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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김치 담그기

손맛 좋은 깍두기와 오이 물김치

by 정대표

와이프가 우리 집에 시집을 와 놀란 것 중 하나가, 김치찌개를 먹으면서 총각김치나 깍두기를 찾는 우리 집 식구들의 식습관이었다. 그만큼 나를 포함한 우리 식구는 김치를 좋아하고, 늘 우리 집에는 서너 종류의 김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렇다 보니 한국에서는 물론 우리 어머니나 장모님이 가져다주시는 각종 김치를 먹으면서 지냈는데, 싱가포르에서는 당연히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물론 싱가포르에서도 김치는 구하기 쉽고, 맛도 좋다. 하지만 내가 먹던 맛은 아니니 내 입맛에 딱 맞는 김치를 먹으려면 내가 담그는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배추김치를 담그기는 쉽지 않을 거란 생각에 조금 쉬운 깍두기를 담가 보기로 했다. 한국 무는 개당 4~5불 정도면 구할 수 있다. 실패할 수도 있으니 1개만 사서 담가보았다.


고향의 맛

담그는 법은 간단하다. 깨끗이 씻은 무를 먹기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소금으로 2시간 정도 재워 두었다. 싱가포르에서 구한 까나리 액젓과 새우젓, 그리고 한국에서 공수해 온 고춧가루를 섞고, 준비한 밀가루 풀을 같이 무에 넣어줬다. 골고루 섞어, 적당한 색깔이 되었다 싶어 간을 보고 그대로 하루 정도 묵혀두었다. 그냥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했을 뿐인데 다음 날 먹어보니 제법 맛난 깍두기가 되었다. 그리고 내게 어머니 손맛이 유전이 됐는지 어머니가 해줬던 깍두기 맛이 났다. 젓갈 때문에 약간 콤콤한 맛이 나는 깍두기였다. 어머니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여름 깍두기에는 젓갈을 넣지 않아도 된다 하시면서, 내 외할머니는 5월이 넘어 깍두기를 담그실 때는 젓갈을 일체 넣지 않았다고 하신다. 가만 생각해보니 콤콤한 그 깍두기 맛은 겨울에 맛보던 그 맛이었던 거 같았다. 다음에는 젓갈을 넣지 않고 담가 보기로 했다.



내친김에 아이들이 먹을 오이 물김치를 담가 보았다. 이건 더 쉬웠다. 오이를 소금에 1~2시간 정도 재워뒀다. 먹기 좋게 오이를 자르고 씨가 있는 부분은 제거했다. 그 후 사과와 마늘을 약간의 물과 함께 갈아, 채반을 받혀 그 즙을 오이 위에 뿌렸다. 그 위에 물을 부어주면서 소금과 설탕을 간을 했다. 처음 하는 거라 혹시 짤까 싶어 간이 살짝은 부족한 듯 심심하게 만들었다. 그 위에 송송 썬 파를 얹어주었다. 이대로 하루가 조금 안 되게 묵혔다 김치 냉장고에 넣었다. 오늘 꺼내 맛보았는데 아, 이건 별미다. 오히려 짭짤하지 않게 해서 아이들도 엄청 잘 먹을뿐더러, 국물도 시원하다. 짜지 않은 오이피클과 같은 맛이다. 마늘을 조금 많이 넣은 게 흠. 다음에는 마늘을 조금 줄이고 배와 양파도 같이 갈아 그 즙을 넣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소금에 절여서 오이가 더 짭짤해도 좋을 거 같았다. 와이프는 여기에 양배추도 같이 넣어서 오이랑 양배추 피클도 같이 담가보라고 한다.


시원한 오이 물김치


한국에서라면 할 엄두도 내지 않을 일인데 생각보다 보람이 있었다. 내 손맛 덕분에 깍두기는 물론 오이 물김치도 무척 맛이 있어 더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 재료가 구해지는 한에서 여러 가지김치를 담가 맛보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다음에는 겉절이에 도전할까 한다. 겉절이는 그때그때 담가 먹는 음식이니, 좋은 배추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면 겉절이를 담가, 시원한 수제비와 함께 먹어보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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