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병섭 Oct 05. 2022

나에게 <서른즈음에>는...

서른 즈음에. 김광석.

지금부터 제가 좋아하는 대중가요 한 곡을 소개하겠습니다. 제가 이번의 소개해드릴 노래의 제목은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입니다.      


우선, 문학 표현사전을 활용하여 분석해보겠습니다. 

“또 하루 멀어져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이라는 가사엔 비유법 중 직유법이 사용되었습니다. 직유법이란 ‘~같이’, ‘~처럼’ 등을 사용하는 비유법입니다. 이 가사는 하루가 지나감을 ‘내뿜은 담배 연기‘와 같다고 비유한 가사입니다. 이 가사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담배 연기처럼 그저 흘러가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즉, 바쁘게 흘러가는 우리네 인생들이 진정 나에게 있어서 의미있는 삶인가?를 전달하고자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소에 이런 고민들을 종종 하곤 합니다. 그저 바쁘게 휙휙 지나가는 내 삶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내 삶을 의미있게 보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까? 와 같은 고민들 말입니다. 그래서 이 가사가 제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조금씩 잊혀져간다. 머물러 있는 사랑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간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라는 가사입니다. 이 가사에는 강조 중 반복이 사용되었습니다. 반복은 동일한 대상이나 시어를 반복하여 사용하는 것으로, 이 가사에는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를 반복하였습니다. 이 가사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저는 앞 가사 중 ’사랑‘은 남녀가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아닌 ’열정‘ 또는 ’떨림‘으로, 뒷 가사 중 ’이별‘을 ’포기‘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나 자신도 모르게 처음과 같은 열정들이 사라지고 있고 매일을 포기하며 살고 있다.‘ 라는 의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러한 경험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작년 여름, 제가 한창 헤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실기 연습에 매진하던 동안에 저는 잠깐의 슬럼프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매일같이 노력함에도 혹시나 떨어질까 불안한 마음이 저를 잡아먹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같이 연습하던 친구들이 하나 둘 합격 소식을 전할 때마다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왜인지 시기와 질투 같은 감정도 들며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실기 당일 날이 가까워질수록 꼭 취득하겠다는 독기가 아닌, 더 늘어지고 처음과 같은 초심과 열정이 사라지고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당시의 저와 이 가사 꼭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문학 감상분석을 통해 소개를 이어나가 보겠습니다.

저는 이 노래의 가사들 중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라는 가사가 제일 명가사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누가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지만 이번에는 ’이별‘을 ’포기‘가 아닌 말 그대로의 ’서로 갈리어 떨어지는 것‘으로 해석해 보면, 사실 우리는 정말 매일을 이별하며 살고 있습니다. 물론 무엇으로부터 이별하는지는 모두가 다르게 볼 수 있지만 제가 해석한 바로써 모든 이들은 이 생으로부터 이별하며 매일 죽음과 가까워져 갑니다. 제 자신도, 저희 부모님도, 제 친구들도, 하다못해 길고양이들 마저도 매일 하루하루 이 생과 이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하루하루가 그 무엇보다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매일을 이 생으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이별하며 살고 있고,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찾아오기에, 나의 하루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의 하루도 소중함을 알고 더욱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이 노래와 관련된 저의 경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이 노래의 가사들, 특히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비어가는 내 가슴 속엔 더 아무 것도 찾을 수 없네” 처럼 자신감과 자존감이 강한 시기인 청춘의 나이에 세상을 알게 되고 현실을 자각하게 되며 마음이 텅 비어져간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시간이 흐르고 청춘이 떠나감을 아쉬워 하는 노래이죠. 이 경험은 제가 고등학교에 올라온 후에 일인데요, 저는 생과고에 진학해서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배우고 싶었던 걸 배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이상과 현실 속의 모순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진행중인지도 모르겠네요. 그저 나와 다른사람의 머리를 손질해주고 메이크업을 해주는 것이 좋아서 이 학교에 왔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수월치 않은 학교생활이었고 그저 즐기기에는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18살인 지금 저는 어른들의 보호 없이 홀로 두 발로 일어서 나아가야하는 성인이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요즘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많고 자잘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예민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음으로 이 노래의 가수이신 김광석님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우선 김광석님은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남긴 싱어송라이터로 천재 예술가입니다. 특히 김광석님의 목소리에는 특유의 감성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매력이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김광석의 친구이자 가수인 박학기님은 “김광석의 노래는 우리 인생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고 말했고. 또한 임진모 평론가는 “김광석의 노래는 우리 모두의 진실한 독백이다.” 라며 평론했고 김광석의 나의 노래를 작곡한 한동헌 작곡가는 “김광석은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문학적 성취를 이룬 돋보였던 가객이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김광석님은 현재까지도 가수들의 리스펙을 받는 천재임을 알 수 있죠.      

