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싱가포르 이주를 결정한 작년 12월부터 지금까지 4달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먼저 싱가포르로 모든 가족이 날아갈 날짜를 정하고 나서야 내 직장이 확정된 일이 떠오른다. 직장을 잡는 데 운이 많이 따랐는데 그때 결정이 안 났으면 어쩔 뻔했는지 등골이 오싹하다. 그렇게 내 직장을 확정하고 열흘도 되지 않아 싱가포르로 날아왔다. 레지던스에 임시로 살면서 와이프가 일을 시작했는데 새연이는 농가진으로 얼굴에 딱지 투성이었다. 세상에 그런 흉한 딱지는 처음 봤다. 그 후 4주 간 전업 남편으로서 아이 둘을 전적으로 돌보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제일 재미있으면서도 힘들었던 기간 중 하나다. 그렇게 2월을 보내니 2월 말이 되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한국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심각해졌다. 한국발 항공기 입국 거부하는 나라가 늘어났고, 싱가포르 입국도 거절될까 싶어 장인 장모님이 서둘러 싱가포르로 오셨다. 그리고 두 분이 오신지 불과 이틀 뒤 140개가 넘는 박스와 함께 콘도로 이사를 했다. 헬퍼 계약을 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런데 이사하자마자 서은이가 40도 고열에 시달리는 일이 생겼다. 독감도 인후염도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는 앰뷸런스를 타고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어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코로나바이러스는 음성이었다. 그리고 나니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됐다. 둘 다 취직도 했겠다, 이제 조금 숨 쉴만하다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싱가포르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이 심각해졌다. 이 때문에 한국으로 가는 하늘길이 막힐 위기에 처하자 장인 장모님은 원래 계시기로 한 일정보다 1달 빨리 귀국하셨다. 또다시 서은이가 잔병을 치렀다. 이번엔 농가진이었다. 또 흉한 딱지가 서은이 팔과 겨드랑이에 앉은 걸 보게 됐다. 서은이 농가진이 거의 사라지니 이곳 싱가포르에 락다운 조치가 내려졌다. 꼼짝없이 온 가족이 집에서만 지내야 할 것 같다. 이놈의 코로나바이러스!!!
나라를 옮겨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코로나바이러스 덕에 더 화끈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만약에 와이프만 혼자 먼저 보냈거나, 나만 한국에 남아 후일을 도모했다면, 가족이 생이별할 뻔했다. 과감히, 실은 무모하게 온 가족이 같이 이주하기로 결정한 게 결과적으로는 아주 잘한 일이 됐다. 더더군다나 와이프가 회사일이 잘 풀리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 내가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면 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와이프는 더 힘들어했을 것이다. 다행이다. 이렇게 나도 직장을 잘 찾아 가족 전체로는 매우 잘 된 일인데 나에게도 잘 된 일인지는, 글쎄 잘 모르겠다. 마케팅과 기획을 했던 예전 기억을 되살려 보면 지금 하는 일은 내 성향에 그렇게 잘 맞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일즈를 했던 사람이 마케팅으로 경력 전환을 하기엔 무리 없는 직무라 일단 잘 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아시아를 커버하는 일이니 커리어 욕심이 많던 시절에 꿈꿨던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덕분에 내 커리어는 또다시 내가 생각했던 거와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커졌다.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2021~2022년 정도에는 조금 작더라도 내 사업처럼 할 수 있는 회사에 지사장으로 가서 비즈니스를 키우는 일을 하려고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극히 낮아졌다. 일단 회사를 또 옮기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가려는 사람을 잡아서 자리를 마련해 준 셈이라 약간의 의리는 지켜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장 크다. 난 회사와 직원은 계약 관계로 보고 있어 회사와 나 사이에는 감정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는데, 회사는 여전히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는지 몰라도 나는 조금 좋은 감정이 생겼다. 두 번째 이유로는 더 일해봐야 알긴 하겠으나 지금 하는 일을 잘 활용하면 한국에서 세일즈를 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에서 간접적으로나마 세일즈를 하는 경험을 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내가 그 힘든 한국 시장에 들어가서 세일즈를 다시 할 이유가 줄어든다. 마지막으로는 싱가포르가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 아이들이 어릴 때는 살기 좋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결정을 하는 건 한국에서 싱가포르로 나올 때만큼 어려운 결정이 될 것 같다. 혹시나 아이들이 더 성장해 중학교 정도 갈 무렵이 되면 어떨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또 그때는 아이들 학업 문제 때문이라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싱가포르로 와서 살 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몸은 이곳에 있지만 아직도 한국에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게다가 이주 과정이란 게 순탄하기 어려운데 코로나바이러스라는 큰 장애물이 있어 나나 와이프나 말은 잘 안 하지만 힘든 상황이다. 약간의 향수병에 코로나바이러스, 마음이 편할리 없다. 그렇지만 이런 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것들이니 늘 하던 대로, 주어진 환경에서 너무 잘하려고 애쓸 것도 없이 하루하루 충실하게 보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2020년은 정말 기억에 많이 남는 해가 될 거 같다. 그래도 늘 그랬듯이 ‘이 또한 지나갈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