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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섭 Jul 04. 2023

사소한 일에 빗대어 오히려 그 사랑이 사소해보이지 않게

황동규. 즐거운 편지.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사소한 일에 빗대어 오히려 그 사랑이 사소해보이지 않게

이 시는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편지처럼 전한 시이다. 그러나 ‘말하는 이’는 그 상대를 짝사랑하고 있다. 즉 짝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상대에게 직접 보낼 수 없다. 혼자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그리워하면서 늘 마음 속에 사랑을 간직하면서도 내색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마음을 담은 편지만 쓸 뿐 부치지는 못한다. 

그래서 이 시는 읽는 청자에 따라 반어법으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내가 이 시의 내용을 상상해본다면, 이 시는 반어적으로 표현한 시라고 생각한다. ‘말하는 이’는 사랑하는 상대에게 “내 그대를 생각함은 (중략) 사소한 일일 것이나 (중략)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반어적으로 표현하여 자신의 순수한 사랑을 더 간절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사랑을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반복되는 사소한 일에 빗대어 오히려 그 사랑이 사소해보이지 않게 강조하고 사랑하는 그대를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지만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안되는 소중한 것이라 비유한다.      


내가 부모님에게 느끼고 있는 사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구: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이 구절에 내용은 앞에서 서술하였듯, 화자에게 ‘그대’는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이지만 결코 말 그대로 사소한 사랑이 아니다. 화자에게 ‘그대’는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다. 이는 자신의 사랑이 ‘그대’가 알아차릴 수 없는 정도로 사소해 보이지만 오래 변함없이 사랑하다보면 언젠가는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에게 고백할 것이라고 말한다. 

화자의 일상처럼 사소해보이지만 변함없는 사랑이 내가 부모님에게 느끼고 있는 사랑의 감정과 매우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나도 내 부모님을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상처럼 당연하지만 일상에서 사라지면 안되는 변함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사소함으로 내 마음을 고백하게 되는 날이 50년 후, 부모님 무덤가에 바치게 될 날일 것 같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세월이 지나고 언젠가는 

나도 시 속의 ‘밀히는 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말하는 이’가 상대를 사랑해도 응답을 받을 수 없는 짝사랑처럼, 지금은 다시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시 속의 화자처럼 그런 짝사랑임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변함없는 마음으로 좋아하고 있다, 시 속의 화자도 자신의 사랑은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아주 소중한 것이고, 한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자신의 사랑을 안타까워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어서 그대의 사랑이 다가오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화자의 간절하면서도 변함없는 사랑과 기다림이 내가 겪는 경험의 감정과 비슷한 것 같다. 지금은 만날 수 없지만 세월이 지나고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게 될 날이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만날 수 없는 지금이지만 앞으로도 이 마음이 변함없이 계속 됐으면 좋겠다. 이 기다림이 사랑이 돼버린 지금처럼 말이다.      


짝사랑은 기다림의 연속이구나 

이 시를 읽으면서 시 속의 상황을 상상해보다가 떠오른 노래가 하나 있다. 2006년 발매한 윤하의 ‘기다리다’라는 곡으로, 이 곡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짝사랑하면 생각나는 윤하의 대표곡 중 하나이다. 나또한 가끔 생각나면 즐겨듣기도 하고, 가수 윤하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생각이 난 것 같다. 특히 이 노래는 슬픈 내용의 가사와 윤하의 보컬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곡이라 생각한다. 

이 곡의 가사는 시의 내용과 매우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노래 속 화자는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당신은 이런 내 사랑을 모르고 나에게 상처도 주겠지만 나는 당신의 웃는 모습 한 번 볼 수 있는게 좋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당신의 말이면 뭐든 다 할 것이다. 오지 않을 그대를 알지만 그래도 천년 같은 긴 기다림으로 당신을 기다리겠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사랑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가사 중에서도 “천년 같은 긴 기다림도 그댈 보는 게 좋아. 하루 한 달을 그렇게 일년을 오지 않을 그댈 알면서 또 하염없이 뒤척이며 기다리다 기다리다 잠들죠.”를 읽어보면 노래 속 화자의 상황과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다. 

시 속의 화자도 노래의 내용과 비슷하게 짝사랑하는 상대가 있고 그 상대를 매우 아끼며 간절히 사랑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상대는 자신의 이 간절한 사랑을 모른다.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그냥 혼자서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상대가 언제 다가와줄지는 몰라도 그저 사랑하는 상대만을 바라보며 그 사랑으로 계속 기다리는 것이다. 

