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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섭 Nov 09. 2019

실패는 내가 노력했다는 증거잖아요

김은희-빛가람중-blog.naver.com/fordream1985

"애들아, 샘이 29권을 샀단다. 너희는 한 권만 사면 돼. 샘은 이제 옷 살 돈이 없다(웃음). 이 책 표지 봐봐. 이쁜 이 여자애가 슈퍼스타고, 옆에 친구가 그 절친이야. 그런데 학교 게시판 슈퍼스타 여학생 얼굴에 심한 낙서가 그려진거야. 범인이 누굴까? 반 친구들이 슈퍼스타의 절친을 의심해. 표지는 분홍분홍이지만 남학생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어.”

“애들아, 치킨을 일주일에 몇 번 먹니? 한 번? 두 번? 닭은 2종류가 있어. 고기를 먹는 닭과 알을 낳는 닭으로 나누어진 것은 알고 있니? 닭들은 a4 한 장 크기의 케이지에서 살아. 위층 닭이 배설을 하면 아래층 닭이 배설물을 맞고 있는 거야. 산란계 수평아리들은 산 채로 포대에 담아지거나 그라인더에 갈아진단다. 왜냐하면 수평아리를 안락사시키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이 책은 동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는지 말해주는 책이야.”

한 남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남학생은 운동을 매우 사랑하는 아이였다.

“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책을 다 사고 싶어지네요.”

본문 중에서...




1. 책중독자와 물꼬방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책은 『연오랑과 세오녀』이다. 집안 형편상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야 그림책을 많이 보았다. 바위에 올라탄 남자와 여자 그림이 생각난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차례로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고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사신들이 연오랑 세오녀 부부를 찾아가서 사정을 고하자 세오녀가 비단을 짜서 주었다. 신라에서는 비단을 제단에 바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다시 해와 달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이 글은 신비로운 느낌으로 기억에 남았다. 

다독상을 타고 싶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우리 반은 총 4명이었고 복식 수업을 하였다. 4명 중 나와 다른 남자애가 1, 2등을 번갈아 가며 했는데 남자애가 45권을 적어낸 것을 보았다. 집에서 내가 읽은 책을 기록해 보는데 권수가 더 적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얕은 꾀로 47권을 적어냈다. 상장에 적힌 47권이라는 숫자가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 이후로는 다시는 책 권수를 거짓말로 늘리지 않았다. 다독상은 초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 꾸준하게 받았다. 

독서량이 증가했던 시기가 초 6부터였다. 우리 집에는 셜록홈즈 계림문고판 시리즈가 있었다. 내 기억에 어느 집에서 얻어온 책이었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보통 한 권을 서너 번씩 읽었다. 『악마의 다이아몬드』, 『너도밤나무집의 비밀』, 『춤추는 인형의 비밀』, 『보헤미아의 왕비』 등이 생각난다. 셜록홈즈 시리즈 중에 몇 권이 없어서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못 읽었던 『사라진 지옥선』, 『삐뚤어진 입을 가진 사나이』 등을 황금가지 출판사 것으로 읽었다. 그 때는 홈즈를 '호움즈'라고 표기하였다. 그것도 특이했다. 사람들이 재미로 뤼팽과 홈즈 둘 중 한 명을 택하곤 하는데 나는 항상 홈즈 편이었다. 홈즈의 빛나는 지성을 사랑하였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큰댁에서 물려받은 계몽사문고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조디와 아기사슴』, 『비밀의 화원』, 『흰고래 모비딕』, 『대장 불리바』, 『삼총사』, 『아이반호우』, 『모히컨 족의 최후』, 『링컨』, 『포드』 등 이 책들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세계명작들이 나의 기본 소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시기에는 읍내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 때는 본인이 아니어도 가족 회원증으로도 빌릴 수 있었다. 아빠, 엄마, 나, 남동생 이렇게 4명 것으로 12권씩 빌려오는 날에는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나는 아빠가 즐겨보는 무협지마저 다 읽었다. 무협지에는 꼭 야한 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어린 마음에도 남자 주인공이 2명 이상의 여자들을 거느리는 것이 불편하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어떤 무협지는 남자 주인공이 14살이었다. 

