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사랑하는 거겠지.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악뮤.

by 김병섭

https://youtu.be/m3DZsBw5bnE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 자신이 사랑하는 것 하나씩을 가지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사물이나 자신의 일일 수도 있고, 무언가를 하는 행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이 노래에서 다루는 것은 으레 그렇듯이 사람이겠지만, 나는 그런 적은 없어서 대상을 사람으로 했을 때의 공감은 못하겠다. 그러나 대상이 사람이 아닐 때의 공감은 자신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나열해 보자면 끝도 없다. 글을 읽는 것, 쓰는 것, 노래를 들으면서 등하교하기, 베이킹을 해서 주변에 나누어주기, 가끔씩 무모하게 지하철타고 서울 다녀오기. 이러한 것들처럼 사소하거나, 나름의 거창함을 가지고 있거나, 하찮기까지 한 것들을 사랑한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이 노래의 제목이자, 가사이자 가수에게 노래를 통해서 듣는 이에게 전하는 말인 이 대사는 꽤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래의 제목은 책의 표지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수가 제목으로 하기에는 꽤 긴 저 가사를 제목으로 내세운 것에서 생각보다 저 문장 하나가 3분 가량이 되는 이 노래의 핵심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거창해 보이지만 생각보다 별 거 아니다. 우리는 매일 서로와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고, 때로는 영원한 헤어짐을 마주하고, 그렇게 우리는 이별과 만남을 토대로 살아간다. 사람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한 적은 드물다. 내가 성격이 사람과의 만남에서 아쉬움을 쉽게 느끼는 성격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만큼의 공백 동안 다른 것들이 내 삶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게 앞서 말한 것들이다.


노래에서는 반복까지 해가면서 이별을 사랑할 수는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별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서로를 포기하고 아파할 수는 없으며, 이건 오롯이 너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나 또한 비록 대상이 사람은 아닐지언정 이별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세상 어느 누가 사랑하는 것과 이별하는 것을 달가워하겠는가. 무언가를 사랑함으로써 부수적으로 딸려오는 괴로움과, 고통과, 때로는 모순적인 외로움을 아무 말 않고 견디는 이유는 내가 어리석어서도 아니고, 누군가의 강요와 압박도 아닌 그저 내가 그것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어떻게 감히 인간으로서 그것을 떠나보낼 이별의 순간까지 기꺼이 사랑하겠는가.


맨 마지막에 반복되는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 라는 가사인데, 가사라서 함축적이고 리듬감있게 적힌 탓에 그냥 보면 의미를 단번에 유추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가사를 늘어놓고 천천히 읽어보면 이런 뜻이 된다.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너를, 서로를 포기하고 찢어질 것 같이 아파할 수 있겠어. 그러니까 나는 차마 이별까지 사랑할 수는 없는 사람이고, 그러니 이 모든 아픔을 견디는 것의 시작과, 근본과, 까닭은 모두 너를 사랑하는 것에 있다‘. 저 길지는 않은 가사를 풀어서 써보면 이렇게 길고 긴, 스토리 있는 의미가 된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런 이별 노래에서 쓰이는 가사치고는 너무 폭넓고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감성적인 문장이라서 의외였다. 대체로 내가 들었던 이별노래에서는 듣는 사람을 억지로 울리려는 듯한 느낌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노래는 꼭 계속 듣다보면 아주 고민하고 정제해서 쓴 시나 수필처럼 문학을 읽는 기분이 든다. 너무 고르고 골라 정제한 나머지 너무 깊은 감정까지도 걸러져서 수없이 반복해서 이별을 노래하고 있지만, 듣는 이가 울거나 감정이 깊게 빠져들 정도로 슬프게 들리지는 않는다는 거다. 그러나 그 비교적 담담하고 깔끔한 나름의 감성이 나는 나쁘지 않았다. 건조할 정도로 메마른 감성도 아니었다.


세상에 흔한 이별노래처럼 술을 마시고 택시에서 엉엉 우는 이별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헤어지고 나서도 언젠가 길거리에서 다시 만났을 때, 기분 나빠하지 않고 희미하고 마주 웃을 수 있는 정도의 감정이 전해져오는 신기한 기분이었다. 꼭 강렬한 감정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주저앉아서 엉엉 울지 않는다고 해서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고, 꼭 눈물이 나게 웃지 않는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막상 그렇게 희미하게 마주 웃어놓고서 집에 돌아가 그 얼굴을 떠올리면서 혼자 울 수도 있지 않은가.


