 파견 기회가 있어 이참에 아이 둘을 데리고 와서 교육을 시키면 어떨까 고민 중이라는 글을 보았다. 사정상 와이프는 한국에서 일해야 하고 아빠가 초등학생 둘을 케어하면서 공부를 시키고 싶다는 것이었다. 생활비 문제, 헬퍼 문제, 학교와 콘도 문제 같은 현실적인 답글도 많이 달렸지만, 돈을 가져와서 쓰더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더 낫지 않겠냐는 답글도 달렸다. 일부러 유학도 보내는 마당에 회사에서 급여를 받으면서 갈 기회가 있으면 가야 한다면서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영어 사용 국가에서 사는 거는 다르다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기회라는 의견이었다. 과연 그럴까? 이에 대해 내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장점으로 생각하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생각해보자. 단일 민족에 가까운 한국에서 살다 이곳에 오면 다양한 인종 구성이 신기해 보이긴 한다. 국제 학교를 다닌다면 학교에 따라 구성이 꽤 많이 다르긴 하지만 아이들이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가진 친구를 사귈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보다 다른 민족끼리 어울리는 광경을 많이 보지는 못할 것이다. 중국계는 중국계끼리, 인도계는 인도계끼리, 한국/일본계는 또 그 나라 사람끼리 모여 살기도 하고 어울려 다니는 걸 쉽게 볼 수 있다. 둘째, 언어 교육 문제를 따져보자. 20년 전이라면 모르겠으나, 지금은 정보가 넘쳐 난다. 당장 유튜브만 찾아보아도 수많은 외국어에 대한 영상이 넘쳐난다. 따라서 영어뿐 아니라 어떤 외국어라도 본인이 마음먹기에 따라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이곳에 애들과 함께 있다고 애들이 영어와 중국어를 습득하는 게 아니다. 한국어가 모국어이기 때문에 과외나 학원의 도움을 받아 공부시키지 않으면 영어와 중국어가 생각만큼 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교육비 문제는 어떤가? 한마디로 많이 비싸다. 싱가포르 공립학교는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외국인으로서 들어가는 건 매우 어려워져 선택지에서 배제해야 한다. 그렇다면 국제학교만 남게 되는데, 예전에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가장 저렴하다는 한국 국제학교 학비가 연 12,000 SGD 수준, 보통의 다른 국제학교는 연 30,000 SGD 이상이다. 그렇다고 사교육을 안 해도 되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 쓰는 것만큼 사교육비는 들어가고, 사교육비용도 한국 대비 결코 낮지 않다.
그 외 생활비도 따져 봐야 한다. 한국에서 크게 어렵지 않게 살던 수입으로도 이곳에 오면 돈이 부족해 허덕이기 쉽다. 4인 가족 기준 한국돈 약 월 900만 원, 즉 10,000 SGD 이하면 애들 학교와 학원 보내고 집밥만 먹고 산다고 생각하면 된다. 푸드코드가 아닌 서빙을 받는 식당에서 외식이라도 한 번 하려면 4인 가족이 200 SGD는 우습다. 한국에서 한우 먹을 돈으로 그리 대단한 음식도 아닌 그저 그런 음식을 200 SGD나 주고 먹을 거란 얘기다. 집세는 또 어떤가. 외곽으로 많이 나가면 2500 SGD로도 32평 정도 콘도를 구할 수 있지만,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혹은 인기가 좀 있는 지역은 최소 4000 SGD는 줘야 한다. 즉 월 10,000 SGD에서 40%를 월세로 내야 한다는 뜻인데 그게 다가 아니다. 자잘한 수리비, 공과금, 그리고 보증금을 생각하면 거기에 월 400~500 SGD는 추가해야 한다. 그 외 자잘한 생활비는 한국 수준이거나 조금 더 높다고 보면 대략 맞다. 따라서 싱가포르가 한국보다 훨씬 더 살기 팍팍하다.
이런저런 조건을 다 따져봤는데 조금 애매하다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생각해 보면 좋다. 조금 참고 살면 어떻든 살아지겠지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할 게 아니라 부부 중 하나가 일자리를 잃을 경우, 그리고 계획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만한 상황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한국에서야 실업 수당 같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 있고, 직장이 있던 없던 살 길이 있지만, 싱가포르에서 외국인은 일자리가 없어지면 몇 주 안에 쫓겨나듯이 떠나야 하는 신세다. 또 한 가지, 싱가포르 행이 본인이나 배우자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는지도 생각해 보면 좋겠다. 가족 모두가 고생하더라도 부모 커리어에도 도움이 되고 덤으로 아이들 교육에도 좋다면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조금이나마 더 생기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해외 이주를 가족이 함께 하는 여행(Journey)이라고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여행은 하면 좋지만 하지 않는다고 큰일이 생기는 건 아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이 여행이 꼭 지금이어야 되는 이유가 분명히 있는지 따져보자. 2~3년 뒤, 혹은 5~10년 뒤에 해도 늦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