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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섭 Jul 05. 2023

더 밝은 아침이 찾아오지 않을까 쓸쓸히 혼자 별을 세어

최영미.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임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내가 고른 시는 최영미의 ‘선운사에서’이다. 이 시의 말하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시인 것 같다. “그대가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같은 구절을 보았을 때 이 말하는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라는 구절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자신과 멀어지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또한 떠나보낸 그 사람을 잊지 못해 괴로운 감정을 시에 담아낸 것 같다. 그래서 말하는 이가 생각한 사랑하는 사람을 부모님으로 느꼈다.      


사람이 죽는 것그것은 한 순간이다

 엄마가 나를 낳아주시고 부모님들이 힘들게 우릴 키워 우리가 마음을 열어 함께하는 시간까지 정말 오래 걸렸지만 죽음은 한 순간이고, 또한 부모님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과 부모님을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담은 것 같았다. 또 내가 이 시를 읽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시구는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이다. 사람이 죽는 것. 그것은 한 순간이다.

 우리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지금 당장에라도 죽을 수도 있다. 이에 ‘꽃이 지는 건 쉬워도’라는 구절은 죽음은 한 순간이다. 이별은 한 순간에 벌어진다. 라는 것을 표현한 것 같고,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은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우리 곁에는 안 계시지만 그 사고, 죽음에 대한 충격과 부모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이 속에서 어우러져 부모님을 잊기 힘들고 영영 못 잊는 다는 것을 표현한 것 같았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이 구절을 보니 더욱 마음이 울컥하고 코 끝이 찡해지는 느낌이었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보내고 싶어도 그 사람에게 절대 닿지 않을 것

 또 이 시를 읽다보니 생각난 노래가 있는데, 그 노래는 바로 세븐틴의 [좋겠다]이다. 이 노래를 떠올린 이유는 노래 가사 중 “그 사람에게 도착하지 않을 편지를 보내어보아요.” 라는 가사와 “더 밝은 아침이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생각하면서 쓸쓸히 혼자 별을 세어” 라는 가사가 있는데, 뜻하지 않게 내 옆은 아무도 없이 혼자이며, 그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어도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고, 보낼 수 없는 곳이라 도착하지 않는다는 가사이다. 이 가사가 어떻게 보면 상대가 죽어 혼자가 됐고 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싶어도 그 사람에게 절대 닿지 않을 것이라는 것 같았다. 또 사람이 죽으면 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처럼 그 사람이 죽어 하늘에 별이 되었고, 내 옆에는 아무도 없고, 혼자서 반짝이는 별이 되어버린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별을 센다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 노래가 생각이 났다. 

 이런 노래를 듣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거나 울컥할 때가 많은데 내가 골랐던 이 ‘선운사에서’라는 시도 나도 모르게 울컥하는 부분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점이 비슷하다고 느껴 더욱 이 노래가 생각이 났던 것 같다.      


마지막까지도 우리에게 웃는 모습을

 이 시를 부모님께 보내고 싶은 이유는 부모님들은 우리를 위해 청춘을 반납하며 갖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 이유가 우리를 사랑해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사랑에 한참 못 미치겠다마는 우리도 부모님을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다. 아직 돌아가실 나이는 되지 않았지만 사람의 미래는 우리가 감히 예상할 수 없으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리다. 이 시에서 “멀리서 웃는 그대여”라는 구절처럼 부모님이 마지막까지도 우리에게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고 매일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래서 보내드리고 싶다. 죽는다는 것을 상상하기도 싫고 마주하기 두렵지만 언젠간 마주쳐야하는 과제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도.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지금도 먼 미래에도 부모님의 사랑과 노력을 절대 잊지 않고 항상 곁에 있듯이 지내겠다는 마음이 전해졌으면 좋겠다.      


아빠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번에 아빠의 친척분께서 돌아가셔 장례식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아예 접점이 없는 분이지만 친척이 돌아가셨다니 슬펐다. 아빠가 절을 하러 들어가셨을 때 언니가 말을 해줬는데 절을 할 때 아빠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했다. 애써 조용히 울음을 참으시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이처럼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을 때에 그 좌절감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감히 상상이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 말이 있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죽어가는 것이라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죽음을 받아들이기 못마땅할 것 같다. 살아가고 있다는 말도 이해가 전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하기 때문에, 이별을 꼭 해야하기 때문에 살아간다기 보다는 죽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유튜브나 다른 SNS를 보다보면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조부모님을 떠나보내 슬픈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평소에 잘해드리지 못해 죄송하고 후회스럽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우면서도 있을 때 잘해야지. 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래서 부모님이 계실 때 잘 하자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부모님이 하시는 잔소리에 화가 나 꼬장을 부릴 때도 있고, 부모님의 말을 들은 체도 안 한다. 이렇게 우리는 부모님의 마음에 한 두 개씩 상처를 내고 있다. 그 상처가 부모님께 얼마나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르고,     