그 얼굴을 평생토록 되새기면서. 헤어지게 됐다고 해서 상대를 크게 원망하는 것도 아니고, 슬프게 우는 감정을 담은 것도 아니다. 헤어지고 죽겠다고 난리를 치는 것도, 헤어지고 나서 상대가 결혼하는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이별을 사랑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너를 사랑했기에 견뎠다고 아주 담담하게, 울지도 웃지도 않으면서 말하는 것이다. 그에 맞춰서 이 노래는 고음이 크게 들어가지 않고 가수의 평소 톤에 맞추어 잔잔하게 부르는 노래이다. 계속 듣다보면 꼭 내가 가수랑 연인이었던 기분이 들게 만들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낭만적인 곡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노래의 제목은 한동안 유머로도 쓰였을 정도로 꽤 인기를 끌었던 곡이다. 오래도록 변함없는 인기를 둘러업고 활동한 악뮤의 노래이니만큼 믿고 듣는다는 분위기가 없지는 않지만, 곡이 수록된 앨범 중에서 유일하게 신나는 분위기가 아닌 잔잔한 발라드 곡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앞서 말했던 이 노래가 포함된 앨범의 타이틀곡이기도 한데, 그 앨범의 이름이 ’항해‘였다. 바다와 관련된 노래의 제목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항해라는 제목의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 사용한 것은 항해라는 의미 자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직관적인 항해뿐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만남과 이별의 시간들 자체를 항해라고 이름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라는 노래는 가수인 악뮤의 그룹명이 악동뮤지션이었을 시절의 노래를 닮았다. 그 시절의 감성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는데, 화음이 크게 없고, 리듬악기의 특색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으며 고음이 없고 어떻게 보면 화려하지 않고 소담하다고도 볼 수 있다. 꼭 잠자리에서 불러주는 노래같기도 하다. 피아노와 가수의 목소리를 주로하여 이루어진 노래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주마등이 길을 비춘 먼 곳을 본다, 그 때 알게 되었어. 난 더 갈 수 없단 걸. 한 발 한 발 이별에 가까워질수록 너와 맞잡은 손이 사라지는 것 같죠.‘ 이 노래의 또 다른 가사 중에 있는 구절이다.’주마등이 길을 비춘 먼 곳‘ 이라는 표현이 노래로 들을 때도 굉장히 독특하고 두드러지게 느껴졌었는데, 가사로, 직접 글로 보니까 더 새로웠다. ’시를 노래하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듯한 곡이었다. 그 외에도 ’우리 사이에 그 어떤 힘든 일도 이별보단 버틸 수 있는 것들이었죠‘라는 가사가 있듯이 틀에 박히지 않은 시와 노래 사이 그 언저리 느낌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이별해본 적이 있다면 그 사람을, 사람이 아닌 무언가를 사랑하고 포기해본 적이 있다면 그게 생각날 노래라고 생각한다. 이별노래의 틀에 박히지 않은 드문 노래이자, 종종 흥얼거리게 만드는 음악으로써의 매력도 충분한 노래이다. 마지막에 ’어떻게 내가 어떻게 너를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이별일 텐데‘라는 가사가 두 번 반복되면서 노래가 마무리되는데, 가사가 짧은 것에 비해 상상 이상으로 노래가 길어서 5분 가까이 된다.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노래에 빠져들 수 있으며 가사가 이렇게 얼마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정도로 듣기 좋은 노래이다.


’아무 말 없는 대화 나누며‘ 라는 가사에서 변화의 역설 표현법이 쓰인다. 대화라는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하는 것을 뜻하는데, 아무 말이 없는 대화라는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는 역설을 사용한 것이다. 조금 다른 의미로 해석을 해보자면 역설과 동시에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아도 눈빛, 행동 등에서 드러나는 비언어적 표현으로 대화를 했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가사의 사람들은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음에도 서로에게 서로의 뜻을 전달했다는 의미에서는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또 다른 표현법은 ’이후에 우리 바다처럼 깊은 사랑이‘라는 가사에서 비유, 그 중에서도 직유의 –처럼, -같은과 같이 무언가를 다른 것에 직접적으로 빗대어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가사에서는 바다처럼 넓고, 또 깊은, 다르게 표현하자면 한 없이 많은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서 바다에 사랑을 비유하고 있다. 그 위로는 그 사랑이 다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이별일 텐데, 라는 표현이 연이어서 나오는데 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사랑을 바다, 혹은 바닷물에 비유한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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