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을 추구하지 말자
독자분이 메일로 싱가포르 취업과 영어에 대해 질문을 주셔서 그분께만 회신을 하려다, 이런 건 궁금해하실 분들이 많은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영어에 대해 그분이 주신 질문과 제가 생각하는 점을 보태 응답식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영어 실력을 늘리기 위해 어학연수 혹은 워킹홀리데이가 필요한가? 혹은 도움이 되는가?
도움이 안 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필요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입니다만, 직장을 다니는 상태에서 그만두고 어학연수를 간다? 이건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고 생각합니다. 1년 어학연수 다녀온다고 갑자기 영어가 확 늘까요? 열심히 하면 되지 않나고요? 그 각오로 한국에서 열심히 하면 어떨까요? 참고로 전 순수 토종 영어 공부파입니다.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게 영어 공부입니다. 게다가 요즘은 너무 좋은 콘텐츠가 많아요. 외국인 친구요?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언어 교환하면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게 외국인 친구 아닌가요?
2. 그럼 어떻게 공부하란 이야기인가?
우리가 한국어를 배울 때 뭘 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엄마와 아빠에게 한국어 노출이 됩니다. 차차 엄마, 아빠부터 시작해서 맘마, 물 줘 등등 간단한 표현을 하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엄마나 아빠가 책을 읽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만 4~5세쯤 되면 제법 말을 잘하게 됩니다. 이때까지 우리가 한국어 공부를 따로 해서 말을 했나요? 그렇다면 영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우리에게 영어로 이야기해줄 엄마나 아빠가 없으니 영어에 노출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듣거나 읽어야 합니다. 먼저 읽는 걸 추천합니다. 쉬운 소설이나 신문 기사를 보세요. 시간이 되시면 한 단락 정도의 영어를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해 보세요. 이렇게 6개월에서 1년, 매일 상당한 양을 읽었다면 다음에는 들을 차례입니다. 2분 내외의 짧은 영어 뉴스 골라 들으시고 번역해 보세요. 여유가 되면 더 많이 해도 좋습니다. 이것 역시 6개월에서 1년 꾸준히 해보세요. 이 두 가지를 충분히 하시면 말은 나오기 마련입니다. 만약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인풋이 충분치 않은 것입니다. 사실 통번역 학원에서 이런 식으로 수업을 합니다. 많이 읽고, 듣고, 그걸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합니다.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국어와 영어가 매칭이 되면서 차곡차곡 저장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말을 할 때 이렇게 쌓아둔 표현이 입에서 나오게 됩니다. 적당한 통번역 학원이 있으시면 그곳에 다니시면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3. 시트콤으로 영어 공부하는 건 어떨까요?
개인적으로 시트콤으로 영어 공부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재미있고 좋은 표현이 많이 있지요. 그런데 너무 미국식/영국식 표현이 많아요. 그런 표현은 원어민들이야 이해할지 몰라도 영어를 외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상대는 영미권 사람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아시아를 담당하는 일을 합니다. 호주나 인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원어민이 아니지요. 따라서 대부분의 국가 사람들과 일을 할 때에는 가능한 쉬운 표현을 사용해야 일이 진행됩니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시트콤에서 배운 미국식 표현이 섞인 농담을 하면 적절할까요? 언어는 의사소통이 먼저입니다. 따라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구사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게 된 후에 상황에 따라 더 고급진 표현을 차차 배울 일입니다. 원어민과 일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못 알아들으면 무슨 말이냐 물어보면 될 일이고, 좋은 표현을 상대방이 한다면 그때그때 배워 가면 됩니다. 요즘은 유튜브에 좋은 채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구사하지 못하지만, 들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영어식 표현을 알려주는 주옥같은 채널 말입니다. 시트콤을 보기보다 그런 채널을 찾아보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4.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영어의 기본은 있다는 전제하에 3년 정도 꾸준히 영어 공부하시면 해외취업에 도전할 수준은 될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개인차가 크고 어떤 직무냐에 따라 달라요. 말로 먹고살아야 하는 인사나 세일즈 혹은 마케팅은 훨씬 더 높은 영어 실력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실력보다 업무 능력이 더 중요한 직무는 상대적으로 영어가 부족해도 취업 가능하다 봅니다. 제 경우, 회화는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가 33살쯤 본격적으로 시작해 37살 무렵에는 영어 인터뷰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지만, 업무상 영어를 사용할 일이 점차 늘면서 조금씩 실력이 늘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영어로 일하는데 문제없는 수준이 되었고 영어로 회의 진행이나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강의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사전 준비가 한국어로 할 때보다 더 많이 필요합니다.
5. 영어 공부의 끝은 있는가?
없어요.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저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제가 영어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헬퍼한테 집안일 지시할 때, 병원에서 내가 아픈 거 표현할 때, 회사에서 동료와 잡담할 때,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았습니다. 영어로 일은 해봤지만, 영어로 생활은 안 해봤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그리고 앞으로도 배울 게 너무 많겠지요. 저도 영어로 된 기사나 책 안 읽은 지 오래됐거든요. 또 읽고 배워야 합니다. 꾸준히 인풋을 해주지 않으면 계속 쓰던 말 도돌이표처럼 쓰고 살게 되지요. 이건 비단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이 읽고 들어야 좋은 말을 할 수 있고, 좋은 말을 할 수 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완벽을 추구하지 마세요. 영어는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잘 못 알아들으면 다시 이야기해 달라, 상대방이 못 알아들으면 다시 천천히 잘 이야기하면 될 뿐입니다. 간혹 한국어로 소통해도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은데, 외국어는 더한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최근에 인도 동료랑 이야기하다 놀란 게 있는데, 그 친구가 제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꽤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인도 친구들은 영어를 원어민 급으로 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제 악센트와 발음 때문에 그래요. 우리가 인도 영어 잘 못 알아듣는 것처럼, 그 친구들도 우리가 하는 영어 발음과 악센트 익숙하지 않아 못 알아듣는 경우 꽤 됩니다. 이때마다 그 친구는 재차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묻곤 하는데, 부끄러워하는 기색은 전혀 없지요. 그런데 우린 어떤가요? 상대방이 하는 영어 못 알아들으면 부끄럽게 느끼진 않는지요?
싱가포르에 취업하는 데 영어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적절한 답이 되었으면 합니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점 있으시면 답글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한 답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