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남는 사람들
짧게는 2년만 다녀올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기간을 정하지는 않고 이주를 준비하다 보니 특히 부모님은 마음에 걸린다. 70대 중반이 넘어가시니 어느샌가 노인이 되어가시는 두 분을 한국에 두고, 떠나는 게 장남으로서는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요즘 어머니는 심란하신 것 같다. 가게 됐다고 말씀드릴 때만 해도 ‘그래, 잘 된 거지...’라면서 축하해주셨는데, 요즘은 영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녀들을 보내는 게 마음에 걸리시는 모양이다. 내가 존경하는 우리 외삼촌도 내 걱정이 되시는 눈치다. 처음 이 상황을 말씀드릴 땐 ‘2~3년만 있으면 괜찮은 지사장 자리도 할 수 있을 텐데,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 나며 나무라셨다. 다행히 최근 통화에서 내가 할 일은 있다고 하니 조금은 안심하시는 듯했다. 오히려 ‘너희 엄마가 걱정이다’라고 하시면서 ‘네가 잘하겠지만, 가서도 자주 연락드려’라면서 동생에게 부모님을 잘 당부하고 가라고 하셨다.
내 고등학교 동문들도 내 걱정이 되는 눈치다. 어디서 일할지 거의 결정해둔 상태긴 하지만, 한국에서 쭉 직장 생활할 때 보다 조건이 좋지 않은 게 동문 친구들이 보기엔 못마땅하기도 한 거 같더라. 어떤 친구는 ‘얼마 안 있다 너만 돌아오게 되는 거 아니냐’면서 농담 반 진담 반을 건네기도 했다. 내 가치관과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이 있는 지금이야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지만 30대의 나였으면 흔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다. 또 한 선배도 ‘아이들과 와이프 싱가포르 보내 놓고, 혼자 한국에서 살아. 가끔 싱가포르 가면 되잖아. 어차피 아이들 조금 더 크면 아빠 안 찾는다 너’라면서 정말 진한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그 선배가 큰 딸에게 말이라도 건네려 하면 중학생 딸은 ‘왜!’라며 핀잔을 주기 십상이라 하더라. 그러면 난 이 사람들에게 내가 지금까지 했던 고민을 이야기하고, 결코 이 결정이 쉽지 않았다는 걸 풀어놓곤 한다.
반면에 대학 동창이나, 직장 동료들은 대체로 축하한다는 분위기다. 한 대학 동창은 내가 커리어 걱정을 하자 ‘정말 드문 기회라고 생각해. 60세면 은퇴할 직장을 찾는 거보다, 더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을 절호에 기회 아닐까?’라며 응원해 주었다. 한 직장 동료는 날 볼 때마다 ‘부러워 죽겠다’면서 하소연을 한다. 그럴 때마다 난 ‘이사님도 그만둬요 그럼’이라 응수한다. 또 다른 직장 동료는 내가 떠나면 회사가 걱정된다면서, 칭찬 아닌 칭찬을 하기도 했다. 직장 후배들은 아쉬워하고 있다. 전 직장에서 나와 인턴으로 함께 일했던 친구는 지방 근무 중인데도 집으로 찾아오겠다며 약속을 잡았고, 현 직장에서 꽤 날 따르는 후배도 ‘바쁘시니 괜찮으면 주말에라도 개인적으로 뵙고 싶다며’ 약속을 잡았다. 이러니 내 커리어, 내 가족,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내 고민을 이야기할 틈이 없다.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앞으로도 만날 사람들과 만나지 못할 사람이 나뉘는 것 같다. 이제는 그런 게 아쉽진 않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가장 희소한 자원으로, 사람마다의 규칙을 가지고 배분을 한다. 서로 만남을 가진다는 건 서로에게 가장 귀중한 자원인 시간을 나눈다는 거다. 그 시간을 나눈 만큼 마음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