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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섭 Jul 04. 2023

중심을 제대로 잡아줄 사람

나태주. 기쁨.

난초 화분의 휘어진

이파리 하나가

허공에 몸을 기댄다.     

허공도 따라서 휘어지면서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그들 사이에 사람인 내가 모르는

잔잔한 기쁨의

강물이 흐른다.








 공감하고 위로하는 법을 배우기

시 속의 말하는 이가 누구일지 생각해 보았는데 말하는 이는 나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고민에 의해 시무룩해 있는 동생이 허공에 몸을 기대는 이파리라고 생각이 들어 가정하고 보았을 때 허공에 따라 휘어지며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 이파리를 엄마라고 생각이 들어 가정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렇다면 그걸 바라보는 사람은 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생이 항상 밖에서 상처를 받고 와서 시무룩해 있으면 그걸 보고 금새 알아차린 엄마는 위로를 해주고 나는 그것을 지켜보며 아닌 척 공감하고 위로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이파리의 위로와 사랑을 제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며 그 안에 담긴 깊은 의미를 배우는 ‘말하는 이’처럼 말이다. 

전에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동생이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난 일이 있었는데 그게 너무 억울하다고 집에 와서 서러움을 토로했다. 그때 그 이야기를 제일 먼저 들은 나는 아무리 들어도 동생이 잘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동생의 기분은 뒤로하고 사실관계에 더 치중하여 반론을 제기하며 위로를 해주었는데 동생은 오히려 화를 내었다. 그래도 나는 나의 공감 방식에 잘못되었나 하는 의문을 전혀 갖지 않았다. 그리고 그걸 본 엄마는 나를 꾸중하시고 동생에게 다시 다른 방법으로 위로를 해주었는데, 그때 엄마는 동생의 기분을 고려하여 그것에 먼저 공감을 해주고 자신도 그랬을 것 같다는 말을 해주었다. 사실 당시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런 위로의 방식을 배우게 되었고 그러므로 이 시와 비슷하다고 느끼게 됐다.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

가장 마음에 드는 시구는 2연에 ‘난초 이파리를 살그머니 보듬어 안는다.’라는 시구이다. 먼저, 이파리에 의인법을 사용하여 시적으로 표현한 것부터 굉장히 감성적이라고 느꼈다. 난초 이파리는 자아가 없기에 보듬어 안는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시를 쓴 이와 읽는 이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오직 ‘시’라는 장르이기에 가능하고 그것이 ‘시’만이 가질 수 있는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 생각하는데 이런 식으로 시라는 장르를 확실하게 티내는 것 같아 좋았다. 그리고 이 시의 전반적인 내용이 자연적인 것들에 의미부여를 하는 것인데 그것이 중력에 의해 공기를 가르는 이파리임에도 그 이파리의 움직임을 보며 위로와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하며 작은 것에서도 배울 점을 찾아 깨달음을 얻는 제3자, 사람으로서 전개되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시구 안에 담긴 의미가 이 시의 정체성이자 주요 내용이라고 생각되어 더욱 기억에 남았다. 이 구절은 여러모로 이 구절이 나에게 명장면이라고 생각된다.     


부모님께 전화로 사랑한다고 말해보기’라는 시민 실험 

이 시를 보며 떠올랐던 뉴스가 하나 있었다. 6년 전 JTBC 뉴스 중 ‘부모님께 전화로 사랑한다고 말해보기’라는 시민 실험 뉴스이다. 이 실험은 대학생의 메신저 사용실태를 조사하는 것처럼 인터뷰를 시작해 부모님과의 연락 빈도를 묻는 것이다. 나온 결과로는 학생들에게 질문해보니 부모님과의 연락 잊어버린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고 연락을 한다는 사람들도 애정이 담긴 사적인 내용의 연락이 아닌 용돈을 달라는 연락 등만 주로 한 것으로 결과가 도출되었다. 그리고 이후 학생들에게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거나 전화를 드리게 하고는 훈훈하게 뉴스가 마무리되었다. 

이 뉴스를 보며 나는 부모님과 일정 기간 동안 떨어져 있을 당시나 혹은 일상에서 얼마나 연락을 드렸고, 사랑한다는 애정의 표현을 얼마나 하고 살았는지 다시 돌아보고 생각하게 되었다. 여행을 가서도 부모님께서 먼저 연락을 하셔서 연락 좀 하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나 의무적으로 연락을 드렸고 그마저도 잘 하지 않으며 자의적으로는 연락을 전혀 드리지 않아 죄송스러웠고 할머니들께도 연락을 드리지 않은 것이 당연했고 먼저 연락을 주시면 그 연락을 이어나가는 것이 귀찮아 일부러 늦게 보거나 대화를 끝내버린 것에 전에 할머니들께서 연락 한 번 해드리면 굉장히 좋아하시고 연락을 하시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좋아하시던 모습이 떠올라서 굉장히 죄송스러웠다.이러한 뉴스에 나와 대답에 질문을 하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평소의 우리와 겹쳐진 모습에 그동안 부모님께 어떻게 대했는지 인지하게 되었고 늦게나마 실천하게끔 하게 되어 미래 부모님의 무덤가에서 하는 후회가 조금은 줄어들게 만드는 뉴스인 것 같아 이 뉴스를 꼽았다.     


