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숙: 수행자와 수행성(Performativity)
한국적 추상이란 뭘까. 주로 박서보, 이우환 같은 사람들의 작품을 떠올릴까? 사람들은 이 작가들의 작품이 ‘수행적’이라고 말한다. 수행하듯이 한 획 한 획 그어내려갔다고 한다. 개인적인 얘기긴 하지만 내가 제일 싫어하는 소리다. (좀 패륜같긴 한데) 한국의, 80대 남성의 ‘수행성’이란 도대체 뭘까. ‘단색화 거장’이라는 엄청난 이름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전시된다. 하긴, 화이트 큐브로 된 전시장이나 흰색 벽지로 된 집 한 켠에 장식으로 걸어놓기 좋은 그림이긴 하지. 그러고 손깍지를 머리 뒤에 끼고 쇼파에 앉아서 “아유 명상적이다~”하기 아주 딱 좋다는 말이다. 이쯤에서 참고를 위해 이 두 대가들의 작품 이미지를 한 점씩 올려놓겠다. 이 글에서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조그맣게.
심지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19년에 열린 박서보 회고전의 제목은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The Untiring Endeavorer)>였다. 이쯤 되면 대체 수행적이라는 말이 뭐며 사람들은 그걸 어떻게 쓰고 있는지조차 궁금해질 지경이다. 푸코랑 데리다가 무덤에서 튀어나와서 울고 주디스 버틀러가 옆에서 달래줄 기세다. 그렇다. 이번 주 마감글에서는 주디스 버틀러가 말하는 ‘수행성(performativity)’에 좀 더 가까운 작업을 하는 화가에 관해 쓸 것이다.
나는 송현숙(1952~)의 작품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처음 봤다. 사실 내가 입사하기 전에 매입해들인 작품 중의 한 점이었기 때문에 소장품 전시를 기획할 때에서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무심코 수장고에 걸려있는 걸 봤을 땐 그냥 카키색 배경의 선 몇 개 같았는데.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그제서야 흰색 고무신을 신은, 무명천을 감고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그림이 ‘여인’임을 확실히 하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이건 여성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의 제목은 <28劃>. 설마 했는데 정말로 28획만에 완성한 작품이었다. 기법은… 캔버스에 템페라. 템페라? 내가 아는 그 템페라? 템페라는 안료에 계란 노른자를 섞어서 그리는, 물감을 대량생산하는 공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중세까지 주로 기독교 회화를 그릴 때 썼던 방식이다. 특성상 건조가 빠르고, 그렇다보니 세부적인 묘사를 하기 힘들다. 그러면 28획에 완성했다는 제목이 이해가 된다. 일일이 계란노른자에 가루 안료를 섞어야 하고 빠르게 말라버리니 수정도 못하고. 현대에 와서 쓰기에는 지나치게 노가다가 아닐 수 없다. 아니 왜 이런 힘든 일을 자처하는거야.
송현숙은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담양, 대나무가 많은 곳이다. 그의 거의 모든 그림에 나오는, 무명천이 감긴 쪼개진 대나무 형상이 이해됐다. 광주 수피아여중과 수피아여고를 나왔다고 했다. 그 시절에 담양에서 광주까지 학교를 갔다라… 배움에 목말랐던 그의 아버지가 남녀차별 없이 광주로의 유학을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는 그 후 1972년에 파독 간호사로 떠났다. 이 사실은 놀랍지만, 따지고보면 1970년대 도시에서 교육 받은 여성의 이후 삶에 남은 몇 개 안되는 선택지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오빠와 동생들의 밥을 해먹이다가, 결혼하면 남편과 시어머니를 모시며 사는 것. 송현숙은 그게 싫어서 독일에 간호사로 떠났다고 했다.
아는 언어도 아는 얼굴도 아는 풍경도 없는 낯선 땅으로 고된 간호사 업무를 하러 떠난 1만여 명의 여성들, 그 중 한 명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28劃>의 화면에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쩐지 울고 있을 것만 같은, 가느다란 기둥에 의지해 누워있는 여성의 모습이 겹쳐진다. 실제로 송현숙은 타국에서 외롭고 힘겨웠고, 처음 3년의 계약이 끝난 이후 4년차인 1975년에 일하던 브레멘의 정신요양원에서 환자들의 그림치료를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정신요양원의 간호사 일을 하면서, 퇴근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렇게 그린 그의 습작들을 보고 1976년에 함부르크 미술대학이 입학 허가를 내주었다. 그렇게 그는 20대 중반에 아는 이 없는 곳에서 화가가 되었다.
