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싱가포르 생활, 안정기

그러나 또 다른 변화가 기다리고 있다

by 정대표

이번 달 말이면 싱가포르에 온 지 만 8개월이 된다. 안 그래도 빨리 흘러가는 시간인데, 사계절 날씨가 한결같은 싱가포르에 오니 시간이 흐르는 것을 더 느끼기 어렵다. 9월 중순, 지금쯤 한국은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 혹은 찬 바람이 불기 마련. 그러나 이곳은 계절에 따라 강수량이 다를 뿐 거의 25도 ~ 32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다행히 최근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아침저녁으로는 비교적 시원한 바람이 분다. 몇 달 전만 해도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잠자리에 들 때 에어컨을 켜는 일은 당연히 없고 오히려 춥다고 느껴 창문도 닫고 자는 일도 있다. 물론 대낮 해가 쨍쨍한 날에 나가보면 여지없이 땀방울이 맺히긴 하지만, 아침저녁, 27~8도만 되어도 그런대로 산책은 할 수 있다고 느끼는 거 보면 싱가포르 날씨에 벌써 적응한 거 같다.



그리고 이젠 일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내게 Cluster Role은 사실 좋은 기회였다. 여러 나라를 적어도 한 번씩은 방문해 새로운 내부 고객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덕에 그런 기회는 없어졌지만, 콘퍼런스 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꽤 많이 만나고(?) 있다. 일의 내용도 내가 가진 Expertise를 꽤나 발휘할 수 있는 일인 데다가 내 매니저의 Expertise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일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재택근무의 장점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출퇴근 시간이 절약되고 내 의도대로 하루를 살 수 있게 되어 만족스럽다.



가족도 이제 적응한 듯하다. 아이들은 말 배우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긴 하지만, 별 탈 없이 유치원을 가고, 수영과 클라이밍을 즐기며, 그리고 영어와 중국어 과외도 잘 받고 있다. 와이프와 나 역시 지인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고립감을 어느 정도 떨쳐내고 있다. 나는 골프를 치고, 와이프는 외국어를 배우러 다니면서 이주에서 오는 그리고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덜어내고 있다. 위기가 있긴 했지만, 헬퍼 역시 잘 적응하고 있다. 이주를 준비한 지 1년 정도가 지났는데, 다시 원래의 안정된 상태로 돌아간 거 같아 안심이다.



그래도 고민이 없는 건 아니다. 과연 이곳에 몇 년 살게 될 것인가? 그리고 내 커리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에 돌아가려면 5~6년 안에는 돌아가야 아이들 교육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나의 커리어는 현 직장에 남느냐 남지 않느냐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지금 같아선 심정적으로 현 직장에 남아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세일즈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세일즈로 가려고 하면 다시 회사를 옮겨야 할 가능성이 높아져 부담이다. 또, 아직까지는 싱가포르 생활이 괜찮다고 느끼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사는 건 부담이다.



인생을 살면서 몇 번의 변곡점을 지나기 마련이다. 싱가포르 이주도 내 인생의 변곡점임이 분명하고, 적어도 또 한 번은 이런 변화를 겪을 거라 생각한다. 다가올 변화가 어떤 형태로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사실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어쩔 수 없이 그 변화를 따라갈 것인지 내가 그 변화를 주도할 것인지, 아니면 적어도 그 변화를 이용하려 할지는 순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미래에 닥칠 이 변화에 불안한 마음은 버리고, 그 변화를 기다리는 자세를 가지면 어떨까 싶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이 교육 때문에 싱가포르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