<즐거운 편지>와 <기다리다>를 비교해보면서 비슷한 점이 정말 많아 ‘짝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먼저 짝사랑은 기다림의 연속이구나 라는 것을 알았다. 상대를 매우 사랑하면서도 용기가 나지 않거나 더는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려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사랑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직접 전하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만 몰래 간직하고 있는 것이 짝사랑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상대가 이 마음을 몰라준다고 해서 거기에서 사랑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내 몰래 간직한 이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들 것이다. 

시에서는 “즐거운 편지”라고 제목을 지어서 직접 상대에게 고백하는 것이 아닌데도 혼자서 몰래 편지처럼 적어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노래에서는 “혼자인 게 더 편한 나라 또 어제처럼 이곳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는 나예요”라고 말하며 상대방은 모르지만 자기 혼자서 오지 않는 상대를 매일 기다리는 화자처럼 말이다. 같은 주제의 시와 노래라고 하지만 둘 다 ‘변함없는 기다림’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이 ‘기다리다’라는 곡을 즐겨듣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가사의 내용이 자신의 상황과 비슷해서 또는 공감돼서 일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사회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사랑이나 이별이나 짝사랑을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에는 정해진 틀이 없으니 자신 나름 대로의 사랑을 해봤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떤 모습이든 짝사랑을 해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곡 ‘기다리다’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공감되는 가사라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용기가 없거나 만날 수 없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전할 수 없을 것이다. ‘기다리다’라는 곡을 즐겨 듣거나 가사가 공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시 ‘즐거운 편지’를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그대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담겨있는 카메라

이 시속의 ‘나’는 앞에서 서술하였듯 만날 수 없는 짝사랑하는 그대를 계속 기다리는 내용이다. 나는 그런 화자에게 어울리는 창작물로 ‘그대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담겨있는 카메라’를 주고 싶다. 만날 수 없는 사랑하는 상대를 더는 만날 수 없다는 부정적인 마음으로 그저 울면서 기다리는 것은 정말 안 좋다고 생각한다. 화자도 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대를 기다려보겠다고 하지만 그 화자도 짝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의 사랑을 알아주지 않고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 참 슬퍼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 화자였어도 정말 슬펐을 것이다. 그런 화자의 마음을 생각해서 나는 사랑하는 그대를 긍정적으로 추억하면서 기다릴 수 있게 ‘그대의 사진이나 동영상이 담겨있는 카메라’를 주고 싶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이 시를 한 번 보여드리고 싶다.          

이 시에서 화자가 사랑하는 ‘그대’에게 느끼는 감정과 내가 부모님에게 느끼는 감정이 비슷한 것 같다. 화자가 ‘그대’에게 느끼는 사랑은 ‘그대’가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사소해 보이지만, 오래 변함없이 사랑하다보면 언젠가는 오랫동안 전해오던 사소함으로 그대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것이라 한다. 

나도 부모님을 오랫동안 사랑해왔기에 어찌보면 이 사랑이 변함없는 일상처럼 사소해 보이고 당연하다고 생각해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에게 내 마음에 대한 진정한 감정에 대한 고백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사소하지만 변함없는 사랑을 계속하다보면 언젠가는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부모님에게 고마움과 감사함, 사랑함을 고백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내가 느끼는 그 사소함이 너무 당연해져버렸고 직접 내 마음을 전하기에는 조금 쑥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어 어쩌면 50년 후 부모님 무덤가에, 한참 뒤늦어버렸을 그때에 후회를 하며 내 마음을 고백할 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뒤늦게 고백한다고 해도 부모님께서 내 변함없는 사랑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물론 역시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하는 마음의 고백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뒤늦게 후회하지도 않고 시 속의 ‘말하는 이’와 같은 혼자 적어보는 응답 없는 짝사랑과는 다른, 부모님께 내 마음을 확실하게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즐거운 편지’라는 시가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정말 50년 뒤 후회하면서 부모님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닌 지금은 그렇게 가정해서 상상해보며 고른 시이기 때문에 내가 부모님에게 내 마음을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고, 그렇지만 또 그만큼 일상 속의 한 순간처럼 사소하면서도 일상에서 사라져서는 절대 안되는 소중한 사람이 나의 부모님(가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50년 뒤 부모님 무덤가에 이 시를 바치고 싶지만 되도록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이 시를 한 번 보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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