도서관에 다니면서 『태백산맥』, 『토지』를 읽어나갔다. 학교 선생님 중 한 명이 태백산맥과 토지를 추천하셨고 선생님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나는 몹시 어려운 그 책들을 읽어 나갔다. 『태백산맥』을 『토지』보다 더 재미있게 읽었는데 4번은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김범우가 멋있어서, 두번째는 염상진이 멋있어서, 세번째는 심재모가 멋있어서, 네번째는 손승호가 마음에 들어서 읽었다. 나중에 대학생이 되어 조정래 작가님에게 사인을 받을 때 자랑스럽게 4번 읽었다고 말씀 드린 것은 뿌듯한 추억이다. 

고등학생 때는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러시아 문학을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읽어나갔다. 아직도 기억나는 한 장면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고 한국교원대에서 독서 면접을 봤던 기억이다. 그때도 나는 교수님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어려운 책을 읽었다고 말했는데 최근에 2번째로 읽으면서 얼마나 얕게 읽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독서는 주로 재미 위주였다. 로맨스와 판타지를 읽다가 죄책감이 들면 교과서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한국문학작품이나, 세계 명작들을 읽는 식이었다. 완성도 높은 문학 작품들의 재미를 느끼게 된 것은 솔직히 고백하건데 교사가 되고 나서였다. 국어 선생님들과 교류하면서 김중혁, 김애란, 최은영, 황정은, 구병모, 이기호, 은유, 정혜윤 등 매력적인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인문 사회 분야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읽고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4천원 인생』, 『벼랑에 선 사람들』, 『인간의 조건』,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달빛 노동 찾기』 등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만화책도 읽기 시작했다.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 『평등은 개뿔』, 『까대기』 등 주옥같은 만화들을 만났다. 

중학생 시절 내 소원은 책으로 가득한 창고 3개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런 내가 책을 읽는 것은 너무나 쉽고 재미있는 일이다. 책을 읽는 것은 나에게 취미이자 생활이니까 그렇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나아가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은 더 고난이도 활동이었다. 2015년 아직도 기억하는 한 남학생은 만화 삼국지로 독후감 3편을 얼렁뚱땅 써서 제출하였다. 본인은 줄글을 절대 못 읽는다고 하였다. 2019년에 만난 또 다른 남학생은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 이해가 안 돼. 어떻게 책이 재미있어? 게임은 재미있기라도 하지?”

이런 말을 하였다. 

학생들은 책이란 재미없는 것, 독후감은 억지로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나도 한 학기 한 권 읽기에 대한 마음의 장벽이 생겨났다.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한 권을 어떻게 다 읽지?” , “단편도 제대로 못 읽는데 장편이 가능할까?”, “교과서 내용은 언제 다 가르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들을 2011년부터 물꼬방을 통해 하나하나 느리게 배우기 시작했고 실천해 보았다. 선생님들의 수업 사례를 듣는 것과 내가 수업하는 것은 성취 측면에서 많이 차이가 났다. 결과물은 미약했지만 수업 과정 속에서 나는 재미와 보람을 동시에 느꼈다. 

2016년에는 정규 수업 시간에 단편소설 읽기를 했고 2017년부터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시도했다. 2017년에는 학교 도서관 책을 이용하여 모둠별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활동을 하였다. 그때는 사회 문제를 다룬 책으로 한정하여 목록에서 책을 고르게 했더니 아이들이 힘들어하였다. 2019년에는 학교를 옮기면서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29권의 목록 중에서 모둠별로 한 권을 선정하고 각자 사게 하였다. 새로운 학기를 시작하기 전 2월 나는 『나의 책읽기 수업』, 『한 학기 한 권 읽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어떻게 할까』를 정독하였다.                           



2. 중2와 함께하는 서평쓰기 

가. 빛가람중 2학년 국어과 평가계획             



1) 한 학기 한 권 읽기 안내

올해 학군이 좋다는 소문의 학교로 옮겼다. 나는 중학교 2학년 7개 반을 주당 2시간씩 들어가고 담임 및 동아리를 맡게 되었다. 교사와 학생이 처음 만나는 3월이 참 좋다. 학생들은 정말 집중해서 교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3월 첫 시간 서평 쓰기 활동을 위하여 책 구입 안내를 하였다.

2월에 준비한 책 29권을 책 수레에 싣고 교실마다 책장수처럼 홍보를 하였다.   

“애들아, 샘이 29권을 샀단다. 너희는 한 권만 사면 돼. 샘은 이제 옷 살 돈이 없다(웃음). 이 책 표지 봐봐. 이쁜 이 여자애가 슈퍼스타고, 옆에 친구가 그 절친이야. 그런데 학교 게시판 슈퍼스타 여학생 얼굴에 심한 낙서가 그려진거야. 범인이 누굴까? 반 친구들이 슈퍼스타의 절친을 의심해. 표지는 분홍분홍이지만 남학생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어.”

