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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깐 KKan May 07. 2017

최고의 점심식사

교토역 - 아라시야마 - 오츠카 - 치쿠린

사흘째 아침은 교토역에서 출발. 아라시야마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호텔에서 역까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우리는 교토 1일 버스권을 미리 구입해서 하루에 한 장씩 사용했다. 버스권으로는 교토 시영버스를 자유롭게 탈 수 있다. 교토 시내는 걱정 없었지만 아라시야마는 거리가 좀 먼 곳이라 추가 요금을 어떻게 내야 하나 고민했다. 다행히 몇 해전부터 아라시야마까지 시영버스 기본요금 구간으로 확장됐다고 한다. 아라시야마에 가는 버스가 다수 있는 듯한데, 우리는 26번 버스를 탑승했다. 교토는 버스 시스템이 잘 짜여 있는 것 같았다. 승하차의 구조도 굉장히 체계적인 느낌. 하차 시 요금을 내고 정산하는 방식도 새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이용하는지 승객의 상당수가 노년층이나 관광객이었고, 버스가 전반적으로 작아 비좁다는 게 흠이긴 했다.





4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아라시야마. 도게츠교를 건너기 전에 대부분 하차했지만, 우린 조금 더 들어가서 내리기로 했다. 일전에 와 본 경험과 당장 눈으로 보이는 인파를 고려할 때 버스 안에서 봐도 충분하단 생각에서였다. 사실 목적은 관광이 아니라 교토 1위 맛집이라고 소문난 "오츠카(Otsuka)"를 찾아가는 것이기 때문. 처음엔 이렇게 먹으러 열심히 다닐 계획이 아니었는데, 바닥난 체력에 관광지들에 감흥을 잃고 나니 먹는 것만 유일한 목적으로 남게 되더라. 식당을 찾아가는 골목길, 귀여운 할아버지와 손녀도 만나고 예쁜 정원의 집도 만났다.





워낙 소문난 집이라 오픈 시각보다 최소 30분은 일찍 가야겠다고 합의를 보고, 서둘러 도착했다. 그런데 웬 걸, 가게 앞 대기석에 족히 30명은 앉아 있었다. 대기명단을 보니 이미 2열로 적힌 이름이 한 장을 넘어가 있었다. 12시에 시작한다고 기억했는데, 11시 오픈이었던 것. 오후 2시 반이면 마지막 오더를 받는 집이지만, 재료가 다 떨어져도 문을 닫는다고 들었다. 조마조마하며 이름을 적고 기다렸다. 둘러보고 오기에도 위치가 애매해서 수다도 떨고 페이스북도 보며 1시간을 흘려보냈다. 그제야 내 이름이 불렸다. 



자리에 앉자마자 미리 정한 '로스트 비프'와 '쇼트 플레이트 비프'를 주문했다. 맥주는 많이 마셨으니 이번엔 레드 와인 글라스로 한 잔씩. 로스트비프는 레어로만 제공된다. 새콤한 소스와 함께 따끈한 밥 위에 얹어진 소고기는 그야말로 입에서 녹았다. 지금껏 고기에 두고 녹는다고 표현한 걸 다 취소해야겠더라. 한 점 한 점 줄어드는 게 아쉬운 스테키동을 해치우고 가게를 나왔다. 대기하는 동안 사람들이 너무 일찍 나와서 밥을 굉장히 빨리 먹는다며 시시덕거렸는데 우리는 더 빨리 나온 것 같았다. 의식적으로 늦춰보려 해도 자꾸만 빨라지는 손놀림을 제어할 수 없는 곳. 아라시야마를 계획에서 제하려거든, 오츠카에서의 점심을 함께 놓친다는 걸 명심하자. 오츠카 하나로 빛나는 아라시야마!





정말 오츠카만 들렀다가 시내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아라시야마에 처음인 남편은 치쿠린을 궁금해했다. 담양이 더 낫다고 말해주며 치쿠린에 들어섰다. 담양에도 못 가 본 남편은 내 말의 진위를 알지 못했지만, 치쿠린에는 역시 감동받지 못했다. 대나무 숲의 운치는 한적할 때 더 아름다울 터. 1미터마다 추억을 남기는 관광객들은 대나무 숲과 어울리지 않았다. 감상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사진 찍을 스튜디오를 찾아온 듯 쉴 새 없이 포즈를 잡으며 발길을 막는 무리들이라니. 어쩔 수 없는 관광지의 풍경이고, 즐거운 마음들이니 탓하기에도 야박한 일. 어서 나가는 것만이 상책이었다.





관광은 역시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우리에겐 멋진 점심이 있었으니까! 마침 먹구름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마에 한 두 방울이 떨어질 즈음 또 다른 관광객들을 태우고 온 버스가 도착했다. 다시 이곳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탑승. 비가 시원하게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살짝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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