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이제 곧 만 5살이 되는 우리 아이들, 그동안은 키우고 돌봐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았다. 하지만 최근 아이들이 자기만의 할 것을 찾아 열중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니, '아, 저 아이들도 이제는 한 개인의 인생을 살기 시작했나 보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 서은이는 책을 좋아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이펜(책을 읽어주는 신통방통한 전자펜)을 들고 책을 보기 시작한다. 아침 식사를 하기 전까지 꽤 여러 권을 본다. 새연이는 틈만 나면 그린다. 사인펜으로 혹은 물감으로 그린다. 때로 다른 사진을 붙이거나 장식을 붙이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할 일'인 셈 같다.
참 신기하다. 먹고 놀고 잠자기를 반복하던 신생아 시절은 차치하더라도 작년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어른이 책을 읽어 '줘야' 하고 밥을 먹여 '줘야' 하는 아이들이었는데, 이제는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을 한다. 이렇게 아이들에게도 할 일이 있는 자기만의 인생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나와는 무척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하는 거 같아 부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부모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기 말을 항상 들어주고 돌봐주는 이모(유모)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고, 주말이면 늘 놀러 다니고 방에는 장난감이 가득이다. 게다가 늘 함께 하는 동갑내기 자매가 있다. 심심할 틈이 없다.
이런 만 5세 인생을 저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어 인생을 어떻게 기억할까 궁금하다. 자매끼리 즐겁게 놀던 기억만 날까? 아니면 싱가포르로 이사 온 기억이 우선일까? 또는 영어와 중국어를 힘들게 배우던 기억이 뇌리에 남을까? 부모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남을까? 즐겁게 같이 노는 부모 모습이 남을까, 아니면 야단치는 무서운 부모 모습이 먼저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을까?
아이들에게 어떤 부모로 기억이 되든 간에 본인의 인생을 시작하려는 아이들을 이제는 성인과 같은 한 인격체로 바라봐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부모로서 무한한 책임감은 느끼되 권위는 내려놓아야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처음 만난 인연이다. 이 인연이 잘 이어질 수 있게 부모로서 뿐만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로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아빠로서 뿐만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도 아이들 곁에 남고 싶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