“애들아, 치킨을 일주일에 몇 번 먹니? 한 번? 두 번? 닭은 2종류가 있어. 고기를 먹는 닭과 알을 낳는 닭으로 나누어진 것은 알고 있니? 닭들은 a4 한 장 크기의 케이지에서 살아. 위층 닭이 배설을 하면 아래층 닭이 배설물을 맞고 있는 거야. 산란계 수평아리들은 산 채로 포대에 담아지거나 그라인더에 갈아진단다. 왜냐하면 수평아리를 안락사시키는 비용이 많이 드니까. 이 책은 동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라나는지 말해주는 책이야.”

한 남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남학생은 운동을 매우 사랑하는 아이였다. 

“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책을 다 사고 싶어지네요.”

나에게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2월 학군이 좋다는 소문을 듣고는 책 목록을 별 1개 ~ 별 3개까지 준비했다. 대부분은 서울 삼정중 이민수 선생님의 목록이고 몇 권만 내가 추가했다. 겨울 방학 때 동물권에 관한 책을 열심히 읽어서 열정적으로 책을 소개했다. 학생들이 관심을 많이 보였지만 책 두께를 보고 포기하였다. 『고기로 태어나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아무튼 비건』 등이 그렇다. 『아무튼 비건』은 한 남학생이 집어서 조금 살펴보더니 대번에 어렵다고 포기하였다. 

결국 아이들에게 모둠별로 1권을 고르되 성장 소설 위주로 고르게 유도하였다. 모둠끼리 겹치는 책들은 가위바위보를 통하여 송승훈 선생님의 방식대로 이긴 팀이 양보하게 하였다. 이 방식을 아이들은 신선하게 받아들였다. 

『치타소녀와 좀비 소년』, 『해리엇』, 『축하해』, 『두근두근 백화점』, 『의자뺏기』, 『내 친구는 슈퍼스타』, 『두근두근 체인지』, 『사춘기라서 그래』, 『휴대폰 전쟁』, 『아몬드』, 『z 캠프』, 『저스트 어 모멘트』, 『오월의 달리기』 순으로 선호하였다.      

2) 한 학기 한 권 읽기 진행

3주간의 준비 시간 이후 책을 4시간에 걸쳐 읽었다. 반별로 24명 중 15명 ~ 20명이 책을 샀다. 학군의 덕을 본 셈이다. 해프닝도 있었다. 『축하해』를 사려고 한 남학생이 아빠에게 책 설명을 하자 아빠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남학생은 아빠에게 정직하게 책 설명을 하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좋은 서평을 써냈다. 책을 못 산 친구들은 내 책을 빌려 읽었다. 내가 목록의 책들을 1권씩 소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완독한 학생들의 비율은 보통 24명 중 12~18명이었다. 두근두근 시리즈를 고른 아이들이 끝까지 못 읽었다. 

서평학습지를 2시간에 걸쳐서 쓰게 하였다. 서평학습지는 서울오디세이학교 송동철 선생님의 자료를 이용하였다. 학습지 활동 중에서 아이들이 어려워 한 것은 자기 경험 쓰기와 관련 있는 세상일 찾기였다. 학생들은 직접 경험한 것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본 내용을 쓰거나 친구한테 들은 내용을 써도 좋다고 안내하였다. 

별점 주기 항목은 학생들이 더 쉽게 이해하고 수행하였다. 나는 학습지를 하다가 헤매는 아이들을 보면서 작가 소개는 짧게 써도 좋다고 안내하였다. 서평 학습지를 꽉꽉 채우면 A4 2쪽(13 포인트 분량)의 글이 나온다. 

컴퓨터실에 가서 2시간에 걸쳐 타이핑을 하였다. 내가 가르치는 중학생들은 대체로 타자가 느리다. 2시간 안에 완성한 친구들은 한 반 24명 중 절반 정도였다. 컴퓨터실 컴퓨터는 한글프로그램만 실행해도 윙윙 소리를 내며 거칠게 반응하였다. 완성한 글은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게 하거나 내 메일로 보내라고 하였다. 메일을 보내줄 모르는 학생들은 내 usb에 글을 저장하였다. 

고쳐쓰기를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하고 행사로 가득한 5월이 왔다. 학생 서평 중 인상적인 작품 2편을 글 마지막에 실었다. 

