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사는 20~30대만 힘들까

2000년대를 살았던 20~30대도 힘들었다

by 정대표

아래는 세상 살기가 힘들다면서 20~30대가 쓴 글이다. 요지는 아래와 같다.



- 승진하느라 일에 더 매진하느니 일을 덜 하고 싶다.

- 직장에서 일 열심히 한다고 알아주나. 즐기는 게 좋다.

- 어차피 월급으로는 강남에 집 못 산다. 사이드잡하고 투자해야 한다.

- 직장에서야 일개 직원이지만 직장 밖에서 창업가로나 작가로 활동하면서 나 자신이 브랜드가 될 수 있다.



위 4개 모두 동의한다. 내 20~30대를 돌아보면 1번과 3번은 격하게 동의, 2번과 4번은 부분적으로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저 4가지를 조금 더 격하게 표현을 한 게 눈에 거슬렸다. 일을 덜하고 싶은 이유가 승진하면 바빠질 거라서 그리고 열심히 해봐야 월급 얼마 오르지 않아서였다. 죽어라 일해봐야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전자의 7~8년 차 연봉이 1억에 불과해 강남에 집 못 산다는 게 불만이고 마지막으로 회사 밖으로 나가면 난 작가고 창업가라 나만의 아이덴티티가 생기니 직장인보다는 나은 거 아니냐는 거였다.



먼저 승진은 어디까지 해봤는지 묻고 싶다. 그래 승진은 그렇다 치자, 일이 많아지고 바빠지는 건 창업가나 작가로 활동해도 마찬가지 아닌가? 연봉 1억이 ‘불과’하다는 언급에는 기가 찼다. 2020년 기준 연말정산을 하는 근로자를 기준으로 평균 소득은 연 3744만 원이고, 연 소득이 1억이 넘으면 상위 4.4%다. 월급이 적다는 표현인 건 알겠는데 다른 사람 생각도 해야 한다. 그러면서 회사 밖에서는 작가나 창업가가 될 수 있다는 말은 쉽게 한다. 그러나 회사 밖에 창업가나 작가는 넘쳐난다는 건 아시는지.



집값은 연봉의 문제가 아니다. 20~30대에는 강남에 집 못 사는 게 정상이다. 대체 어느 나라 근로자가 20~30대에 가장 비싼 동네에 집을 살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이드 잡과 투자는 어떻게 하는가? 사이드 잡은 경험과 지식이 필요할 거고 투자는 종잣돈이 필요하다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야 종잣돈은 모아야 하지 않겠는가?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일정 기간 직장에 몸담는 게 그리 나쁜 생각은 아니지 않을까?



물론 오르지 않는 연봉, 그리고 하늘 높이 올라가만 가는 부동산 가격에 무기력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나 역시 2000년 대 1억짜리 신혼집 전세를 살면서 20억이 훌쩍 넘는 강남 집값을 보고 ‘집값이 미쳤다’고 했다. 그 당시 내 연봉은 3천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단순 계산으로 60년은 모아야 강남에 집 살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더 가격이 오르긴 했다. 그렇다고 예전엔 60년을 모아야 강남에 집 살 수 있고 지금은 100년을 모아야 강남에 집 살 수 있으니 더 힘들다고 이야기하는 건 의미가 없다. 어차피 둘 다 월급으로 집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현재 분출되고 있는 20~30대의 불평, 불만, 혹은 분노,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20~30대 때 비슷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들 제대로 분출하지 못했다. 까라면 까는 문화는 여전했고, 지금처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많지도 않았다. 때문에 현 20~30대가 불만을 표출하는 건 사회적으로는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사회가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적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불만을 표출하는 데 멈춰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집값 비싸다고 불만을 터뜨려 봐야 내가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의 집값을 떨어뜨려줄 사람 은 없다는 얘기다. 그 시간에 한 푼이라도 더 모아 더 먼 미래를 준비하는 게 낫다. 투자도 좋고 사이드잡 하는 것도 좋다. 그전에 종잣돈을 모으고, 사이드잡에 써먹을 나만의 지식과 경험을 더 쌓아야 한다. 그래야 내 브랜드가 구축되지 않겠는가? 직장 생활에 매진하지 않아도 되고 직장에서 아등바등 애쓰고 야근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내가 맡은 일은 105% 정도는 해야 한다. 회사에서 본인에게 거는 기대치를 조금은 넘으라는 얘기다. 그래야 창업가나 작가로 활동해도 소위 대박이 난다. 생각해 보라. 대박 난 작가나 창업자는 늘 우리 기대를 뛰어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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