내 생애 처음으로

이 시를 50년 후 부모님의 무덤가에 바치는 이유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돌보아주시고 사랑을 주신 부모님의 무덤가를 찾아가면 살았던 인생의 전부를 파노라마처럼 되돌아보게 될 것 같다. 내 생애 처음으로 사랑을 받은 일, 내 생애 처음으로 공감을 얻은 일, 내 생애 첫 위로를 받은 일 등 그럼 사사로운 감정들을 1차적 사회인 가정에서 처음 느끼고 흡수하며 하나하나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사랑과 공감 그리고 수많은 감정들이 부모님에 의해 파생되고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가정에서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게 된다. 발걸음을 때거나 말을 배우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위에 말했던 감정같은 것들도 가정에서 처음 배우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뇌과학자의 실험 결과가 생각이 난다. 뇌를 연구하는 것을 통해 사이코패스의 뇌에 대해 실험하던 사람인데 사이코패스의 확률이 가장 높게 나온 뇌가 바로 자신의 뇌었다는 사실를 결과로 받게 된다. 그리고 이 과학자는 자신이 이런 뇌를 가지고도 어떻게 이런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자랄 수 있었는지 알아보던 도중 가정에서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반대로 사이코패스가 아님에도 나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생각해보았다. 그런 사람들도 그 사람을 더 알아보면 마찬가지로 가정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보며 가장의 역할이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정말 크게 일조한다고 느꼈고 부모님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다. 무엇보다 이 시는 평범한 자연적 현상을 보며 배움을 얻는 ‘말하는 이’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이기에 이 시를 50년 후 부모님 무덤가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보내고 싶다.     

가장 최근 부모님의 사랑을 느낀 경험이 있는데 썸 관계를 유지하던 친구와의 관계를 깨고 후회가 되는 마음에 집으로 돌아오며 몇 년만에 많은 양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오열을 한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도 신경이 쓰였기에 눈물을 멈추고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린 후에 집으로 귀가했는데 그럼에도 마음이 나아지지가 않아서 혼자 베란다에 나가 재밌는 영상을 시청했다. 

일부러 더 밝게 행동하고 더 장난스럽게 굴었지만 엄마의 눈에는 티가 났는지 계속 무슨일이 있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더 이상 울지 않을 거라 다짐했기에 엄마에게는 아무 일도 없다고 거짓말을 쳤다. 하지만 자기 전에 엄마는 또 다시 나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리곤 내 눈에서 운 티가 난다고 말을 덧붙였다. 나를 평생을 지켜보고 키운 엄마 눈에 티나 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운 것이 맞다고 사실을 실토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부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략적으로 상황을 설명했다. 

엄마는 위로를 해주며 내 성격에 맞추어 현실적인 조언도 해주었다. 어쩌다 보니 부모님의 과거 연애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고민하던 일이 해결된 것도 아니었고, 당시 나의 상황이 부모님의 연애담이 크게 연관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 듣는 엄마의 전 애인 이야기를 듣게 되어 한편으로는 재미있었고 조금이라도 털어놓으니 마음이 전보다는 편해졌다.

무엇보다 엄마가 나의 세밀한 부분까지 눈치채고 알아봐준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때 나의 얼굴은 많이 추스린 후라서 다른 사람이 보았을 때 전혀 티가 나지 않았고 운 것을 인지하고 보았을 때 나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약간 티가 나는 정도였다. 그리고 그걸 알아차렸다고 한들 날마다 다른 내 얼굴 붓기이기에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갔을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기에 더욱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엄마가 여전히 나를 많이 사랑해서 그런 것들까지 놓치지 않고 봐주는 것이 눈에 보여 행복함을 느꼈다.     


중심을 제대로 잡아줄 사람

어버이날이나 학교에서 과제를 내주는 날이나 부모님 생신 때 등 부모님께 편지를 쓰게 되면 매번 들어가는 내용이 있다. 키워주셔서 감사하고 부모님 덕에 삐뚤지 않게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클 수 있었다는 내용을 항상 넣는데 정말 매번 써넣는 내용이지만 그런 이야기를 쓸 때면 매번 다른 감정으로 진심을 담아 쓰게 된다. 단지 글자 수를 채워넣기 위함이 아닌 진심이다. 

나의 지금까지의 삶은 평탄하고 평범하다. 밖에 나가서 실수는 해도 성격이 모났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고 그 부분에 관해서는 오히려 좋은 평을 듣는 편이다. 그리고 사람을 사귈 때도 좋은 사람들만 사귄다. 부처마냥 다 참고 넘어갈 순 없어 사람과 인간 대 인간으로 싸워본 적은 있지만 그걸로 인해 사람을 미워한 적도 거의 없고 모두를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편이다. 물론 간혹가다 이상한 사람을 만날 때도 어찌할 수 없게 있지만 그런 사람들과는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부러 그 사람을 욕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살다 보니 인생에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곤란해질 일은 없었다. 

나는 내가 어쩌다 이런 성향과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면 부모님의 역할이 크다고 장담한다. 사람은 내 편이 있다고 느끼면 안정감을 느끼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감정적으로만 굴게 되고 이성적인 판단이 잘 서지 않고 줏대 없이 남의 말에만 휘둘리게 된다. 중심을 제대로 잡아줄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그렇다면 그 역할을 누가 하느냐 하면 바로 부모님이다. 우리가 태어나 1차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학교가 아닌 가정이라고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중학교 교과서에도 나온다. 그만큼 중요하고 그 가정에서 어떻게 자아가 형성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삶을 살 수 있어 부모님께 굉장히 감사하고 앞으로 부모님에게 후회되지 않을 행동들을 하고 싶다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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