학생 서평들을 읽다 보니 내 생각보다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은 경우가 많았다.             

 나는 『내 친구는 슈퍼스타』라는 책을 읽기 전에 과연 이 책은 요즘 학교 생활의 모습과 비슷한                        내용이 나왔을지 기대를 했고 책 표지의 분홍색이 굉장히 멋져서 골라보았다. -이시○(2-7)





아까 말했듯이 나는 『두근두근 백화점』을 읽기 전에는 정말 책을 읽지 않았다. 책을 강제로 읽을 때도 책을 건성건성 읽었고, 내가 읽고 싶어서 읽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 여러 가지를 깨달았다. 내가 너무 고정관념에 박혀있다는 부분과 책 중에도 나와 맞는 재미있는 책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에는 끝도 없는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이 존재하고 내가 상상도 못하고 이야기들이 정말 창의적 펼쳐 있었다. 나는 평소 무언가는 안 된다고 고집이 있어 완벽만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창의성이 나를 다시 되살려주었다.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다시 소설책들을 읽고 싶어졌다. -배윤○(2-7)





책을 읽으면 마음에 드는 장면이나 글귀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축하해』은 따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없었다. 책의 내용이 처참하기 때문이다. 전부 안쓰럽게 봐야할 분들이다. 이 책을 본 후 나는 성매매 여성들을 흥밋거리로 여겨왔던 대한민국 남성들이 한심하다. 성매매 여성들이 업소를 나와서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여성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 것이 멋지다. 사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것이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감사하다. -이준○(2-4)





사실 『치타 소녀와 좀비소년』을 읽기 전에는 학교를 안 다니고 그냥 떠돌아다니는 학생들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었다. 인생을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이유가 없는 행동은 없구나 하는 걸 느꼈다. - 김서○(2-2)




3. 헬렌올로이, 4:4 찬반토론 



나. 수업 흐름

헬렌 올로이를 낭독해서 읽었다. 그리고 마인드맵으로 인물들을 정리하면서 간단히 줄거리를 이야기하였다. 헬렌 올로이 소설 수준이 참 어렵다는 것을 이때 깨닫는다. 낭독할 때는 집중을 안하던 친구들이 갑자기 “선생님, 데이브랑 헬렌이 결혼해요? 헬렌이 죽는다고 그래요? 필도 헬렌을 좋아했나요?” 하면서 뒤늦게 놀란다. 정말 24명이 수업 시간에 모두 집중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토론 모둠을 편성하였다. 기본적으로 뽑기를 통해서 국어 모둠을 만든다. 남2, 여2 비율을 맞추는 편이다. 단, 교내토론대회에 참여할 만큼 역량이 있는 친구들이 한 조에 몰렸을 경우(우리 반의 경우) 조장 역할을 맡기고 모둠을 재편성하였다. 

모둠은 4명을 기본으로 하되 한 반에 23명인 경우 어쩔 수 없이 능력이 뛰어난 친구에게 두 역할을 같이 겸하도록 하였다. 모둠에서 활발하고 순발력 좋은 친구들이 2, 3번을 맡도록 유도하고 부끄러움이 많거나 말하기를 꺼리는 친구에게 1, 4번을 맡게 하였다. 나중에 들어보니 부끄러움 많은 친구들은 입론이나 마무리를 맡는 것만으로도 떨렸다고 한다.             

제1토론자




토론 논제를 안내하였다. 기말고사까지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 논제를 물꼬방 밴드에서 자료 검색을 하고 내가 정하였다.      

논제 1. 헬렌의 사랑은 진짜다

논제 2.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을 개발해야 한다     

원래 논제 2는 “감정이 있는 인공지능로봇을 개발해야 한다.”였다. 수석 선생님께서 ‘감정’보다는 ‘자아’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겠다고 조언해주셔서 바꾸었다. 

가위바위보를 통해 이긴 팀이 양보하는 식으로 논제도 정하고, 찬반도 정하였다. 보통 논제 1을 두 모둠이 다루고, 논제 2를 네 모둠이 다루는 식이다. 1시간에 두 모둠씩 토론하므로 실제 토론 시간은 3차시이다. 

사회자 대본이 있으므로 그때그때마다 사회자를 바꾸어서 쓴다. 세다 토론이나 디베이트 토론은 반론이 중요하지만, 토론 경험이 거의 없는 아이들에게 즉석에서 반론을 만드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질문-답변으로 바꾸어서 진행하였다. 한 팀당 우리 팀의 질문, 상대방이 질문할 내용 등을 각각 4가지씩은 준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1, 4번 토론자도 질문-답변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였다. 

