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중반에 싱가포르로 와 이제 50대가 되었다. 그렇게 싱가포르로 이주한 지 5년이 넘었고, 그 사이 영주권을 받았다. 그 사이 싱가포르 살이도 꽤 많은 것이 변했다.
첫째, 아이들은 이제 싱가포르에서 산 기간이 한국에서 산 기간보다 길어졌다. 한국에서의 살았던 기억보다는 한국을 '방문'했던 기억이 있을 뿐, 한국에서 다니던 유치원에서의 기억도 이제 한두 장면 외에는 아이들에게는 없어 보인다. 가끔 싱가포르 이주 초기 아이들 사진을 보면 작고 귀엽다. 만 10살이 다 되어가는 아이들이 자는 뒷모습을 볼 때 깜짝 놀라곤 한다. 커도 너무 컸다는 생각이 든다. 변한 건 그뿐이 아니다 슬슬 아이들 영어를 알아듣기 힘들어지고 있다. 싱가포르 엑센트가 없는데도 둘 다 말이 너무 빨라 알아듣기 힘들다. 아이들이 더 커 내가 잘 모르는 어휘까지 구사하게 되면 더 알아듣기 어려워질 거 같아, 뒤처지지 않게 '영어 공부'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둘째, 이건 영주권을 받고 나서 더 느끼는 것이긴 한데, 현지 사람 '대우'를 받기 시작했다. 이번 법인 계좌를 만들 때 그 이점을 톡톡히 누렸다. 통상 외국법인의 싱가포르 시중 은행 법인 계좌 개설은 2달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우리 회사 같은 경우 보름 만에 승인이 됐다. 또 간혹 라운드 하다 만나는 싱가포르 지인들에게 영주권 승인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면 하나같이 기뻐해주고 축하해 준다. 마지막으로 집에서 가까운 학교로 아이들 전학이 승인 됐다. 외국인은 싱가포르 로컬 학교를 배정받을 수는 있지만, 전학은 가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도 월 70만 원을 넘게 들여 셔틀을 태워 보냈는데, 이제는 집에서 걸어갈 수 있게 됐다.
마지막으로 이 나라 날씨에 완전히 적응했다. 밤에는 에어컨을 끄고 자야 할 정도로 싱가포르에서 추위도 느낀다. 해가 지는 저녁 6시 무렵 바람이 불어주면 선선함을 느끼기도 해 가벼운 산책으로는 땀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간혹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에 바람 한 점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솔직히 덥다. 아무리 날씨에 적응했다 한들 그런 날씨에는 외부 활동을 삼가야 한다. 반면 싱가포르 날씨에 적응했다고는 해도 한국 추위를 못 견디는 건 아니다. 다만, 건조함은 몸에서 바로 느낀다. 한국 출장이 길어지면 바디로션을 꾸준히 발라주지 않으면 피부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있다. 늘 북적이는 오차드 로드, 적당히 복잡한 지하철, 적당히 차가 있는 도로, 늘 푸른 나무, 아침에 어쩐지 좀 덥다 싶으면 오후에 쏟아지는 폭우와 번개, 일정한 일출, 일몰 시간 등, 싱가포르는 다이내믹하기보다는 잘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느낌이 더 강하다. 한국처럼 1년 사이에도 많은 것들이 바뀌는 게 아니다. 나라 이미지가 다이내믹해 보이는 느낌이 없지는 않으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잘 변하지 않는 나라라는 걸 깨닫게 된다. 그래서 가끔 지루함을 느끼곤 한다.
앞으로 또 5년, 10년이 지나면 우리 가족의 싱가포르살이는 어떤 모습일까? 아이들은 더욱 성장해 자신만의 길을 찾아갈 것이고, 우리의 정체성은 더 복합적으로 변해갈 것이다. 그때도 여전히 이 작은 도시국가는 변함없이 안정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품어줄 거라 본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두 문화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며, 내가 선택한 이 '다른' 삶의 가치를 계속해서 발견해 나갈 것이다. 2025년의 싱가포르살이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점이 될 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