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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로 향했다.

나도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by 김병섭

바야흐로 2009년도. 5살인가 6살 때 엄마가 제일 친했던 할머니 집에 놀러 갔을 때 밥 먹고 언니랑 술래잡기 하다가 엄마랑 할머니가 빨래줄 조심하라고 뛰지 말라고 소리쳤다. 한 3번 넘게 말했던 거 같다. 나는 엄마와 할머니의 말을 듣는 척 마는 척하며 언니랑 계속 뛰며 술래잡기를 하다가 빨래줄에 결국 걸려 넘어져 가로등 철에 부딪혀서 뒤로 넘어졌다.


나는 그냥 씩씩하게 먼지를 털고, 아무,생각도 없었고, 단지 좀 부끄럽고, 어색한 공기가 싫었다. 그냥 일어났다. 마당에 앉아있던 엄마와 할머니는 나보다 더 놀라서 달려왔다. 엄마가 물었다. “괜찮아?”라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가 말해주었던 그때의 상황들을 이야기 해 보자면, 내가 잠시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빨랫줄에 걸려 뒤쪽으로 꽝 했고, 내가 잠시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 엄마는 내 손을 보고 경악을 했다. 엄마의 손에 피가 흥건하게 묻은 것이었다. 엄마가 “샛별아! 수건 빨리 수건 가져와!!” 라고 소리를 질렀다.


샛별이 언니는 할머니의 딸이다. 할아버지가 얼른 “차 키 줘, 차 키!!!” 하고 나랑 할아버지, 엄마, 할머니랑 같이 차로 향했다. 나는 아프지도 않고 어리둥절했는데 바로 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전속력으로 엑셀을 밟았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실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침대에 눕혀졌고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두 분이 내 머리에 피들을 다 지혈하고 의료용 호치케스로 찢어진 머리 부분을 꿰맸다. 한 10번 정도 철컥 소리가 들렸다.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냥 이게 무슨 일인가 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고 나서 머리에 붕대를 감았고 며칠 동안은 병원에 있었던 생각이 난다. 실밥을 풀을 땐 더 큰 병원에 가서 푼 기억이 난다. 풀 때는 따끔따끔 했지만 한편으로는 시원했다. 실밥을 다 풀고 아직 새살이 돋지 않은 곳에는 연고를 바르고 붕대는 이제 빠이빠이 하고 의료용 거즈와 밴드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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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집을 오랜만에 갔는데 집공기 냄새를 오랜만에 맡으니 너무 행복하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내 애착 강아지 인형에게 달려가 꽉 끌어안고 인형한테 “그동안 나 보고 싶었지 미안해 나도 너 엄청 많이 보고 싶었어!ㅠㅠ” 라며 사과를 하고 같이 낮잠을 잤다. 그러고 나서 오랜만에 집밥을 먹었다. 시래기 된장국과 계란말이 엄마의 김치 밥 멸치볶음 시금치 등등 내가 좋아하던 엄마의 집밥을 먹으니 너무 행복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시점 그때의 밥을 먹고 싶다.나는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엄마의 손에 묻은 내 피, 엄마를 툭 건들이면 바로 눈물이 흐를 거 같은 엄마의 얼굴. 의사 선생님과 병원에 있던 사람들의 말들과 눈빛, 가족들의 텅 빈 온기, 병원 향기 등


나의 어린 시절로 인해 우리 엄마가 느꼈던 놀란 표정과 말은 잊을 수 없다. 나로 인해 우리 엄마는 자책을 했고 나 몰래 눈물을 훔치던 우리 엄마가 생각난다. 아직도 나는 그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나도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어렸던 민아로 돌아간다면 지금 이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최대한 조심하게 엄마의 말을 들으며 행동할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본 우리엄마는 자기 자신보다 딸들을 더 챙기는 엄마며 자기의 아픔보다 딸들의 아픔에 더 슬퍼하는 우리 엄마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스럽고 안아드리고 싶다. 그 때의 민아 에게 한마디 하고 싶다.


민아야 엄마의 말은 다 옳은 거 같아 그러니 엄마의 말은 귀 기울여 들어. 엄마가 하는 말 엄마가 하는 행동 등 다 마음 깊이 들었으면 좋겠어. 이렇게 말 한마디 하는 게 이렇게 속 시원할 줄이야 엄마에게도 한마디 하고 싶다. 엄마 그 때 너무 죄송해요. 어렸던 마음에 엄마 말을 듣지도 않고 뛰어놀다 다쳐 엄마 마음 속상하게 한 거 너무 너무 죄송해요. 이제는 더 노력할게요!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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