토론 주간에 내가 동교과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공개하게 되었다. 공개수업 전날 처음 해본 2모둠 3모둠이 너무 준비가 부실하여 실망하였다. 그리고 청중 학생들은 엄청 떠들었다. 공개수업 당일은 1모둠과 4모둠 차례였다. 논제는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로봇을 개발해야 한다. ”였다. 국어 선생님이 다섯 분이 오시니까 갑자기 아이들이 연기를 하였다. 떠들던 녀석들이 떠들지 않았다. 그리고 모범생 역할에 빙의하여 훌륭한 질문들을 쏟아냈다. 귀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속으로 엄청 웃었다.

공개 토론을 한 1모둠과 4모둠은 자료조사가 훌륭하였다. 역시 세○이와 윤○이, 정○이가 큰 역할을 하였다. 청중에서는 관○와 서○이가 자발적으로 질문을 많이 하였다. 관○는 본인 토론은 준비가 부족해서 헤매더니 다른 모둠 토론 때는 논리적인 질문들을 하였다. 

내가 강압적으로 의견을 발표하라고 한 친구들이 있었다. 아주 조용하거나 아주 시끄러운 녀석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핸드마이크는 공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목소리가 작은 친구들을 배려하기 위하여 의무적으로 모두 쓰게 하였다.

찬성팀이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로봇이 인간을 위협할 경우를 묻는 반대팀 질문에 잘못 답하였다.“로봇의 3원칙처럼 인간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로봇 프로그램 안에 제한을 하자.”라고 답변하여 찬성팀의 입지를 스스로 약화시켰다. 그러자 청중 유○이 자아가 있는 로봇을 프로그램 설정을 통하여 통제한다면 노예에 해당되지 않느냐는 질문으로 감탄을 자아냈다.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을 개발해야 한다.”라는 논제로 다른 반도 토론을 하였다. 토론을 얼마만큼 성실하게 준비하느냐에 따라서 토론의 승패가 갈렸다. 

쟁점은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을 인간과 동등한 관계로 볼 것이냐, 인간을 돕는 존재로만 볼 것이냐였다. 찬성팀 아이들 중 이 부분을 진지하게 고민한 팀은 14개 팀 중 1팀 정도였다. 그 팀만 로봇의 “5•18 민주화 운동” 등을 예로 들어 깊이 있게 나아갔다.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 볼 주제였다.

“헬렌의 사랑은 진짜다.”라는 논제로 여러 반들이 토론을 하였다. 이것은 소설이 누가 더 꼼꼼하게 읽었는지에 따라서 토론의 승패가 갈렸다. 흥미로운 점은 헬렌이 죽음을 선택한 점도 드라마를 보고 행동만 따라한 역할놀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헬렌에게 사랑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의 분비물을 넣지 않았다.” 라는 부분도 해석이 다르게 나타났다. 

나는 토론수업을 하면 논제에 집중하여 자기 의견을 나름대로 전개하는 아이들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평소 수업 시간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아이들도 토론 수업 때는 1인 1역할 제도 때문에 마이크를 잡고 발표를 한다. 마이크를 들고 신기해 하거나, 귀가 빨개지면서 열심히 원고를 발표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2017년에는 모든 팀마다 논제를 다르게 해서 토론했다. 올해는 수석 선생님 조언대로 한 논제를 2시간 연속 토론하니 아이들의 이해가 깊어지는 걸 느꼈다.                                                                                             

토른 전개 







 입론 


1. 헬렌 올로이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


2. 헬렌 올로이는 데이브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였다.


3. 헬렌 올로이는 감정이 있는 인공지능로봇이다.




입론


1. 헬렌은 기계 부품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래밍된 존재이다.


2. 로봇이 인간과 닮으면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관계에서 사랑은 불가능하다.


   예: 골짜기 효과


3. 살아있는 생명체만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반대측이 찬성측에게


Q. 드라마를 보고 학습한 사랑은 가짜가 아닌가요?


A. 학습된 사랑도 진짜입니다. 우리 인간도 자라면서 감정을 배우듯이 헬렌올로이도 텔레비전드라마와 책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웠습니다. 


Q. 인공지능로봇과 인간이 과연 대등하게 서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A. 헬렌처럼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이라면 서로 공존하고 사랑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사랑은 아주 복잡한 감정입니다. 이것을 로봇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헬렌은 자아가 있어서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인간이 인공지능로봇과 결혼한다면 출산을 하지 않을 테고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답변해주세요.


