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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인사 - 고객 편

일이 먼저냐 사람이 먼저냐

by 정대표

11월 초, 와이프와 나는 싱가포르 이주를 결정했다. 11월 중순에 싱가포르 프리뷰를 다녀오고 나서야 그만두겠다고 회사에 이야기하고, 12월 초부터 고객에게 내 퇴직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알린 사람은 내 최대 고객사의 N 팀장인데, 작년 설비 도입에 큰 역할을 했고, 그간 나와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눴던 분이었다. 퇴직 사실을 알리니 첫 반응은 ‘어느 회사로 가세요?’였다. 와이프 직장일로 그만둔다고 하니, ‘언젠가는 T사를 떠나실 거라 생각했지만, 너무 빠르다 했어요. 잘 되셨네요’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주로 팀장급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축하한다’, ‘잘 되실 거라 믿는다’ 등 덕담을 주로 건넸고, 소식을 직접 전해줘 고맙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팀장급은 40대 안팎의 나이라 연령대가 비슷해서 내 상황을 빨리 이해해 주는 듯했다. 또 싱가포르가 아이 키우기 좋다던데 참 좋겠다며 부러워하시는 분도 있었다.


반면 주로 50대인 임원급들은 주로 의아하다는 분이 많았다. 또 한 주요 고객사 임원은 내가 소식을 전하자, 의자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시더니 ‘대체 왜?’라면서 ‘그렇게 김 이사가 올해 노력하셔서 이제 막 신규 설비 도입됐고, 내년에는 그냥 계시기만 해도 T사 매출이 상승할 상황인데 너무 아깝다’면서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상세히 내 상황을 전달하자 이해는 하셨지만, 그래도 너무 아쉽고 아깝다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고객사 임원은 한발 더 나아가 ‘무책임하다!’고 하셨다. 그 업체도 내년 상반기 신규 설비가 도입되는데, 내가 마무리를 짓지 못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일하면서 생긴 큰 고비를 같이 넘기면서 인연의 끈이 단단하다고 서로 생각하고 있어 그 인연이 더 오래갈 거로 생각하셨기 때문인 거 같았다.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고객한테도 연락을 했다. 전 직장을 떠나서도 가끔 만나 라운드를 했던 L은 축하한다며, 싱가포르에서의 재회를 약속했고, 전 직장에서 내가 취급하던 제품을 가장 많이 써줬던 K는 점심을 함께 하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반면, 같이 일할 때는 이렇게 덕담을 나눌 분위기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 서로 치열하게 주판알을 튕기며 서로 대립했고, 어떤 고객은 어떻게 일을 그렇게 처리할 수 있냐며 내게 화를 내기도 했다. 나 역시 영업 담당으로서 고객과 마찰로 속상할 때도 많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 분들 대체 왜 이러는 거냐며’ 지인들에게 하소연하기도 여러 차례였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나쁜 기억은 사라지고, 이렇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이다. 따라서 일이 먼저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이렇게 사람이 남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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