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닐 때를 생각해 보면 나는 일에 쫓기거나 쫒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어진 일을 소홀히 하는 법은 없었지만, 일을 끝까지 파고들어 끝장내고야 마는 사람은 아니었다. 때문에 20년 가까이 회사를 다니면서 야근 한 기억이 별로 없다. 물론 워라밸이 좋다고 하는 외국계 대기업을 주로 다닌 탓도 있겠다. 일에 그렇게 욕심이 있지 않았던 셈이다.
그런데 스타트업에 와서는 달라졌다. 아직 일을 여유롭게 하는 편이긴 하지만, 일을 시도 때도 없이 하게 된다. 이른 아침에 주로 미국하고 콘퍼런스 콜을 하고, 오전에 고객을 만나러 간다. 오후에는 사무실에 들어와 앉아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각종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때문에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까지는 여유를 부림 틈이 거의 없다.
이렇게 일을 하는 와중에 내 머릿속은 어떻게 일을 꾸려가야 할지 끊임없이 생각하느라 바쁘다. 일어나서 잘 때까지 거의 일생각만 하게 된다. 그걸 보는 와이프는 일 생각을 끊어내는 연습을 하라고 할 정도이니, 내가 바뀌어도 참 많이 바뀌었다.
요즘 고민이 있다. 새 비즈니스를 벌리는 게 먼저인지 일을 벌일 준비를 먼저 해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대기업이라면 일을 벌여 놓고 리소스 고민을 해도 된다. 그러나 스타트업은 다르다. 대기업에 비해 리소스가 매우 적기 때문에 새 비즈니스를 무작정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으로서는 기존 비즈니스를 빠른 시일 내에 궤도에 올려 리소스 확보를 하고 새로운 일을 벌여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기존 비즈니스를 일구는 동안 새 비즈니스 기회를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1년 뒤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정답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이제는 별 생각을 다 한다. 스타트업으로 옮긴 후 이렇게 생각이 많아졌다. 다행히 이런 생각과 고민이 스트레스로 바뀌진 않는다. 아마도 지금 하는 일이 무척 새로운 일이긴 하지만, 이 일을 쪼개서 보면 내가 해보지 않은 일은 없어 그런 듯하다. 어찌 되었던 내 커리어에서 가장 흥미로운 기간이다. 오래 기다렸다. 내 한계를 한 번 경험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