A. 인간이 인공지능로봇과 결혼을 했다는 것은 같은 인간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가 반영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인공지능로봇을 만나지 않는다면 혼자서 살 가능성도 높습니다. 




찬성측이 반대측에게 


Q. 헬렌이 죽음을 택한 것을 보면 사랑이 증명된 게 아닐까요?


A. 드라마를 보고 행동만 따라한 것입니다. 


Q. 소설에서 헬렌에게 사랑을 느끼는 분비물을 넣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즉, 프로그래밍 결과가 아니라 진짜 감정이라는 뜻이지요.


A. 사랑을 느끼는 분비물이나 호르몬을 넣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사랑을 할 때 느끼는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헬렌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Q. 헬렌이 데이브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것으로 사랑이 증명되지 않습니까? 인간이 사랑에 빠졌을 때 하는 행동과 같습니다.


A. 인공지능과 결혼한 일본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인공지능은 아직 프로그램 단계라고 합니다. 인공지능로봇이 인간처럼 사랑을 느끼는 것은 가능하다 해도 머나먼 미래의 일입니다. 



2017년에는 모든 팀마다 논제를 다르게 해서 토론했다. 올해는 수석 선생님 조언대로 한 논제를 2시간 연속 토론하니 아이들의 이해가 깊어지는 걸 느꼈다.                                                                                             

토른 전개 





 입론 


1. 헬렌 올로이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였다.


2. 헬렌 올로이는 데이브에게 끊임없이 사랑을 표현하였다.


3. 헬렌 올로이는 감정이 있는 인공지능로봇이다.




입론


1. 헬렌은 기계 부품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래밍된 존재이다.


2. 로봇이 인간과 닮으면 인간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관계에서 사랑은 불가능하다.


   예: 골짜기 효과


3. 살아있는 생명체만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반대측이 찬성측에게


Q. 드라마를 보고 학습한 사랑은 가짜가 아닌가요?


A. 학습된 사랑도 진짜입니다. 우리 인간도 자라면서 감정을 배우듯이 헬렌올로이도 텔레비전드라마와 책을 통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웠습니다. 


Q. 인공지능로봇과 인간이 과연 대등하게 서로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A. 헬렌처럼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이라면 서로 공존하고 사랑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사랑은 아주 복잡한 감정입니다. 이것을 로봇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A. 헬렌은 자아가 있어서 인간처럼 생각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인간이 인공지능로봇과 결혼한다면 출산을 하지 않을 테고 사회 구성원을 재생산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답변해주세요.


A. 인간이 인공지능로봇과 결혼을 했다는 것은 같은 인간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가 반영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인공지능로봇을 만나지 않는다면 혼자서 살 가능성도 높습니다. 




찬성측이 반대측에게 


Q. 헬렌이 죽음을 택한 것을 보면 사랑이 증명된 게 아닐까요?


A. 드라마를 보고 행동만 따라한 것입니다. 


Q. 소설에서 헬렌에게 사랑을 느끼는 분비물을 넣지 않았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즉, 프로그래밍 결과가 아니라 진짜 감정이라는 뜻이지요.


A. 사랑을 느끼는 분비물이나 호르몬을 넣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사랑을 할 때 느끼는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즉, 헬렌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Q. 헬렌이 데이브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것으로 사랑이 증명되지 않습니까? 인간이 사랑에 빠졌을 때 하는 행동과 같습니다.


A. 인공지능과 결혼한 일본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인공지능은 아직 프로그램 단계라고 합니다. 인공지능로봇이 인간처럼 사랑을 느끼는 것은 가능하다 해도 머나먼 미래의 일입니다. 




 입론


 1. 로봇은 인간과 같은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2. 로봇이 인간의 위험한 일을 대신할 수 있다.


 3. 로봇이 일을 많이 해줌으로써 인간의 삶의 질이 높아진다.




입론


1.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로봇은 인간을 위협할 수 있다.


2.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로봇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것이다.


3. 자아를 지닌 인공지능로봇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찬성측이 반대측에게


Q. 로봇을 통제 못하여서 인간을 공격하는 일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도 똑같이 위험한 일을 하지 않느냐?


A. 자아가 있는 로봇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다. 우리 인간이 통제를 못한다.


Q.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여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A. 인간보다 로봇이 뛰어나다면 로봇은 법과 제도를 그들을 위해 제정할 수 있다.


