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싱가포르 콘도 이사 후기

내가 사는 콘도의 장단점

by 정대표

와이프 회사와 가까우면서 유치원에 아이들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이번에 이사한 콘도 E로 의견이 좁혀졌다. E 콘도에서 월세 4천 불 안팎의 집을 보다, 내 일자리가 결정된 것도 있어 예산을 더 올려 집 하나를 더 봤는데, 나와 와이프 둘 다 마음에 들어 버렸다. 예산이 올라간 탓에 당연히 더 넓은 집을 볼 수 있었고, 집주인이 살고 있어 관리가 잘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전에 봤던 집 상태를 생각할 때 이 집이 이 콘도에서는 베스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을 보고 나서 거의 바로 결정해버렸다. 그런데 그게 조금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수영장이 꽤 커서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며칠 살아보니 생각보다 소음이 컸다. 전철 코앞이라는 건 굉장한 장점이지만 소음을 동반한다. 전철역이 지상에 있기 때문이다. 와이프는 새벽 기차 소리에 잠을 제대로 못 잘 정도라고 한다. 나는 원래 소음에 민감해 귀마개를 하고 자는 게 습관이 되어 잘 몰랐다. 집이 꽤 고층이고 우리 집이 역과는 반대쪽을 보고 있어서 이렇게 소음이 들어올지 상상도 못 했다. 오히려 집에서 보이는 콘도 공사 현장 소리가 더 신경 쓰였었다. 이 전철 소음 때문에 잠자리 들 때는 방문을 모두 닫고 에어컨을 켜고 자게 되었다. 고층이기도 하고 주변이 생각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라 문 열고 자면 꽤 시원한데 아쉽다.



또 슈퍼마켓이 은근히 멀고, 구색이 잘 갖춰져 있지 않다. 주변에 슈퍼가 3군데가 있는데, 모두 8~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항시 더운 이 나라에서 차도 없이 걸어서 장을 보러 가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게다가 인터넷 쇼핑이 생각만큼 활성화되어있지 않다. 주문하면 보통 2~3일은 걸린다. 하루면 배송해주는 쿠팡이 그리울 지경이다. 게다가 구색도 문제다. 주변 슈퍼마켓 3군데를 들렀지만 소고기가 잘 없다. 난 내가 못 찾나 했다. 궁금해서 와이프가 이 근처 사는 동료에게 물어보니, 이 동네에 중국계가 많이 살아 소고기가 잘 없는 게 당연하다는 거다. 중국계 사람들은 소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우리가 1달간 살던 레지던스 옆 슈퍼에는 소고기가 늘 있었고, 질도 무척 좋아서, 이런 상황은 생각해보지 못했다. 레지던스가 리버밸리에 있었는데, 그쪽에는 Expat이 많은 동네라 소고기가 있었던 것뿐이었다. 덕분에 소고기 사러 원정을 다녀야 할 판이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애초에 이 콘도를 고른 이유가 와이프 통근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집 코 앞에서 회사 가는 셔틀버스가 있다.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너무 시원한 바람이 그것도 무척 세게 분다. 아마 콘도 앞쪽으로 언덕이 있어 그런 게 아닌가 추측을 해 본다. 오늘 저녁 식사 후 수영을 잠시 했는데, 물 밖으로 나오면 한기를 느낄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분다. 마지막으로 집이 비교적 넓고 집 컨디션이 좋다. 집 자체만 보면 가격 대비 잘 얻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괜찮다. 특히 집주인이 레노베이션한 서재방이 마음에 든다.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책상과 책장이 잘 갖춰져 있고, 그 뒤편에는 드레스룸이 꾸며져 있다.



그러나 두 가지 단점 때문에 와이프가 이사하고 난 주말 무척 속상해했다. 이왕 월세로 돈을 더 지출할 생각을 했으면 이 집 하나만 볼게 아니라 집을 더 몇 개 봤어야 했다면서 말이다. 게다가 자잘하게 손 볼 게 있어 더 그렇다. 식기세척기, 에어컨, 인터넷 연결선 문제처럼 자잘한 문제부터 헬퍼 룸 누수 문제처럼 조금은 더 심각한 문제들도 있다. 20년 가까이 된 콘도라 당연한 것이긴 해도 이런 건 집을 볼 당시엔 알 수 없는 거라 더 속상하게 느껴질 거다. 그 당시 아이들 유치원과 직장과 거리를 생각하니 지금 선택한 콘도가 최상이었다고 생각했다 하더도 아쉬운 건 당연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서로 위로했지만 속상한 마음이 쉽게 가시진 않았다.

저절로 켜지는 에어콘

와이프는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 이런 이야기를 직장 동료와 한 모양이다. 모든 게 완벽할 수 있냐면서 동료들에게 위로를 받고 나서는 다행히 조금 마음이 풀린 듯했다. 다음에는 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집을 골라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하면서, 와이프는 집에 정을 더 붙이려 노력한다고 한다. '확실히 회사는 가깝다'란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싱가포르에서 외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