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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음주생활

15불짜리, 럭셔리 소주

by 정대표

술을 그리 잘하지 못하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소주로 반주를 하곤 했다. 그렇게 즐기던 소주가 싱가포르에서는 너무 비싸 그동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편의점에서 사도 2000 원 안 되는 소주가 싱가포르에서는 15불 정도, 한국돈 13000 원쯤 한다. 꼭 수입 이어서만 비싼 건 아닌 게, 싱가포르는 술에 세금이 많이 붙는다. 전반적으로 술값이 한국 대비 적어도 20% 이상, 많게는 40~50%까지 비싸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와인은 가격이 합리적이라 싱가포르 와서는 슬기로운 음주생활을 위해 화이트 와인을 주로 마셨다. 20~30불 정도면 먹을만한 와인이 꽤 많다. 그래서 와인을 많게는 일주일에 서너 번 저녁을 먹으면서 혹은 저녁 먹고 나서 한 잔씩 했는데, 최근 소주 생각이 간절해 며칠 전에 콜드 스토리지에 들러 ‘처음처럼’을 한 병 샀다.

소주 언더락

보통은 반 병씩 두 번에 나누어 마셨는데, 워낙 비싼 술이라 3번에 나누어, 그것도 얼음을 넣어 언더락으로 마셨다. 오늘 마지막으로 남은 소주 1/3을 돼지고기 두루치기와 함께 마시는데, 한국에서 마시던 그 맛이 났다. 객관적으로 소주가 맛있는 술인지는 의문이나, 그 고유의 무엇인가가 있다. 물에 탄 알코올에 설탕 조금 섞은 그 맛인데, 왜 이게 그렇게 좋을까 싶다. 술에 강하지 않아 1/3만 마셔도 알딸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와인과 같은 우아함은 없어도, 무미 무취에 가까운 그 맛이 음식 맛을 더 돋우어주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맥주와 함께 음식을 먹으면 배가 불러 많이 먹지 못하는데, 소주는 배부른 게 덜해 그렇게 많이, 그리고 맛있게 먹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소주를 기울이며 식사를 하는 도중, 가끔 온라인몰에서 세일을 하기도 하니 찾아보라고 와이프가 이야기를 건넸다. 흠, 굳이 15불이나 주고 소주를 또 먹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나는 술고래가 아니라 얼마짜리를 먹던 술값에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을 거다. 하지만 말도 안 되게 비싼 집값, 그리고 교육비를 감당하려니 2000 원 짜리 소주를 13000 원이나 주고 먹는 게 아깝다. 아무리 할인한다고 해도 한 병에 2000 원보다는 비쌀 터, 오랜만에 한국의 그 맛을 한 번 봤으면 됐다. 소주를 마실 때마다 아까운 생각이 들 테니, 가성비를 따지는 원래의 슬기로운 음주생활을 계속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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