Q. 로봇이 자아를 가진다면 그로 인해 독거노인, 1인 가구에게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다. 


A. 독거 노인, 1인 가구에게 동반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인간이다.




반대측이 찬성측에게 


Q. 자아가 있는 로봇이 위험한 일을 대신해준다고 했는데, 자아가 없어도 이미 인간을 돕는 로봇이 있다. 예를 들면 군사용 도마뱀 로봇.


A. 선생님, 상담사 같은 경우는 자아가 필요하다.


Q. 인공지능로봇이 범죄를 지지르면 어떻게 할 것이냐?


A. 인공지능로봇은 자아를 가지고 있으므로 윤리를 학습하여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Q.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은 분명 가격이 비쌀 것이다. 새로운 빈부 격차가 나타나지 않겠느냐?


A. 국가에서 저소득층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 그처럼 독거노인이나 1인가구에게 지원을 해주면 된다.



인상적인 청중 질문

Q.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이 인간을 돕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난다면?

Q.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이 그들만의 세계를 건설한다면?

Q.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깨뜨린다면?

Q. 자아가 있는 인공지능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많이 대체한다면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4. 그림책 읽어주기

1) 그림책을 고른 이유

2017년 나는 임신을 하였다. 원래 책을 종종 샀지만 태교를 위해 더 많이 책을 구입하기 시작했다. 주로 페미니즘 책을 사고 한두 권씩 그림책을 장바구니에 끼워 넣었다. 전부터 속독을 하느라 놓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림책은 내가 책을 천천히 보게 만들 것 같았다. 또 물꼬방 선생님들이 학습 만화보다는 그림책이 독서능력이 낮은 학생들에게 큰 효과를 준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물꼬방 밴드에서 본 그림책 목록들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창비나 문학동네 블로그에서 소개하는 그림책을 보았다. 초등학교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선생님의 블로그를 이웃추가하고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올해 에듀니티 행복한 연수원에서 그림책 연수를 들었다. 여기에서 추천하는 책 목록들도 메모하였다. 그림책이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림만 있는 책, 그림과 글의 비중이 같은 책, 한 작가가 그림과 글을 모두 창작한 책, 글씨만 있는 책까지도 있었다. 일단 예쁜 그림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동물을 좋아하는 내 성향과 그림책이 잘 맞기도 하였다. 앤서니 브라운, 존 버닝햄,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백희나, 최숙희, 피터 레이놀즈 등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책들은 실패하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다루고 싶은 작품들이 많은데 수행평가를 수업시간에 많이 해서 읽어줄 시간이 부족했다.     


『감기 걸린 물고기』는 외부의 거짓 소문에 공동체가 흔들리고, 그로 인해 이득을 취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그림으로 형상화 했다. 우리 사회를 잘 풍자해서 재미있었다. 

『절대 보지 마세요 절대 듣지 마세요』는 변선진 학생의 유작이다. 어른들이 진짜 중요한 것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표정한 어른의 얼굴, 아빠의 고함소리, 아무리 이야기해도 믿어주지 않을 때 느끼는 막막함 등이 아이들을 가슴 아프게 한다는 내용이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그림책 연수에서 흥미롭게 들었다. 엄마에게 혼난 아이가 상상의 나라에서 괴물들과 즐겁게 논다. 마지막에 아이는 엄마가 있는 현실 세계로 즐겁게 돌아온다.

『엄마의 선물』은 내가 올해 이 학교에 와서 선물 받은 책이다. 입체 그림책이라 아이들이 어마어마하게 집중한다. 부모님의 사랑이 아주 잘 표현되어 있다. 

『내가 가장 슬플 때』는 아이를 잃은 남자의 이야기이다. 세월호 계기 수업을 할 때 한 반에서 읽어주었다.

『실수투성이 엄마아빠지만 너를 사랑해』, 『딸에게 보내는 노래』 등 가족에 관한 책은 모두 5월에 읽어주었다. 아이들과 태어날 때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었는지 각자 이야기하고, 어린 시절 유난히 많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이나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등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개다』는 베스트셀러 그림책 작가 백희나의 신작이다. 아이들이 아주 즐겁게 그림책 이야기를 들었다.

