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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대표 Jan 12. 2021

싱가포르 거주 1년

다이내믹했던 2020년

작년 1월 30일 첫 발을 이곳에 내디뎠으니,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새삼 시간 빠르다 느낀다. 개꿀 전업 아빠였을 2020년 2~3월, 내 취업 비자 프로세스를 지켜보면서 만에 하나 생길 우환에 대비하느라 마음은 정중동이었다. 코로나 시작이었던 때라 주변 관광지인 바탐, 빈탄, 조호바루 등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낸 건 큰 기쁨이었다. 집에서 뒹굴거리고 밥 사 먹고, 정 심심하면 몰에 가서 아이들 구경시켜주고, 그래도 심심하면 수영을 했다.



집을 정하고는 다소 바쁘게 움직였는데, 장인 장모님이 잠시 도와주러 싱가포르로 오시고, 헬퍼가 들어왔고, 이사를 했다. 이사 와보니 생각보다 전철 소음이 심해 와이프가 불편해했지만, 한국에 살던 집만큼 넉넉한 공간 덕에 헬퍼와 장인 장모님까지 일곱 사람이 살아도 북적이는 느낌이 없었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는 더 심해졌고, 나는 일을 시작했다. 입사 첫날 랩탑을 받으러 갔을 뿐 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Region(Cluster) job을 하기에 콘퍼런스 콜로 거의 일이 진행되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내 일의 특성상, 그리고 좋지 않은 외부 환경 덕에 천천히 일을 배워갈 수 있었다. 즉, 새로운 일에 적응할 시간을 많이 부여받았던 셈이다.



코로나가 심상치 않게 되자 장인 장모님이 급히 한국으로 귀국하셨다. 그리고 곧 싱가포르는 전면 봉쇄 조치가 내려졌다. Circuit Breaker라고 불렀는데 약 2달간 지속이 됐다. 아이들도 유치원을 가지 못했고, 꼼짝없이 헬퍼까지 5명이 집안에서 복작복작 살았다. 식료품 구매나 운동 외에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야 해서 때로는 2~3일 밖으로 나가지 않기도 했다. 답답함이 극에 달할 시점에 다행히 봉쇄 조치는 풀렸다. 그럼에도 정상 생활로 돌아간 건 아니었다. 그나마 골프는 칠 수 있었고, 가끔이지만 몇몇 지인을 만날 수 있었다. 이때쯤 온라인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영어 모임이었는데, 영어 자체보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 3달, 매주 1번은 온라인이지만 사람들 속에 들어간 기분이 들어 많은 위안이 되었다.



다른 것이 할 게 없으니 골프에 더 매진을 했다. 역시 어려운 운동이었다. 샷은 좋아지는 것 같았지만 좋은 스코어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골프를 통해 새로운 지인도 만났다. 회원권도 저렴이로 하나 샀다. 골프를 즐기기에 훨씬 더 좋은 환경임에도 예전만큼 재미있지는 않았다. 시시한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가끔은 어깃장을 놓기도 하면서 즐기던 그 친선 골프가 간혹 그립다.



그동안 천수를 누리시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아버지는 또 한 번 암수술을 하셨다. 장인어른은 어깨와 무릎이 좋지 않아 무릎 수술을 먼저 하신다고 한다. 때문에 올여름에는 격리를 감수하더라도 한국에 휴가 갈 생각이다. 1년 반 가까이 부모님을 보지 못하고 산 것이 처음이라 그립기도 하고, 그 간 더 늙으셨을 걸 생각하면 죄송하다. 아이를 생각하면 5년 정도는 이곳에 살고 싶지만, 그게 뜻대로 될는지 모르겠다. 초등 저학년 이하 아이를 키우기에는 싱가포르 환경이 한국보다 조금은 더 좋기 때문이다. 1년에 두어 번은 한국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더 있어도 되겠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환경이라면 다른 기대하지 말고 돌아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앞의 일 누가 알겠는가 싶다. 순리대로 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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