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쇼핑

by 김병섭

피부 밖엔 남지 않은, 푹 꺼진 눈과 얼굴. 툭 불거진 갈비뼈와 관절이 튀어나온 깡마르고 긴 팔다리. 허리를 이상한 각도로 휘감은 꺽인 팔과 손가락들. 요즘 인터넷 쇼핑을 할 때 가장 많이 보이는 몸이다. 어떤 옷도 훌렁훌렁하고 박시해 보인다. 글로벌 브랜드, 다양한 사람들을 위한 옷을 만드는 브랜드라고 고아고하면서, 이상할 정도로 마른 모델들을 등장시킨다. 소비자인 우리는, 그런 몸들에 입혀진 옷을 보면서 어떤 형태와 핏을 가진 것인지 전혀 유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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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전 어떤 온라인 쇼핑몰에서 마르고 긴 다리에 입혀진 홀랑홀랑한 디스코 바지를 샀다. 근데 웬걸,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도착한 바지는 타이트한 스키니진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안대를 쓰고 옷을 사는 것과 다른가? 블라인드 쇼핑이다. 올라와 있는 옷 사진들을 보고 어떤 옷인지 가늠을 할 수 있어야 그걸 사든지 말든지 할텐데, 그런 깡마른 몸에 입혀진 옷들에서는 아무런 정보를 찾을 수가 없다. 과연 그 스키니진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는 사람들이 그 옷을 디스코 바지처럼 입어주길 바랬을까?


요즘은 빅사이즈 모델, 일반적인 정상 체형 체중의 몸을 가진 모델들을 쓰는 것이 추세라고 생각했다. 많은 스포츠 브랜드들과 다른 여러 패션 브랜드들의 인터넷 쇼핑몰과 공식 사이트에 쓰이는 모델들은 건강해 보여서 좋기도 하지만, 소비자가 옷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고 고를 수 있는 메뉴판이 되어준다. 그런데 다른 몇몇 패션 브랜드들은 인터넷 쇼핑몰에 아직도 뼈와 피부 밖에 없어 보이는 깡마른 몸의 사람들만 모델로 쓴다.


앞으로는 불쌍할 정도로 말라서 거기에 입혀진 옷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해주지 못하는 몸들이 아니라 디자이너들이 옷을 구상하며 사람들의 몸에 걸쳐졌을 때 어떤 느낌과 형태가 나올 지 생각했던 것을 충분히 표현해 줄 수 있는 몸들이 옷의 모델로 쓰여졌으면 좋겠다. 안대를 쓰고 더듬거리고 허우적거리며 하는 블라인드 쇼핑,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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