『수박 수영장』은 날이 더운 6월에 읽었다. 담임인 나와 격의 없이 지내는 우리 반 아이들은 수박 수영장은 “더럽다, 수박에서 수영을 한다니 말이 안 된다” 이렇게 딴지를 걸었다(평소에는 화기애애합니다). 그래서 훈훈한 그림책의 의도에서 벗어나서 나는 아이들과 유전자조작으로 수박을 얼마나 크게 만들 수 있는지 입씨름을 하였다. 책을 샀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못 읽어준 책들이 있다. 『엄마 마중』,  『강이』, 『아이스크림이 꽁꽁』, 『사유미네 포도』, 『꽃할머니』, 『큰다는 건』 등이다.      

3)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람

나는 목소리가 예쁜 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내가 읽어주기로 하였다. 목소리를 크게 해서 읽어야 하고 그림책 중간 중간에는 적당히 문장 간격을 띄워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5월 들어서는 아이들에게 추천을 받아 학생들에게 읽게 하였다. 아이들은 목소리가 좋고 전달력 있는 친구들을 추천하였다. 아이들도 친구들 앞에서 책을 읽어주는 경험이 누적되어야 더 잘 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5. 반성과 계획 

어느덧 1학기가 끝나가고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중학생들과 지내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수업을 하고 공강 시간에 수업 준비를 하고, 틈틈이 학생들의 소소한 민원을 처리하고, 가끔 학생들의 충돌을 중재하고, 교직원 연수에 참여하고 시간을 쪼개 책을 읽는다. 

가득 쌓인 서평 글을 읽으면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려본다. 164명이라는 숫자에 가려져 있던 아이들이 글에서 생생하게 살아난다. 물론, 가끔 한숨도 나온다. 이 아이는 책을 제대로 안 읽고 딴 짓을 했었지 기억을 떠올린다. 

1학기 서평 쓰기 수업을 하면서 시수 부족으로 고쳐쓰기를 지도하지 못한 게 제일 아쉽다. 토론 수업은 내가 기대한 만큼 딱 그만큼 이루어져서 만족스럽다. 그림책은 정말 맛보기로 접근만 하여서 2학기에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준비해야겠다. 

2학기에는 진로 독서를 할 계획이다. 물꼬방 구본희 선생님, 박유미 선생님의 인생 독서 원고를 읽고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교과서 단원은 최소한으로 줄여서 가르칠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게 나는 독서 교육을 할 때 가장 신이 난다. 교과서 글은 대체로 가르칠 때 재미가 없고 학습 활동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면 지루하다. 

사실 내가 다시 하고 싶은 것은 2017년 사회문제를 다룬 책 대화하기 수업이다. 나는 노동자의 권리, 장애인의 권리 난민의 인권, 동물권, 페미니즘, 학벌주의 문제 등 관심이 다양하다. 이런 분야의 책을 읽어나가면 한 개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마음이 답답해져 누군가와 함께 해답을 찾고 싶다. 특히 일부 중학생들이 평상시 쉽게 여성혐오, 장애인 혐오,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내뱉거나 외모와 성적으로 친구를 차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쪽 부분을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고 싶다. 이것은 내년 1학기 수업에 다룰 계획이다. 

1학기 수업을 곰곰이 떠올리다 침울했는데 ‘책읽아웃’ 팟캐스트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실수는 내가 노력했다는 증거잖아요.”

이 말을 바꾸어서 내가 했던 실패는 노력의 또다른 이름이라고 되뇌어 본다. 2학기에는 좀 더 낫고 내년에는 더 나은 수업을 꾸리길 바란다.  

“몸도 마음도 파손주의입니다.”

최근에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 『까대기』에서 나온 명대사이다. 하루를 살아가는 일이 교사도 학생도 쉽지 않다고 본다. 반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떤 아이들은 내가 부럽다고 말한다. 

“선생님은 퇴근하면 쉴 수 있잖아요.”

물론 나도 퇴근하면 육아 시작이라 쉴 수 없지만 학원으로 직행하는 아이들보다는 내가 낫다. 이 아이들은 하루를 어떻게 버텨낼까. 학교에서 조금 더 재미있고 의미있는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삶을 돌아보기를 바라본다.       

참고문헌

송승훈(2019), 『나의 책 읽기 수업』, 나무연필

김주환, 구본희, 이정요, 송동철, 『한 학기 한 권 읽기 어떻게 할까?』, 북멘토

송승훈, 하고운, 김진영, 임영환, 김현민, 김영란, 『한 학기 한 권 읽기』, 서해문집

경기도중등독서교육연구회 교사모임,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2』,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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