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최근 가슴이 헛헛하고 살짝 우울감이 들어 왜 그런지 생각을 하다, 문득 내가 이곳에 정착할 마음이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주 초기이기도 하지만 모든 걸 한국하고 비교하고 한국이 더 낫다고 결론짓는 게 그 증거 같았다. 글로도 몇 번 썼지만, 애들 학원이나 학교를 포함한 생활 전반 역시 한국 대비 더 나은 점을 찾지 못하긴 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늘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았다. J사를 다닐 때 치열한 사내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D사는 안 이랬다는 말을 늘 했고, T사를 다니면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되면 D사나 J사는 이러지 않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게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니 그 밑바탕에는 ‘난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야..’라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즉,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고, 난 여기 속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거였다.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 이것이 내가 지금까지 20년 가까이 이어온 직장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같았다. 늘 언젠가는 떠날 곳이라는 생각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하니 내가 한 일에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 내가 잘한 일이 있어도 자랑스럽지 않고, 내가 못한 일이 있어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렇게 회사와 나를 너무 잘 분리해서 그런지, 탁월한 성과를 내도 남의 일 같았다. 참 재미있는 일이다. 내가 해놓고도 남이 한 것처럼, ‘운이 좋았죠’란 말을 툭툭 던지다니 말이다. 만약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좋은 성과를 냈을 때 너무도 기뻤을 것이고 또 재미도 느꼈을 것이다.
지금도 같은 상황인 것 같았다. 내가 여기 계속 살 사람이 아니니, 한국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리워질만하다. 게다가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한국이 더 낫다고 생각하니 더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러 상황을 따져보면 잘 적응하면서 잘 지내고 있다. 아이들은 유치원 잘 다니고 있고, 와이프는 일이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있고, 나 역시 직장일에는 거의 적응했다.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가슴 어디엔가 허한 기분이 들고, 재미가 없는 건 ‘소속감’ 문제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소속감을 가져 보려 한다. 비록 외국인 신분이지만, 싱가포르에 살 계획이니 여기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보려 한다. 이곳에 살면서 마주치는 문제를 한국과 비교하려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적응을 하려고 한다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비교를 한다 하더라도 이곳이 한국보다 좋은 점을 찾으려 노력해 보려 한다. 그리고 혹시나 좋지 않은 점이 발견된다면 받아들이거나 주어진 환경에서 조금은 나은 방법을 찾는 재미도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러다 또 갑작스럽게 한국에 돌아가는 일이 생기면, 또 그렇게 떠나면 그만, 내가 여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즐겁게 살다 떠날지,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만족스럽지 않게 살다 떠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왜 어디에도 소속감을 잘 가지지 않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행동을 하고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는 안다. 이제야 말로 싱가포르에 산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이렇게 새로운 환경에 처하게 되면 내가 선택할 태도는 ‘난 여기 있어야 할 사람이 아니야’가 아니라 ‘언제 떠날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난 여기 사람처럼 행동하고 생각할 거야’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