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와이프 따라 싱가포르 이주, 모험인가? 아닌가?

가족과 함께라면...

by 정대표


사실 내 나이는 해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도 남을 나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보통 20~30대에 해외로 나가 공부를 하든 일을 하든 경험을 쌓고, 30대 중반 ~ 40대 초반에 한국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40 중반이 넘어가면 대기업 상무 이상 슈퍼 스타급 인재가 아니라면 들어올 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난 평생 한국을 떠난 적 없이 40대까지 자리를 닦아 오다가 곧 50대를 바라볼 나이에 해외로 나간다. 더더군다나 직무만 같을 뿐 다른 산업군, 다른 지역 고객을 담당하는 일을 하려고 한다. 주변 지인들은 3~4년만 더 노력하면 완전히 자리를 잡을 건데 너무 아깝다고도 이야기한다. 심지어 엄청난 모험이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이 길을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큰 리스크가 보이는데도 왜 난 이 길을 가려고 하는 걸까? 우선 두 손으로, 두 발로 J사에서 리스크가 큰 사업을 일궈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인적 네트워크도 없이 새로운 시장에서 새로운 제품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인으로서는 스타트업 하는 사람 못지않은 생존력을 갖출 수 있었다. 비즈니스 규모는 작았지만 세일즈, 마케팅, 고객 기술 지원과 교육 등 모든 기능을 혼자 도맡아 했다. 콘퍼런스에 홀로 참석해 하루 종일 고객을 상대하는 일도 잦았다. 비즈니스 규모를 키우면서 직원을 뽑고 딜러 개발도 했다. 딜러 대표를 만나 조건을 협의했고, 딜러 직원과 내 직원을 교육했다. 경쟁력 있는 제품만 있다면, 고객을 발굴하고 딜러와 같은 비즈니스 파트너를 개발하면서 비즈니스 규모 키워나갈 자신이 있다. 홀로 사막에 떨어져도 먹고 살 제품 하나 쥐어주면 생존할 자신이 있다. 내게는 해 본 일이다.


둘째로, 지금 이 내가 T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리스크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은 향후 2년은 보장된 자리다. 내가 닦아놓은 길이 탄탄해 내 후임은 좀 심심할 수도 있겠다. 내년과 후년에는 올해 판매한 설비 3대가 가동이 시작되면서 실적이 무척 좋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3년 뒤는 장담하기 어렵다. 최근 경쟁사 움직임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경쟁이 심해지면 실적 압박이 심화된다. 승진은 없지만 안정적이라는 내 자리도 실적 압박에 시달리다 보면 그 의미를 잃게 된다. 이렇게 안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회사가 흔들리는 걸 난 이미 경험했다. D사는 그 업계에서 선도적인 위치의 회사였지만, 최근 몇 년간 회사가 많이 어려워졌다. 인수 합병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이 회사를 떠났고, 과거와는 다르게 실적 압박이 무척 심해졌다고 들었다. 이렇게 안정적인 회사가 영원히 안정적일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나 혼자 하는 모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먼저 가족이 있다. 지칠 때 기댈 와이프와 스트레스를 잊게 해 줄 아이들이 있다. 아이를 낳고 나자 ‘가족’이라는 또 하나의 사적인 영역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예전에는 내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 2개의 영역만으로 나뉘어 있었다면, 이제는 ‘가족’이라는 영역이 하나 더 생겼고, 그 영역 안에서 내가 해내야 할 의무도 있으나, 그 안에서 나도 보호도 받는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내 성공을 바라는 친구와 동료가 있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저마다의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기 해당 분야에서 나는 알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줄 수 있다. 적어도 ‘이런 일도 있다는 데 한 번 알아볼래?’라고 귀띔해줄 동료가 있는 셈이다. 이미 친구와 동료들이 이런 자리도 있다며 내게 귀띔해주거나 그 자리에 추천해주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서 꽤 안정적인 일을 버리고 싱가포르로 떠난다는 게 내 주제에 사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지금 내가 하는 일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도 알고, 또 가족과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고.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019년을 정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