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조심하는 게 최고
우리 가족이 싱가포르에 도착하고 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중국 외 나라에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싱가포르도 예외가 아닌데, 인구수 대비로는 굉장히 많은 환자가 확진을 받았다. 2월 12일 현재 정부 발표에 따르면 50명이 확진받았고 15명이 완치되어 퇴원을 했다. 나머지 환자 중 8명은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고 나머지 환자는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현재 30명이 조금 안 되는 확진환자가 있는 걸 감안하면 인구수 600만 명이 안 되는 싱가포르에 왜 이렇게 확진 환자가 많은지 의아하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특이한 장면을 몇 개 목격했는데, 그중 하나는 생필품 사재기다. 레지던스 옆 Fair price에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가 늘기 시작한 저번 금요일부터 사람이 북적이더니, 쌀, 라면, 파스타, 파스타 소스 등 저장이 가능한 식품류는 그다음 날이 되자 품절이 되었다. 레지던스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Cold Storage도 사정은 같았다. 일요일쯤 산책 겸 방문했는데, 규모가 엄청난 곳임에도 불구하고 저장이 가능한 식품류는 품절이 되었다. 왜 이런 건지 지인에게 물어보니, 싱가포르 사람들의 습성이란다. 뭔가 비상상황이 생길 거 같은 기미가 보이면 생필품 사재기를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한다. 아마 나라도 작고, 거의 모든 생필품이 수입되다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없이 다닌다는 점이다. 매일 두세 차례씩 정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해 업데이트하는 것을 왓츠앱을 통해 받아볼 수 있다. 그 메시지에 따르면, 공기로 전염된다는 증거는 없다면서 건강한 사람들은 마스크를 오히려 쓰지 말라고 한다. 건강한 사람까지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 정작 필요한 환자나 의료인들이 쓸 것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싱가포르 정부의 지침을 따르는 것인지 곳곳에 손소독제가 비치되어있고 많은 사람들이 사용을 할 뿐 생각보다 마스크를 쓰는 사람은 많이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지난 일요일 4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LOA(Leave of Absence, 우리나라로 치면 자가격리 조치)를 어겨 추방되고 다시는 싱가포르에서 일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가 중국에 다녀온 사람을 대상으로 14일간 의무적으로 LOA 조치를 내렸다. 그런데 이를 어기고 출근을 했다가 이런 불이익을 받게 된 것이다. 이를 방조한 고용주도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자격을 2년간 금지시켰다. 싱가포르니까 할 수 있는 대단히 과감한 조치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우리 가족도 조금만 늦게 들어왔다면 싱가포르에 입국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와이프 회사 자체적으로 아시아 지역 출장 금지 조치를 발효했기 때문이다. Business Critical인 출장만 승인을 받아 갈 수 있을 뿐, 제한적이긴 해도 한국에서도 업무를 할 수 있는 Role을 하는 와이프 같은 경우라면 상당 기간 한국에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지인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도 어지간한 행사는 취소하고, 출장도 전면 금지시키는 분위기라고 들었다.
바깥은 뒤숭숭하지만, 덕분에 와이프만 회사를 왔다 갔다 할 뿐 나와 우리 두 아이들은 모두 레지던스 내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 아침엔 방에서 영어 과외를 받고, 점심은 레지던스 식당에서 해결, 오후에는 주로 레지던스 내 수영장이나 놀이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다소 단조로운 생활이라 아쉽기도 하지만, 이런 시기에 몸조심하는 게 최고라 생각해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다독여 가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