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의 채식주의
며칠 전, 팀 내 유일한 남자 동료인 S와 만나 처음으로 둘이 한 잔을 했다. 이 친구는 인도 출신으로 싱가포르에서 일한 지는 6년 정도, 우리 회사에서 일한 건 2년이 조금 못된 비교적 프레쉬한 직원이다. 체격도 좋고 벌써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기 시작해 누가 봐도 40대 중반으로 보이지만, 30대 중반의 나이로 나와는 10살 정도 차이가 난다. 이 친구도 내 나이를 듣고는 살짝 놀라는 눈치. 그냥 편하게 수다나 떨려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마시게 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남자끼리 수다스럽게 많이도 했다. 그중 하나가, 평소에 무척이나 궁금했던 건데, 왜 인도 사람들은 채식하는 사람이 많은가 였다. 이 친구도 채식을 하는데, 비건은 아니고 우유와 계란까지는 먹는다고 한다.
“왜 넌 채식을 하니?”
“그게, 그냥 고기를 안 먹고 자라서 그런 거야. 나도 일본에 살 때 닭고기는 먹어보려고 시도했었는데, 못 먹겠더라...” 고 답하는 거 아닌가.
나는 뭔가 심오한 뜻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냥 문화적인 거, 대대손손 먹고 지낸 음식이 채소뿐이어서 그랬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지도를 하나 보여줬다. 인도 지역별로 Vegetarian과 Non-Vegatarian의 비율을 보여주는 지도다. 생각보다 육식을 즐기는 인도인이 많아 놀랐는데, S의 설명은 그랬다. 이 친구 출신지는 인도 서쪽의 뭄바이 근처로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채식주의자가 더 많다. 그 이유는 대대로 이 지역에 농사가 잘 되 곡식이 풍부했다고 한다. 즉, 고기를 먹지 않아도 충분히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어 채식 위주의 식단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인도 동쪽과 남쪽으로 가면 압도적으로 채식주의자가 적다. 이유는 그 반대로 생각하면 되겠다. 동쪽 지역은 특히 생선 요리가 많이 발달했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보니, 예전에 알고 지냈던 인도 출신 직원들은 소고기를 무척 즐겼다. 단, 해산물은 먹지 않는 인도 사람과 일한 적이 있는데, 인도 북쪽 출신이었다. 이 역시 팀 동료 S의 설명에 따르면, 인도 북쪽 지역은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해산물을 구하기 어려운 곳이어서 대대손손 해산물로 된 음식을 잘 만들어 먹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식습관이 이어진 결과가 육식은 해도 해산물은 전혀 먹지 않게 된 것이라 한다. 흠..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야 내륙지방에서 100킬로 정도만 나가도 바다가 나오지만, 인도 북부 내륙지방에서야 해안까지 1000킬로는 족히 넘으니 지금처럼 물류가 발달하지 않았을 시절에는 해산물을 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게다가 워낙 땅이 크다 보니 지역마다 굉장히 다른 지방색을 보이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덕분에 이 날 이 친구와의 저녁은 맥주와 베지터리언 피자, 그리고 감자튀김 같은 것을 곁들였다. 이렇게 채식을 하는 사람과 있을 때에는 나도 가능한 같은 음식을 먹으려고 한다. 물론 S는 이런 상황에 늘 나더러 치킨 윙 같은 거 시키라고 권하기는 한다. 언젠가 한국 음식점에도 데려가고 싶은데 채식을 하는 친구들은 한국 식당에 가면 먹을 게 사실 별로 없어 고민이었다. 그런데 S의 말에 따르면 놀랍게도 싱가포르에 채식도 가능한 한식당이 있다고 하더라. 메뉴를 살펴보니 고기를 넣지 않은 김치찌개, 두부와 야채를 넣은 만두, 김치전과 호박전 같은 음식을 팔고 있었다. 나중에 한국에 갈 기회가 있으면 한국 사찰 음식도 한 번 시도해 보라고 이야기해줬다.
인도인의 채식에 대해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육류와 채소류 가리지 않고 대부분을 먹고살긴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 먹기도 하는 곤충이나 박쥐로 만든 음식을 잘 먹지는 않는다. 채식을 하는 인도 사람들에게 닭고기나 소고기는 우리에게 곤충이나 박쥐로 만든 음식이라는 것이다. 먹어 보지 않은 것을 먹지 않을 뿐, 크게 다른 이유가 없었다. 물론 종교적인 이유 혹은 개인적인 신념에 의해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인도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덧붙여 최근 조사에 따르면 인도인의 약 30% 정도만이 채식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보면, 인도인은 채식주의자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맞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