제가 이번에 소개해드린 <서른즈음에> 뿐만 아니라 수많은 명곡들을 보유하고 있는데 특히 김광석님의 노래는 한 사람의 인생을 그대로 그린 것처럼 인생에 닥친 상황마다 어울리는 명곡들이 많습니다. 입대할 때는 <이등병의 편지>, 가슴 아픈 이별 후에는 <잊어야하는 마음으로>,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 연인을 잊지 못할 때는 <사랑이라는 이유로>, 좌절을 극복할 때는 <일어나>, 사회정의를 외칠 때는 <광야에서>, 인생의 황혼기에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이처럼 삶을 노래한 김광석은 한국인들의 인생과 감성을 그 누구보다도 가장 감미롭게 표현한 가수입니다. 그가 사망한 후에는 타살 의혹과 저작권 문제등 각종 논란들이 끊이지 않았지만 리메이크 앨범으로, 뮤지컬로, AI 목소리로 부활시킬 만큼 사랑을 받는 김광석의 노래는 오늘날까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옵니다.      


또한 제가 특히나 김광석 가수님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제가 김광석님을 특히나 더 좋아하는 이유는 거의 유일하게 저와 부모님이 동시에 좋아하는 가수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모와 자식 간의 음악 취향 맞기는 정말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 만큼이나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던 나이에 엄마는 조용필을 좋아했고 제가 잘 모르는 가수들이 엄마에게는 아이돌 이였지만 지금은 엄마가 모르는 아이돌을 제가 좋아하곤 합니다. 그래서인지 엄마 차를 타고 제가 블루투스를 이용해 음악을 틀면 저희 엄마는 저의 음악들을 탐탁치 않아하시는 일이 대다수였고 엄마가 음악을 틀면 또 제가 탐탁치 않아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바로 저희는 김광석님의 노래를 틀곤 합니다. 김광석님의 원곡부터 다른 가수분들이 리메이크한 노래들까지 틀면 다른 음악 취향으로 싸우던 저희는 다시 화해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더욱 김광석 가수님께 감사하고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희 엄마의 최애곡은 김광석 님의 <잊어야한다는 마음으로>입니다...     


그 다음으로 제가 이 노래를 추천 하고 싶은 사람을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꿈을 꾸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는 이 노래를 서른은 커녕 십대가 막 되었을 무렵부터 들었는데요, 오래된 곡이었고, 편곡 역시 옛날 풍을 풍겼음에도 묘하게 촌스럽지 않았습니다. 애창곡까지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즐겨듣는 곡이 되었죠. 그때 저는 '과연 서른이 되면 나도 저런 감정을 느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서른이 된 사람들도 그렇고 막 서른이 된 다른 청자들 역시 가사가 풍기는 허무의 정서와 파토스에 공감하기 어렵다는 반응들이 대부분입니다.      


이는 오늘날 각 사회적 세대가 이 곡이 창작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급격히 젊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과거에는 비교적 취업을 일찍할 수 있었고, 수입에 비해 물가가 저렴했으며 결혼이 당연시 된 사회였기에 많은 청춘이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는데 군대를 다녀온 남자로 치면 그 시기가 20대 후반이었고. 청춘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가정을 부양해야하는 성인으로서의 삶을 목전에 둔 시기가 30대였기 때문에 이러한 곡이 창작되어 당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서른이라는 특정성을 제외하고 본다면, 아예 공감하지 못할 곡은 아니라고 생각하는게, 30대가 아닌 20대와 혹은 저와 같은 10대도 충분히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으며, 특히 곡에서 드러난 해묵은 실연의 경험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확률은 더욱 높아집니다.      

오늘 날의 더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감정은 '사랑'보다 '꿈'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있더라도, 꿈을 꾸지 않았던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싯적 꿈을 집요히 붙잡고 있다가 서서히 단념하기 시작하거나 단념을 완료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시점은 모두가 다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인간은 꿈이 있기 때문에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동물과 달리 삶과 운명을 자각할 수 있는 인간이, 천문학의 발달로 자신을 온 우주에 빗대어 보았을 때 한낱 티끌만도 못한 존재임을 인지함에도 계속 살아가는 이유는 그들이 머리 속으로 그려나가는 미래를 실현해나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죠. 꿈을 꾸다보면 이 노래 가사처럼 애초에 원대했던 꿈이 현실의 벽에 연이에 부딪혀 깨지면서 사람은 타협하기를 택하기도 합니다. 즉 꿈을 포기하기보다, 그 부피를 줄여나가는 것이죠. 예컨대 한때는 교사라는 부푼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의 성적이나 대학, 그리고 임용고시 등과 같은 현실의 큰 벽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일단은 꿈을 미루어 둔 저처럼 말입니다.      


저는 꿈을 꾸는 모든 이들이 이 노래를 듣고 공감하고 때로는 상실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계속해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또 제가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저를 포함한 꿈을 꾸는 모든 이들에게 이 노래를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좋아하는 대중가요인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24화 거울 속에 마주친 얼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