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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정리하며

성취 지향적인 사람이었다

by 정대표


나는 매일 사진을 찍는다. 하루에 적게는 서너 장, 많게는 10장 이상 찍어 iOS Page에 정리한 후, 그날의 사진 한 장을 뽑는다. 그렇게 모인 그날의 사진을 일주일 모아, 그 주의 사진 한 장. 그리고 주마다 사진을 모아 그 달의 사진을 뽑고, 3개월을 모아 분기의 사진 한 장을 뽑는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그 과정을 거치면 1년의 사진 한 장이 남는다. 그렇게 뽑은 올해의 사진은 이사 승진 발령문이었다. 나머지 분기별 사진은 고객사 설비 주문서, 와이프의 싱가포르 발령문, 마지막으로 고마운 선배와 함께 한 저녁 사진이었다. 내 성취에 관한 것도, 감사함을 느낀 저녁에 찍은 사진도,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아주 큰 사건이 벌어진 사진도 있지만, 결국 내가 뽑은 건 내 성취에 관한 사진이다.


그래서 작년 것부터 쭉 과거를 살펴보았다. 2013년은 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던 날, 2014년은 고객과 함께 한 특별한 사건, 2015년은 쌍둥이 출생, 2016년은 더 좋은 기회를 찾아 J사를 떠난 날, 2017년은 지인의 죽음, 2018년은 고객사와 LOI (Letter of Intent)를 맺은 날 등 7년 동안 2개 사진을 제외하면 내 개인의 성취에 관한 사진을 그 해의 사진으로 꼽았다. 난 내가 성취 지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막상 그 해를 상징하는 내게 중요한 사건은 내 개인적인 성취에 관련된 것이 많았다. 그렇다면 ‘내가 성취지향적인 사람이란 건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진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하면서 난 이런 얘기를 했다.


‘어린 시절 내 주변 친구들이 사시 공부하고, 의대 공부할 때, 난 쟤들이 왜 저러나 그랬어. 난 재미없는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살고 보니까 그 친구들이 맞는 선택을 한 거였네’


그러게, 내 속마음은 그랬던 거다. 난 무슨 마음이었는지 난 다른 길 갈 거라고 객기를 부리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거 같다. 친구들과는 다른 내 길을 걸었다. 그러나 난 내 길을 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스스로 친구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그 친구들과 동등해지려고 몸부림을 쳤던 것 아닌가 싶다. 만약 지금 내가 아는 걸 20대의 내가 안다면, 어떻게든 대학 교수가 되려고 노력했을 거 같다. 법조인이나 의사는 내 적성이 아니고, 그와 가장 사회적 위상이 비슷한 직업이 대학 교수이니 말이다. 그리고 대학 교수를 했다면 천상 세일즈맨인 나는 세일즈에 초첨을 맞춰 활동을 했을 것이고, 큼직한 프로젝트를 따내는 잘 나가는 대학 교수가 되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물론 내가 대학 교수가 될 능력이 있느냐는 별개 문제고 될 수 있었다는 뜻도 아니다.


다시 사진 이야기로 돌아와서, 내가 왜 이사 승진 발령문을 올해의 사진으로 꼽았을까? 이제야 친구들과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 능력을 확인했고, 이만하면 이제는 더 이상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이 든 거 같다. 그래, 정말, 이제는 됐다. 이제는 친구들과 비슷해지려고 노력했던 20여 년을 뒤로하고 다시 내 갈 길을 가려고 한다. 성취가 더 필요했다면, 와이프를 따라 싱가포르로 가는 결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2019년까지, 잘 살았다. 그리고 2020년, 싱가포르에서의 삶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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