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야 하는 사람들

by 김병섭

숨어야 하는 사람들


‘피해자면 피해자 답게 굴어야지’ 일본 언론사에서 보도되었던 한 기사 내용이었다. 일본의 여배우가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기사였다. 그러나 해당 네티즌들의 반응은 아래와 같았다. ‘피해잔데 너무 당당한 거 아니야?’ 이 글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던지는 내용이었다. 9할은 거의 피해자를 공격하는 내용이었을 뿐이었다.


이 글들을 보며 나는 핸드폰을 부여잡고 혼자서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본에선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왜 피해자는, 그 배우는 왜 ‘피해자’ 답게 굴어야 하며 숨어야 하는 것일까 애시당초 피해자 답게 굴어야 하는 것은 무엇이길래.


‘페미니스트’ 요즘 계속해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 단어이다. 요즘 여성들은 댓글 등 어디에서 발언을 하고 싶으면 앞에 이 단어들을 붙인다. “내가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도데체 페미니스트가 무엇이길래 누군가의 발언권을 억압할까. 희귀해 보이지만 대표적으로 한국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유명 배우 엠마 왓슨은 페미니스트다. 또한 가요계에서도 유명한 선미 또한 그러하다. 왜 이들은 앞선 댓글들과 달리 본인들을 그렇게 밝히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다. ‘양성평등’ 이 단어를 강조하는 내용일 뿐이다. 그럼 왜 이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단어를 사람들은 혐오할까?


이 단어로 인해서 많은 여성들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여성 성차별 내용들, 미성년자 성상품화 등을 이 단어로 인해서 바꾸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여성은 남성과 똑같은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했다. 아무리 신분이 높아봤자 시집가면 남자의 소유물이 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대가 지나면서 여성의 대우가 좋아졌다고 한다. 애시당초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왜 여성은 대우가 좋아졌다고 자랑스러워해야 하는가.


여성 감독, 여자 가수, 여자 배우…. 남성들이 이 직업을 가지면 앞에 ‘남’ 이라는 수식어는 갖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들이 직업을 가질땐 ‘여’ 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거의 모든 매체에서 여성을 다룰 때 수동적이며 복종적인 여성들을 다루곤 한다. 거의 모든 드라마, 영화에서도 여성이 해당 회사의 ceo 거나 회장이지 않았다. 여성들은 매체 안에서 비서 라는 역할로 자주 우리에게 비춰졌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는 일이 여성에게 당연한 일이라고 강요한다. 세상을 바꿀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도 사회에선 한 순간에 여성으로만 비춰진다. 그 누구도 여성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사는 방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 널 좋아해서 하는 행동이야’ 어릴 적에 학교에서 남학생이 나한테 폭력을 휘두르고 각종 모욕적인 말을 했을 때 나한테 돌아온 말들이었다. 온갖 수치스러움을 느꼈지만 나는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저 말 하나때문에 용서를 강요 받았다.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사회에서 성희롱, 차별을 당하는 것은 물론 용서를 강요받는 일이 당연한 것이라는 사상이 뿌리에 박혀있다.


파격적인 대응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요구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저 동등한 대우를 바라고 동등한 시선으로 동등한 출발점에 서있길 바란 것이다.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2차 가해를 하지 않는 것. 이 행동들을 바라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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