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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를 결정한 이유

가족이 우선이다

by 정대표

링크드인을 통해 지원을 해보고 아무런 회신을 받지 못했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싱가포르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생각도 했다. 혹은 싱가포르에 직장을 잡을 때까지 한국에서 구직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도 생각했다. 더더군다나 인연이 닿는 싱가포르 현지 헤드헌터들도 한국에서 싱가포르 일자리를 구하고 싱가포르로 넘어오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을 하였다. 실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란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가족이 마음에 걸렸다. 와이프도 싱가포르 생활이 처음인데, 그 어려움을 혼자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도 내가 한국에 남게 되면 엄마 또는 아빠 없는 삶을 살아야 할 수도 있다. 내가 한국에서 데리고 있으면 아이들은 엄마 없는 삶을 살아야 하고, 애들이 싱가포르 가면 반대로 아빠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건 아니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게 아니란 건 알지만 실행에 옮기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최악의 경우 내가 일자리가 없이 사는 삶을 몇 달이고 견딜 수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일이 없는 동안 내가 할 일을 찾아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생각해보았다. 요즘 핫한 유튜브를 할까, 사업을 시작할까, 글을 써볼까, 아니면 20대 때 하지 못한 공부를 해볼까. 무엇 하나도 돈은 언제 벌지 모르는 일이라 망설여졌다. 게다가 남자가 직장이 없는 백수라니, 낀 꼰대 세대인 내 상식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이렇게 한 번 생각을 해봤다. 부부는 조인트 벤처와 같다고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진 것과 와이프가 가진 것을 합쳐 꾸려 가는 사업이다. 15년 동안 둘 다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면서 재산을 불렸고, 가족을 늘렸다. 지금까지는 성공적인 조인트 벤처로 꾸려왔다. 업력 16년 차에 변수가 생겼다. 나의 커리어를 포기하느냐 와이프 커리어를 밀어주느냐 결정을 해야 했다. 만약 싱가포르로 가기로 한 다면 나의 커리어를 희생하고 와이프의 커리어에 베팅을 하게 되는 셈이 된다. 해외 근무 경험은 향후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조인트 벤처를 더 성장시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다행히 와이프 수입과 약간의 저축으로 싱가포르에서 2년간은 내가 수입이 없어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 그렇다면 난 그동안 어떤 일을 시작하던 자리를 잡아 2년 안에 수입을 만들어가면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장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거, 또는 내가 정말 잘하는 일을 찾는 시간으로 2년이나 주어졌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런 내 생각에 힘을 실어주는 와이프에게도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퇴사를 결정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살면서 회사를 다니는 건 그 회사가, 그 일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내게는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가족과 함께하면서, 내게 맞는 일을 찾기로 결정하니, 자신감도 생겼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당연히 드물다. 20년 가까이 직장 생활을 한 덕에 내 분야라는 게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장을 알아보던, 내 사업을 알아보던, 이때부터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 일을 찾아볼 마음의 준비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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