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릴 때 받은 가정교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는다면, 겸손과 밥상머리 예절이다. 낭중지추라는 말도 있듯, 내가 뛰어난 인재라면 어디든 내가 드러내지 않아도 중요하게 쓰일 것이기에, 겸손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단어였다. 물론 밥상머리 예절 역시 내게 꽤 큰 영향을 아직도 미치고 있긴 하지만 ‘겸손’에 비할 바는 아니다.
창업은 기본적으로 ‘세일즈’다. 투자를 받는 일은 회사 지분을 팔아 현금으로 받는 세일즈다. 그리고 제품을 ‘세일즈’해야 회사의 꼴을 갖추기 시작한다. 소위 ‘질러야’ 세일즈가 될까 말까 한 게 스타트업의 현실이다. 누구도 해보지 않은 시장에서 우리 회사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야 투자도 되고 세일즈도 된다. 따라서 Under-promise를 하고 Over-deliver 하라는 세일즈의 명언도 있긴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약간은 다르게 해석하고 싶다. Under-promise를 하되 Over-deliver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요즘 내 몸에 배어 있던 가정 교육과 충돌하는 걸 느낀다. 어쩌면 내가 겸손을 과하게 해석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내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고 남이 알아주기 바라는 걸 겸손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창업을 했고, 대표로 활동하는 한 내 생각을 끊임없이 같이 하는 직원들 뿐 아니라 수많은 이해관계자에게 드러내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만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표현이 과장되어 지나친 자신감으로 표출되면 내가 생각하던 겸손과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창업자로서 자신감이 지나친 게 겸손해 보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다만 상대방을 배려해 이야기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겸손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나처럼 겸손함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창업자로서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세상도 바뀌었다. 겸손보다는 내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면서 자신감을 보이는 게 최신 트렌드와 맞다.
결론적으로 창업자에게는 겸손보다 자신감이 더 중요하다. 다만 그 자신감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바탕으로 한 진정성 있게 나를 잘 드러내는 자신감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