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향수, 진달래 화전

by 김병섭

나의 향수, 진달래 화전


저마다 자신의 인생 향수를 가지고 있다. 아니 인생의 향기라고 해야하나. 나에겐 할머니의 화전냄새가 그러하였다. 어린시절 나의 할머니에게서는 늘상 기름 냄새가 나곤 했다. 전이나 튀김요리를 자주 하셨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보다 많은 기억 중에서 겨우 뚜렷이 기억하는 것이 고작 진달래 화전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우습지만, 나에게 남은 할머니의 얼굴이 꽃을 한아름 안고 웃는 모습이란게 내 마음을 적시곤 한다.


작았던 내가 기름냄새가 잔뜩 밴 할머니의 등에 업혀 새근새근 잠이 들었던 그때 그 봄날을 기억한다. 코끝에 스치는 봄바람이 간질거려서였을까, 머리칼을 넘겨주던 손길이 거칠고 투박해서였을까. 내 인생에 온통 진달래물이 든건 분명 할머니의 손길이 가득 담긴 어린시절 내 사진 때문일 것이다. 어디 하나 빠진 구석 있나 연신 눈을 돌려봐도 진달래가 머물다간 흔적 뿐이라. 그래, 우리 할머니는 꼭 진달래만 같아서 그리 작으신가보다. 우리 할머니는 꼭 진달래만 같아서 그리 일찍 가셨나보다.


나는 진달래가 꽃 핀것을 보았지만 본 적이 없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늘 내 옆에 눈사람마냥 붙어서는 내 세상의 전부가 되어버린 채로 녹아버렸다. 그 눈사람은 내 옆을 지키느라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로 녹아버렸다. 그 눈사람은 어딜 그리 급히 가시나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나에게 남은 사진 한장은 진달래 앞에서 쭈그리고 앉은 내 사진 한장. 그 사진에 할머니는 없다. 할머니는 나에게 진달래 화전만을 남기고, 단 한번도 봄날을 맞이하지 못한 채 긴 여행을 떠나셨다. 그런 할머니는 여행을 떠나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픈 나를 돌보느라 매주 화요일 마다 유모차를 끌고 역에 올라 병원을 향하셨다. 나에게서 늘상 병원 소독약 냄새가 나는 것을 안타까워 하셨다. 그래서 그렇게 슈퍼를 들리셨나보다. 내가 좋아하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몽땅 들고서는 나에게 건넸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신 할머니는 정작 자신의 봄은 찾을 생각이 없으셨나보다. 그래서 그렇게 나와 진달래를 보면서도 어딘가 그리워하는 눈빛이셨나보다. 할머니께도 분명 자신의 오랜 친구가 계시겠지. 할머니께도 분명 좋아하는 취미가 있으셨겠지. 그런데 나는 할머니가 뭘 드시는걸 즐기시는지, 할머니가 무엇을 할 때 즐거워 하셨는지, 할머니가 무엇을 싫어하셨는지, 단 하나도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게 없다.


나는 할머니의 손가락이 휜 것도, 할머니의 얼굴에 주름이 점점 늘어만 가는 것도, 할머니의 키가 점점 작아지시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나는 내 눈 앞에 진달래 화전이 얼마나 달았는지, 어떤 모양새였는지는 기억하면서 정작 할머니의 옷이 어땠는지, 할머니가 무슨 생각을 하시고 계셨는지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려서, 할머니는 이미 여행을 떠나신지 오래였다.


이렇게 많은 후회 속에서, 주제넘은 일 일지도 모르겠지만, 할머니께 몇 마디 말을 물을 수 있다면 나는 아직도 그 때 그 진달래 화전을, 그 봄날을 기억하고 계시는지 묻고싶다. 나와 진달래 화전을 만들고 먹던 일들이, 할머니만의 봄을 즐기는 것 보다 더 가치있는 일이였는지 묻고싶다. 할머니의 노년을 전부 나에게 쏟아 부었던 일들을 후회하지 않으시는지 묻고싶다.


또 몇 마디 전할 수 있다면 아쉽게도 할머니가 바랐던 착하고 똑똑한 손녀는 되지 못했다고, 할머니의 생각보다 나는 그리 똑똑하지 못해서, 할머니의 생각보다 나는 그리 착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정말 많이 부족한 손녀로 자라 버린 것 같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그래도 할머니는 이런 나에게 다시 한번 진달래 화전을 만들어 줄 수 있는지 묻고싶다.


여행을 떠나시기 전에 진달래로 꽃반지 하나 만들어 챙겨드릴걸. 여행을 떠나시기 전에 진달래로 머리핀 하나 만들어 드릴걸. 오랜 기억은 많이들 잊혀진다고 하는데, 왜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리는 그 봄날의 진달래 풍경이, 코끝에 스치는 진달래 향기가 가끔 내 눈시울을 붉게 물들이는 걸까. 나의 향수, 진달래 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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