송현숙이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던 1970년대에는 학생운동의 정신이 짙게 남아있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브런치에 쓴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작업에 관련한 글을 읽어보면 상황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https://brunch.co.kr/@kkanarisauce/21 ) 1978년에는 동일방직사건, 그러니까 여성들이 방직공장에서의 열악한 처우에 못이겨 노조항쟁을 하던 중 반대파 남성들이 똥물을 뿌린 일이 있었고, 연이어 1980년에는 그가 학생시절을 보낸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이 있었다. 먼 타국에서 이 사건들을 접해야 했던 그는 재독 한국여성모임에서의 활동을 통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이 때 한국의 사회상황과 노동자, 그리고 여성의 권리에 관한 진보적 사고를 가진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고 한다. 이 같은 배경이 그의 가치관에 스며들어, 그의 작품에서 서서히 사회정치적 소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송현숙은 1978년에 평화시장의 미싱사, 전태일 열사의 분신 소식을 듣고 그의 어머니가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고 통곡하는 모습을 그렸다.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소꿉친구들에게 독일에서 소식을 전해들어야 했던 그에게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그 시신을 끌어안고 울어야만 했던 어머니의 모습은 필연적인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1982년의 드로잉인 <1980.5.18. 광주학살>은 치마를 입은 여성이 양 발을 붙잡혀 곤봉을 맨 경찰에게 무참히 끌려가는 모습을 담았다. 1993년 그린 <50획>에는 10년간 그가 이를 반복적인 붓질로 어떻게 이를 나타낼 것인가 고민한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50획>에서 가느다란 대나무에 의지해 필사적으로 매듭이 몇개나 달린 무명 천을 붙잡고 있는 여성의 양 팔 모습은 1982년 <1980.5.18 광주학살>에서 양 다리를 붙들려 저항하는 여성의 형상과 닮았다. 초기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여성의 삶과 사회정치적 소재는 50획이라는 귀얄붓의 반복적 스트로크로 대체된 셈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수행성이란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구성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때 ‘반복’이란 기계적 반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행위가 과거-현재-미래를 차례대로 잇는 선형적인 반복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각각의 실천이 불완전하고, 불연속적이며, 단절되어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속되는 시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 그것이 반복된 행위이자 수행성(performativity)이다. 다시 말해, 타국과 모국의 분절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살며, 그렇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오가며 만들어낸 송현숙의 작업들은 그 전체로 수행적이다.
나아가서 버틀러의 수행성 개념은 비선형적 시간 개념을 제시하는 동시에, 미래란 아직 오지 않은 상태가 현재에 기대(expectation)의 형태로 기입되는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언뜻 어려워보이는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죽박죽 되고, 이렇게 모순적인 시간 속에서 현재 이후에 생산될 수 있는 것이 과거이며 미래는 도착이 영원히 지연될 수 있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로, 이주자로, 여성으로 살아가는 삶은 송현숙에게 각기 다른 역할을 부여하는 동시에 분열된 정체성으로 각인되었다. 이것은 작품 안에서만 하나로 묶이고 다양한 형태로 무한히 변주된다.
변주되는 중에 언제든지 실패할 수 있는 것, 실패의 가능성, 이것이야말로 수행문의 반복가능성을 연다. 모든 것이 완결되어 있고, 성공적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삶은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임시적 완성, 불완전한 성공, 반복되는 발화와 수행. 이것은 실제 삶에 가깝다. 디아스포라적 삶, 수행자, 이런 단어를 떠올리지 않아도 좋다. 그의 작품은 우리 대신 “미완결을 앓아주고”(1) 있다.
2023년,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 사진에서 머리를 한데 묶은 그의 희끗한 머리카락이 언뜻 작품 속 무명의 천과 겹친다.
(1) 언젠가 정신분석학자 강은호 선생님이 나에게 “화가들은 일반인들 대신 앓아주는 사람이라는 개념을 혹시 쓴 사람이 있나요? 작품들을 보다 보니 일반 사람들이 할 수 없는 것을 대신 아파주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대화의 부분을 인용했다.