날 잊지 않았다는 마음에

부모님과는 별개로 요즘 사람들이 많이들 반려동물을 키운다. 나도 강아지를 키웠었다. 이름은 이랑이. 종은 셸티이다. 내가 어렸을 때 키우자고 해서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난 그 때 어린이집을 졸업하지도 않은 상태였고 책임감이 없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 다 키우셨다.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동물에 대한 마음과 책임감을 하나 둘 배워가며 이랑이를 돌보았다. 그렇지만 나에게 동생들이 생기면서 집이 좁아졌다. 털도 많이 날리고 아파트에서 키우다보니 힘들어졌다. 그래서 시골로 보내졌다. 우리가 아는 분들한테 가 가끔씩은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못 만난다. 이랑이도 너무 늙어버렸고 곧 죽을 나이가 되었다. 

시골로 보내고 첫날, 2층침대를 쓰던 나와 언니는 굳이 좁은 2층에 누워 같이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더 열심히 키워볼 걸, 우리가 똥오줌도 잘 치워줄 걸 이라며 울다가 잠에 들었다. 또 이랑이를 시골로 보내고 한참 지나서 이랑이를 보러 갔는데 나를 기억하는 것 마냥 나를 엄청나게 반겨줬다. 신나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나에게 매달리려 했다. 그 때 너무 감격스러웠다. 날 잊지 않았다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 너무 고마웠다. 지금도 이랑이 생각을 하면 울컥하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이랑이를 키우게 된 계기 그리고 이랑이를 처음 봤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시를 읽었을 때 이 생각도 같이 났나보다. 내가 이랑이를 너무 사랑했어서. 지금도 너무 사랑해서 생각이 났나보다. 너무 보고싶다.     


자신과 타인의 죽는 날을 알게 된다면?

 나의 부모님이 만약 돌아가신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불쌍한 눈초리를 받지 않도록 살 것이다. 부모님도 그걸 바라고 계시니까. 슬픔은 나의 가슴 한 켠에 차지하고 있겠지만. 티는 나더라도 나는 그래도 부모님이 날 계속 바라봐주실 거니까 괜찮다며 오히려 밝게 지내고 싶다. 뭐, 형제가 많아 나만 바라봐주실 수는 없을테지만 말이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의 죽는 날을 알게 된다면?‘ 이라는 생각을 한 번 해보았다. 타인은 잘 모르겠지만 나와 그리고 내 가족들의 죽는 날을 알고 싶지 않다. 시간이 많을 땐 괜찮겠지 싶다가도 죽는 날이 점점 다가오면 내 자신이 너무 피폐해질 것 같았다. 가족의 죽음을 바꾸려고 노력을 해봐도 운명은 운명이기에 내가 바꾸어도 결국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무덤가 앞에서 하고 싶은 말들]

 엄마 아빠. 저 둘째 딸 소윤이에요. 이런데 오고 싶지 않은데 살다보니 이렇게 와보네요. 두 분 돌아가시고 며칠 동안은 너무 힘들었어요. 살고 싶지도 않았고 살 이유도 없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을 조금 버티다 보니 엄마 아빠는 죽으셔서도 제 곁에 머물러계실거라고 생각하니 그나마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친구들도 만났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그 힘듦이 무색하게도 친구들과 얘기하다보니 괜찮아지는 것 같더라구요. 거기는 어떤 세상이에요? 설거지나 빨래도 없고 시끄러운 소리도 없는 곳은 어떤 것 같아요? 많이 편하긴 하겠지만 가끔씩은 시끄럽던 우리 집 많이 그리워해줬으면 좋겠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복작복작 하던 우리 집이 저도 많이 그립거든요. 저는 엄마 아빠 생각 진짜 많이 해요. 안 하고 싶어도 살다보면 엄마랑 아빠의 잔소리가 계속 머릿속에 들어오더라고요. 옛날에는 그게 얼마나 듣기 싫었던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들으라면 싫다고 손사래를 칠 것 같지만 엄마 잔소리가 지금은 엄청 그리워요. 많이 보고 싶어요. 꼭 우리 만나러 여행와요. 저도 빨리는 아니지만 천천히 여기 구경 조금만 더 하다가 만나러 갈게요. 정작 사랑한다는 말을 하진 못했지만 제가 많이 사랑하는 거 엄마 아빠도 알고 있죠? 저는 언제나 부모님이 알고 있는 밝고 명량한 둘째니까 많이 걱정하시지 않으셔도 돼요. 미안하고 사랑하고 감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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